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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선 안 유명하지만 작품성 좋은 힙합 전기 영화 힙합은 음악이지만 동시에 문화이고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리고 힙합의 이러한 면모를 이해하기에는 영상 콘텐츠가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이미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영화 및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 작품들은 힙합의 뿌리와 맞닿은 흑인역사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고 힙합에 잠재된 코드와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힙합 영화와 힙합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마치 교과서 같았다. 이번에는 한국에선 안 유명하지만 작품성 좋은 힙합 전기 영화 한 편을 골라봤다. 유명하고 작품성 좋은 힙합 전기 영화들은 다음 편에 소개할 예정이다. ◆ 라인골드(Rhinegold, 2022) 이 영화가 한국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 영화의 실제 인물 하타르가 미국 래퍼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이지, 에미넴, 카니에웨스트, 트래비스스캇 같은 미국래퍼들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미국이 아닌 유럽이나 중동의 래퍼들에게 한국의 음악 팬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애석하지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훌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충분히 추천을 해도 될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이미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작품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셈이다. 영화 라인골드 포스터 (사진=기고자 제공) 앞서 말했듯 라인골드는 독일의 프로듀서이자 래퍼인 하타르의 자서전에서 영감을 받은 실화다. 독일에 정착한 이민족이었던 하타르는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기도 했지만 랩과 음악을 탈출구로 삼아 자신의 삶을 뒤바꾸는 데에 성공한다. 그는 현재도 독일에서 성공적인 아티스트이자 사업가로 살고 있다. 그러나 실화라고 해서 극적으로 휘몰아치는 장면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사 같은 것은 이 영화에 거의 없다. 대신에 라인골드는 건조하고 꼼꼼하게 한 래퍼의 삶을 조명한다. 여백의 미가 살아있고, 그래서 더 울림을 준다. 라인골드는 절제했기에 더 인상 깊은 작품이다. 라인골드는 몇몇 클래식 힙합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8마일이 생각나더니, 프로듀서 마에스트로의 집에서 전개되는 녹음 장면은 허슬앤플로우의 날 것과 겹쳐진다. 또한 주인공 지와르(극중 이름)가 드러내는 방황과 길거리 생활 - 범죄 - 회개 - 구원과 갱생 서사는 수많은 래퍼들이 앨범 전체에 투영해온 힙합의 정수다. 확실히 라인골드는 힙합 영화다. 래퍼들은 힙합이 자신의 삶을 구원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힙합은 바다와 같은 음악이라서, 기성 질서에서 잠시 일탈했거나 사회의 보편에 어긋난 사람들을 다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열망을 녹여내고,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의지를 투영한 음악이 바로 랩이고 힙합이다. 영화 라인골드는 이러한 힙합의 특성과 힘을 그대로 보여준다. 힙합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힙합은 개인의 위대함을 기리는 음악이다. 1인칭 시점에서 아티스트 본인의 삶을 그대로 음악에 담는다. 물론 모든 음악에는 삶이 있고 아티스트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그러나 아티스트 본인의 진짜 삶을 가장 진실하게 담아야 한다는 명제가 장르의 최우선 법칙으로 통용되는 음악은 힙합 밖에 없다. 지와르가 랩을 택한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옳든 그르든, 아름답든 추하든, 지와르의 삶은 그대로 음악이 되었다. 알고 지내는 기자가 있다. 결혼식에도 갈 만큼 친근하게 느끼는 관계다. 몇 년 전 그가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감옥에 있는 친구에게 내 책을 선물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책에 뭔가 멘트를 써달라고 했다. 출소하려면 아직 몇 년이 남았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몇 줄의 문장을 써서 건넸다. 그 내용을 따로 공개할 필요는 없다. 위에 이미 다 써놓았기 때문이다. 라인골드는 나로 하여금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힙합의 힘을 알아봐준 그 기자가 새삼 다시 고맙다. 친구는 출소 후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에게 라인골드를 보여주고 싶다.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2024.04.30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 봄을 상징하는 클래식 작품들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도시이다.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남이라는 뜻의 라틴어 레나스키(Renasci)를 어원으로 부활과 재생을 뜻한다. 영광스러웠던 로마의 몰락과 함께 암흑시대인 중세를 지나 맞이한 르네상스는 마치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다시 찾아온 따사로운 봄과도 같았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는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함께 수많은 걸작들이 도시 안에 숨쉬고 있다. 당시 도시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은 원래 약을 파는 약업(藥業)으로 부를 쌓은 다음 금융업으로 부흥하여 전 유럽을 호령하였다. 이 메디치 가문은 인문과 예술을 사랑하였는데 이들의 소장품이 다수 모여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우피치 미술관이다. 이탈리아어로 사무실(Uffizi)이라는 뜻의 우피치 미술관에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대표작들이 있다. 그 중 봄이라는 의미의 프리마베라(La Primavera)는 서풍의 신인 제피로스가 봄의 전령사 클로리스를 만나 봄의 여신 플로라의 탄생을 이끈다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봄을 느끼게 만드는 서풍, 제피로스의 바람은 플로라의 탄생을 이끌어낸 것 만이 아닌 음악가의 영혼 또한 꽃 피우게 만들었다. 봄을 상징하는 어떤 작품들이 우리 마음속에 봄바람과 꽃밭을 만들어주고 있을까. 지난해 4월에 서울 서초구 방배카페골목 인근 뒷벌공원 일대서 열린 봄밤의 클래식 축제 현장.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Schumann - The Spring Symphony 낭만의 선두에 서있으며 베토벤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슈만의 음악은 19세기 클래식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후배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슈만에 대해 19세기를 슈만기(紀)로 부를 수 있다며 그의 음악적 업적을 칭송하였다. 슈만은 총 4곡의 교향곡 작품을 남겼다. 스승 비크(Friedrich Wieck)의 딸인 클라라와의 연애로 스승과 법정까지 가며 정신적으로 고통 받았던 슈만은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클라라와의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결혼을 하던 해인 1840년은 슈만의 가곡의 해로 불린다. 120여곡의 가곡을 작곡한 그 해 슈만은 시인의 사랑 그리고 리더 크라이스등을 발표하며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1841년은 교향곡의 해로 불리는데, 본격적으로 기악곡 작곡에 관심이 옮겨지기 시작한 해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슈만은 피아노 작품과 가곡에만 주로 관심을 쏟았다. 이는 그가 셰익스피어와 음악과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문학적 소양이 깊었으며, 손가락의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하면서 피아노작품에 집착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후 슈만은 좀더 높은 수준의 작곡과 작품의 확장을 위해 교향곡을 작곡하게 된다. 그가 교향곡을 작곡하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행복한 신혼생활과 함께 찾아온 수많은 감정과 영감들을 성악과 피아노만으로 표현하기 아쉬웠기 때문 일수도 있을 듯 하다. 교향곡의 해 다음해인 1842년을 실내악의 해로 부르는 이유도 이런 다양한 실험정신과 그의 음악적 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일 것이다. 슈만의 교향곡 첫 작품 1번은 봄-Spring로 불린다. 봄을 알리는 관악기의 금빛 팡파르의 시작과 함께 마치 잠에서 깨어나 밝은 생명력을 보여주는 현악기와 새소리 같은 플루트의 연주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알려주고 있다. 각 악장은 부제가 있다. 1악장은 봄의 시작, 2악장은 저녁 황혼, 3악장은 즐거운 놀이 그리고 마지막 4악장은 봄의 만개다. 슈만의 아름다운 열정이 넘치는 이 작품은 당시 독일 게반트하우스 악단의 감독으로 있던 펠릭스 멘델스존에 의해 초연되었지만, 악보의 출판은 여러 개정을 거친 십여 년 뒤에 출판되었다. ◆ Vaughan Williams - The Lark Ascending(종달새의 비상) 조선시대 문신 남구만의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학창시절에 많이 들어 본 시조이다. 여기서 노고지리는 종다리, 즉 종달새를 뜻한다. 종달새는 봄의 전령사로 여겨지는 새이다. 도심을 벗어난 시골에 봄이 찾아오면 유난히 새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바로 종달새이다. 다양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종달새는 동서양 문학과 음악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었다. 이 종달새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유명한 작품 중에는 하이든의 말기 현악 사중주 종달새가 널리 알려져 있고, 또 따른 작품은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을 들 수 있다. 본 윌리엄스는 20세기초 영국을 대표하는 근대 작곡가로 엘가(Sir Edward Elgar)와 함께 국민작곡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작품 종달새의 비상은 조지 메레디스(George Meredith)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으며 평화로운 전원생활과 봄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선수시절 김연아의 프리 배경음악으로도 알려져 있는 종달새의 비상은 솔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연주된다. 영국의 친송가와 뱃노래, 민요 등 전통적인 음악을 수집하여 자신의 음악에 접목한 본 윌리엄스는 종달새의 비상에서도 이러한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넓은 초원과 목가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바이올린의 독주는 종달새의 지저귐과 날갯짓 등을 표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새소리는 플루트나 피콜로 등 목관악기로 표현된다. 하지만 활을 사용하여 프레이징을 길게 연주할 수 있고 높은 피치가 가능한 바이올린은 좀더 자유롭게 종달새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 윌리엄스가 이 작품을 작곡할 당시 유럽은 세계1차대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두운 시기였다. 그는 작품 종달새의 비상을 통해 희망찬 봄 기운과 평화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Grieg 서정 소곡집 3권 - 6. 봄에 부침(To Spring) 대중적이며 강렬한 도입부로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을 꼽으라면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 수 있다. 노르웨이의 민족주의 음악가 그리그에게 피아노는 그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악기이자 사랑한 악기였다. 그의 서정 소곡집(Lyric Pieces Book)은 모두 피아노 작품이며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전집이라 할 수 있다. 전체 10권으로 되어있는 아름다운 이 작품집은 모두 66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낭만주의 음악의 함축적이며 시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 걸작이다. 1권은 20대 초 중반의 순수하며 낭만주의적인 그리그의 모습이 보인다. 멘델스존의 무언가와도 비슷한 스타일은 시대적인 경향이 영향을 미친 결과일 듯 하다. 2권은 15년뒤에 완성이 되었는데,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전통적 낭만성 위에 민족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3권은 그가 40대중반에 완성한 작품으로 전작 보다 좀더 성숙하고 개성이 넘치는 곡들을 선보였다. 전체 6곡으로 이루어진 3권은 모두 훌륭하지만 첫 곡 나비를 비롯해 다섯 번째 곡 사랑의 시, 마지막 봄에 부침이 특히 아름답다. 특히 봄에 부침은 북유럽의 추위가 지나가고 동경하고 있던 봄의 기쁨을 표현하는 곡이다. 왼손 선율은 멀리서 불어오는 신선한 봄바람을 표현하는 듯 하고 절정으로 갈수록 오른손은 흔들리며 깨어나는 식물과 대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마지막 프레이징은 제목인 봄에 부침처럼 온화하고 부드럽게 사라지고 있다. 북유럽의 춥고 긴 계절을 지나 그리그가 바라던 자연 속 고향의 아름다움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이 곡은 그가 머물던 베르겐 교외의 트롤드하우겐에 머물 당시 작곡되었다. 작품은 2권이 나온 지 3년뒤 완성된 그리그 원숙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J. Strauss II Voices of Spring(봄의 소리 왈츠)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후기 작품인 봄의 소리 왈츠는 매년 열리는 비엔나 신년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다. 봄을 알리는 유명한 왈츠이며 전통적으로는 오케스트라 단독 연주로, 때론 소프라노의 협연으로 연주 되곤 한다. 물론 현재는 다양한 편곡과 악기들로 연주되고 있다.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알프레드 그륀펠트(Alfred Grunfeld)에게 헌정되었으며 오스트리아 황제와 황후 재단의 자선음악회에서 처음 초연됐다. 초연 당시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였으나, 이후 슈트라우스가 러시아 연주투어를 하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해 지금은 대표적인 그의 왈츠음악으로 자리잡았다. 슈트라우스가 당시 빈 최고의 소프라노였던 비앙카 비앙키(Bianca Bianchi)에게 영감을 받아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곡으로도 편곡된 봄의 소리 왈츠는 비앙키의 지인이 가사를 붙이고 그녀가 부르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이후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2막의 무도회 장면에도 삽입되었다. 곡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웅장한 팡파르로 시작하며 플루트가 새소리를 표현하고 하프가 봄의 요정을 노래하는 듯하다. 로맨틱한 현악기들의 선율들은 곡의 분위기를 더욱 밝고 생동감 있게 이끌어 간다. 마지막은 왈츠답게 웅장하며 빠른 템포로 마무리 되고 있다. ☞ 추천음반 슈만의 교향곡1번 Spring Symphony는 번스타인과 빈 필 음반과 자발리쉬와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의 음반을 추천한다. 두 음반 모두 7,80년대 녹음된 음반이다. 현대 레코딩으로는 야닉 네제 세겐(Yannick Nezet-Seguin)과 유럽 챔버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좋다.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은 여러 바이올리스트 중 야니네 얀센의 연주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그리그의 서정 소곡집은 에밀 길렐스(Emil Gilels)와 영국 피아니스트 스테판 휴(Stephen Hough)의 연주를 선호한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는 빈 필하모닉의 뛰어난 연주 중 1987년 카라얀과 캐슬린 베틀이 함께한 신년 실황음반을 추천 드리겠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2024.04.30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 댄스 뮤직과 LGBT, 그리고 신시사이저를 통합한 위대한 신스팝 듀오 온전하게 신시사이저 만을 활용한 댄스 뮤직의 시작은 조르지오 모로도였고, 게리 뉴만과 디페시 모드 같은 선발주자들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신스팝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들은,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신스팝의 원형을 확립해낸 이들은 바로 펫 샵 보이즈였다. 신스팝은 이름 그대로 신시사이저, 드럼 머신, 시퀀서 중심의 팝 음악을 지칭하며, 신시사이저로 인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듀오 형태로 구성되곤 한다. 그러니까 1975년 무렵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을 본 앤디 맥클러스키와 폴 험프리스 같은 이들 또한 가지고 있던 기타를 팔아버리면서 신스팝 듀오 OMD를 결성했던 바 있다. 펫 샵 보이즈 (사진=공식 홈페이지 https://www.petshopboys.co.uk) 초기 신스팝의 경우 일반적으로 하모니적 진행이 없는 반복적인 리프와 그루브를 갖춘 미니멀한 형태로 존재했다. 이는 음의 변화가 거의 없었고 드론 뮤직처럼 으스스하고 무미건조하며 막연하게 위협적인 형태처럼 보였다. 여기에 멜로디와 화성을 본격적으로 도입해낸 이들이 바로 펫 샵 보이즈다. 이들은 영국 특유의 서정성과 80년대 힙합 비트에서 영감 받은 일렉트로 팝의 공식을 완수해냈다. 이 공식을 통해 팝 음악 자체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펫 샵 보이즈는 팝 특유의 리듬과 가벼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고뇌와 세련된 인용문으로 이뤄진 가사로 독창적이고 우아한 스타일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가사에는 대체로 로맨스와 도피주의, 열망 등을 다뤘고 이는 대체로 낙관적이지만 깊이가 있었으며 신랄한 사회적 관찰력 또한 엿보였다. 그러니까 Opportunities(Let's Make Lots of Money)에서는 대처리즘에 대해 비웃었으며, Im With Stupid에서는 토니 블레어와 조지 W. 부쉬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다뤄 내기도 했다. The Night I Fell in Love 같은 곡에서는 에미넴이 스토커를 다뤘던 곡 Stan의 내용을 교묘하게 소환시키면서 랩스타와 10대 게이 소년의 사랑을 묘사하며 당시 미국 힙합 씬의 동성애 혐오에 대해 비틀기도 했다. 역사학 학위를 취득한 음악 저널리스트 닐 테넌트(보컬)와 건축학도 크리스 로우(건반)가 우연히 런던의 한 전자 상점에서 만나면서 펫 샵 보이즈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 파트너십, 혹은 우정은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데뷔 초에는 웨스트엔드라 지었지만 이후 이들의 공통된 친구가 애완 동물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 현재의 이름으로 정착됐다. 참고로 이들의 앨범 제목은 무조건 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대로 곡 제목의 경우 긴 문장으로 된 것이 많았다. 펫 샵 보이즈는 데뷔 싱글에서부터 UK 차트는 물론 빌보드 싱글 차트까지 1위를 차지하면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T.S.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영향받은 이들 커리어를 대표하는 데뷔 싱글 West End Girls는 일본의 CM 송으로는 물론 2012년 런던 올림픽의 폐막식 무대에서도 라이브로 확인 가능했다. 게다가 곡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2020년 비평가 여론 조사 결과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노래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곡이 1984년 4월에 공개됐으니 얼마 전에 딱 4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이후 1986년도에 발매된 데뷔 앨범 Please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앨범들을 성공시켜 나갔고 정규 앨범 중간 중간에 리믹스 시리즈인 Disco 연작을 발표하면서 댄스 뮤직 아티스트로서의 도리를 지켰다. 두 번째 앨범 Actually 또한 더스티 스프링필드가 피쳐링한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 엔니오 모리코네가 스트링 어레인지를 했던 It Couldn't Happen Here, 무엇보다 이들의 또 다른 대표 곡 Its a Sin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활동 초창기부터 이미 한 시대를 견인하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동성애자인 닐 테넌트는 90년대 초 무렵 에이즈로 죽어가던 친구들, 그리고 게이 남성으로서 느끼는 생존자의 죄책감에 직접적으로 맞서고자 Being Boring을 썼다. 이 곡은 에이즈 시대를 지나면서는 어떤 추모의 성격을 띤 일종의 애가(哀歌)가 됐는데, 몇 해 전 디페시 모드의 앤디 플레처가 사망했을 당시에도 라이브에서 그에게 바친다는 말과 함께 이 곡을 공연하기도 했다. 자신들 세대의 존재의 이유를 표현하고 있는 이 용감한 곡은 한편으로는 팝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지적인 모양새를 갖추게 될 수 있는 지에 대한 하나의 교본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나는 이들이 내한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를 때 정말로 울었다. 유독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이들의 곡들이 있었다. 빌리지 피플의 곡을 커버한 Go West의 경우 2000년대 국가대표 축구팀 응원가로 활용되기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을 커버한 Always on My Mind의 경우도 각종 매체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곤 했다. One in a Million의 인트로 경우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오프닝 시그널로도 익숙할 것이다. 90년대 전성기 이후 2000년대에도 끊임없이 급진적인 작품들을 내놓았다. 특히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무성영화 걸작 전함 포템킨의 2000년대 버전 사운드트랙 같은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2010년대 이후에 냈던 앨범들 대부분의 경우 마돈나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스튜어트 프라이스가 매회 담당해내면서 믿을 만한 결과물을 완수해 내기도 했다. 올해 4월 26일 발매되는 새 앨범 Nonetheless에는 악틱 몽키스와 블러 등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제임스 포드가 작업을 완료했다. 특히 올 봄 무렵 첫 싱글 공개 40주년을 맞이해 BBC에서 이들의 다큐멘터리 ImaginePet Shop Boys: Then And Now가 방송되기도 하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처럼 4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펫 샵 보이즈는 여전히 생생한 현역이다. 몇몇 K-팝 팬들은 2015년 MAMA 시상식에서 f(x)와 함께했던 퍼포먼스로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펫 샵 보이즈는 무대 디자인과 의상, 그리고 앨범 아트웍의 가능성들을 매번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시켜냈으며 언제나 이 결과물들은 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됐다. 펫 샵 보이즈는 다각적으로 LGBT 커뮤니티의 더 나은 미래와 희망의 메시지를 제공하는 것 또한 멈추지 않았다. 음악적으로, 그리고 디자인적 측면에서 LGBT 커뮤니티는 직간접적으로 이들에게 일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베스트 앨범 제목이기도 했던 팝아트(PopArt)는 어찌 보면 이들의 음악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가장 적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데뷔 당시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분류하기에는 너무 팝 적이고, 팝 음악이라 하기에는 너무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했던 펫 샵 보이즈는 결국 그 경계선을 허물어버리면서 지금 우리가 흔하게 접하고 있는 팝음악 시장의 토대를 완성시켜 놓았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해야 하는 세상에서 변함없는 이정표가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 시대에도, 그리고 어느 세대에게서도 사랑받는 존재가 됐다. ☞ 추천 음반 ◆ Release (2002 / Parlophone) 9/11 테러 이후 전 세계가 뒤숭숭한 상황에서 발매된 작품. 펫 샵 보이즈의 앨범들 중 가장 어쿠스틱한 앨범으로 신시사이저의 비중을 낮추고 실제 드럼과 기타를 적극 활용했다. 원래는 1999년 작 Nightlife 이후 나올 베스트 앨범에 추가할 신곡 두 곡 정도를 만들려 하다가 결국 앨범 하나 분량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스미스 출신의 조니 마가 기타를 연주했으며 Home and Dry, London 같은 아름다운 곡들이 많은데 의외로 이후 공연에서는 이 앨범 수록곡들은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 Pandemonium (2010 / Parlophone) 2009년 작 Yes 앨범의 투어 Pandemonium Tour의 런던 O2 아레나에서의 실황을 담은 라이브 음반으로 국내 첫 내한 또한 이 투어로 왔었기 때문에 그 당시 공연을 봤던 이들에게 있어 이는 훌륭한 기념품 역할을 했다. 일종의 종합예술이라 할만한 이 투어 퍼포먼스는 개인적으로도 그간 봤던 수많은 공연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을만했는데, 때문에 음반에 포함되어 있는 DVD 또한 반드시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투어 당시 무대 위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던 수많은 박스들은 공연이 끝난 직후 관객들에게 뿌려지면서 너도 나도 박스 하나씩 들고 공연장 밖으로 퇴장했던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2024.04.30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 두터워진 한미동맹 신뢰…우리의 외교적 호기 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지난해 4월 윤석열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발표한 워싱턴 선언으로 한미동맹의 새 장이 열렸었다. 이후 두 차례의 수석급 후속 회의와 실무회의는 한미동맹을 한 층 더 격상했다.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며 북한의 남침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동맹을 핵기반 동맹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북한의 핵무기 완성도와 위협이 증가한 불가피한 상황적, 전략적 결과로 과소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핵무기 개발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외국과 핵협의체를 공동 운영하는 결단은 한미동맹이 70년간 쌓아 올린,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신뢰 증강의 결과로 보기에 충분했다([주재우, 워싱턴 선언, 한미동맹의 새 지평을 열다] 정책브리핑 2023년 5월 1일 자 참조). 이후 혹자는 후속 조치의 여부에 따라 미국의 진정성 여부나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신뢰 수준이 드러날 것이라고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결과는 생각보다 빠른 후속 조치들이 진행되면서 이런 회의론을 불식시켰다. 수석급 회의와 실무회의로 우리의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방어 의지와 결의, 그리고 윤석열 정부와 핵협의체를 실제로 구축할 정도의 신뢰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핵협의체의 실질적 운영을 위한 두 차례의 수석급 회의로 기틀이 마련됐다. 2023년 7월과 12월 수석급 회의의 성과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심을 유발한 동시에 일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한미 핵 당국은 핵협의 그룹(NCG) 가이드라인의 구체화와 제도화에 관한 협의를 일궈냈다. 또한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확장 억제력의 강화 문제를 지속성이 있게 유지할 수 있는 양자 간 메커니즘 구축에도 일치된 인식을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2월에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NCG 프레임워크 문서를 마련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써 한미 NCG의 제도화를 일궈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의 보증으로 실질적인 주관 기관도 우리의 국가안보실과 미국의 국가안전회의에서 양국의 국방부로 변경됐다. 그 결과 한미 간 미국 확장 억제력 강화 메커니즘 구조를 단순화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정부는 또한 NCG 프레임워크로 미국의 핵 자산운영 과정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에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에 관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던 수동적인 구조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한미 양국이 핵 정보 공유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미국 전략사령부가 주도하는 미군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상대방 대륙간탄도미사일 요격 체계 등에 대한 정보를 더 긴밀하게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게 됐다.11월에는 양국이 합의한 우리의 주무 부처 관계자를 대상으로 핵 억제에 관한 집중적인 교육과정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핵협의체 운영을 위한 우리의 실무급 인력 양성과 구성도 순조롭게 출발했다. 올해 6월경에는 제3차 수석급 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여기서 한미 당국은 핵전략 기획 및 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고, 위기 시 핵 사용에 대한 실행계획도 마련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8월 예정된 을지훈련에서 이번에 마련된 실행계획이 실제로 투영될 가능성도 관측되고 있다.지난해 12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2차 NCG 회의는 한미 양국 간의 통합적이고 일체화된 핵 억지 체제의 기틀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마련했기 때문이다. 가령, 양국이 합의한 보안 및 정보공유 절차, 위기 및 유사시 핵협의 절차, 핵과 전략 기획 등이 시험대에 오를 수 있겠다. 이를 기반으로 8월의 을지훈련에서는 한미 간 핵·재래식 전력의 통합, 전략 커뮤니케이션 시험, 실질적 훈련을 통해 위험감소 훈련을 전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올해 6월에 한미 NCG 운영 가이드라인이 확정되고 연합군사훈련에 실질적인 테스트가 이뤄지면 한미 양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승화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이런 결과를 우리는 외교적으로 더욱 활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미국의 신뢰가 두터워진 만큼 우리는 이를 국익 확대의 기회로 이용해야겠다. 미국과 NCG의 공동 운영 기틀이 확고해지면 우선 잠정적으로나마 핵무기 보유에 대한 국민 의견과 정서를 진정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에 국민은 나날이 불안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국민은 효과적인 대안으로 우리의 핵무장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제 한미 양국이 NCG 출범시키면서 핵에 관한 양국의 신뢰 있는 첫발을내디뎠다. 이런 금자탑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정부의 노력이 더 강화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핵무장 대신 미국과 NCG에 합의함으로써 비확산조약(NPT)체계를 굳건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지분을 갖게 됐다. 바이든 정부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미국이 한국에 대한 신뢰가 극대화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외교적으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워싱턴 선언이 기존의 한미 원자력 협정의 유효성을 재확인했다면서 개정의 불필요성을 암시했지만 개정 협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두터운 신뢰에 기반해 원자력 협정이 개정돼야 할 당위성과 정당성을 제시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미동맹은 매우 중요한 축이다. 한미동맹의 전력 운영, 특히 200여 개에 달하는 주한미군 기지는 우리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에 상당히 의존한다. 그러나 우리의 핵폐기물 처리 용량은 이미 포화상태다. 이를 미국 당국이 자각할 수 있도록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노력이 적극 개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동맹의 원활한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4.04.29 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 군정찰위성, 한반도의 전천후 감시정찰 기반 구축 나경수 국방과학연구소 첨단원 위성체계단 팀장 한국시간으로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우리 군의 오랜 염원이었던 역사적인 첫 군정찰위성이 발사되었고, 이후 올해 4월 8일 오전 두 번째 군정찰위성이 발사 후 성공적으로 임무궤도에 안착되었다. 군정찰위성이 우리 군에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우리의 눈이라 할 수 있는 감시정찰체계에 있어 타 자산들에 비해 지리적, 환경적 영향을 받지 않고 상시 전천후 활용 및 감시가 가능한 기반을 구축한 데 있다. 또한 동맹국의 의존에서 벗어나 이제는 보고 싶은 곳을 스스로 볼 수 있는 능력이 크게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독자 군정찰위성을 통해 동맹국에게도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공해줌으로써, 외교적으로 상호 대등한 관계로 우뚝 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한편 지난해 발사한 군정찰위성 1호기는 EO/IR(Electro Optical/Infrared) 센서가 장착된 전자광학 및 적외선 위성이다. EO(전자광학) 센서의 경우 가시광 대역에서 물체로부터 발생하는 광원을 전자결합소자로 포착해 영상화하는 기술이며,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카메라 기술과 유사하다. 또한 IR(적외선) 센서는 적외선 대역에서 물체로부터 발생하는 열원을 감지해 영상화하는 기술로 빛이 없는 밤, 어두운 환경에서 온도 차를 감지해 영상화할 수 있는 센서다. 전자광학카메라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영상을 제공해 주지만 비/구름이 있거나 밤에는 영상촬영이 제한되며, 적외선 카메라는 야간에도 온도 차에 따라 영상을 획득할 수 있지만, 역시 기상의 영향을 받는 단점이 있다. 8일 오전(한국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 스페이스센터 발사장에서 군사정찰위성 2호기가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탑재돼 발사되고 있다. 이에 비해 올해 발사한 군정찰위성 2호기는 SAR(Synthetic Aperture Radar) 센서가 탑재된 합성개구레이더 위성이다. SAR센서는 이동하는 레이더에서 지상의 관심지역에 전파를 방사해 반사되는 신호를 수신하고 신호 차이를 영상화하는 레이더기술이다. 전파를 방사하므로, 기상 조건에 상관없이 주야 전천후 영상 획득이 가능한 상시 감시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영상자체가 흑백이고 난해해서 정밀분석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판독이 필요하다. 따라서 만능 위성은 없기 때문에 표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수집 및 판독을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위성을 통합하여 보완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군정찰위성은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발사될 예정이며, 궤도시험 및 보정작업 그리고 시험평가를 거쳐 본격적으로 우리 군에서 운영을 시작할 것이다. 군정찰위성사업인 425사업 외에도 2023년 초부터 다부처사업(국방부, 과기정통부 등 다부처 참여)인 초소형위성체계개발사업이 진행 중인데, 수십기의 초소형위성을 국내개발하여 발사/운영하는 사업이다. 425사업의 중대형위성은 고가의 고성능장비들이 탑재되므로, 초소형위성에 비해 해상도가 높고 기동성이 더 우수한데 반해, 초소형위성은 저가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므로, 재방문주기를 짧게 하여 변화를 탐지하는데 장점이 있다. 따라서 두 종류의 위성을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감시정찰의 공백을 줄여 한반도 및 해양에 대한 빈틈없는 감시정찰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전세계적으로 우주산업에 대한 투자와 협력이 확대됨에 따라 우리나라 국방우주 분야에 있어서도 한국형 뉴스페이스에 발맞춰 군사 위성뿐만 아니라 발사체, 지상체, 정보활용체계, 우주영역인식, 발사장 등 인프라에 대한 관심과 투자, 그리고 국제협력 필요성도 증대되고 있다. 위성체 분야에 있어서는 부품/구성품 국산화 바람이 급격히 불기 시작하였고, 발사체 분야에서는 과기부/항우연의 누리호를 비롯하여 군 고체발사체 개발 및 발사 성공 등으로 세계적인 발사서비스 시대를 개척 중이다. 이 밖에 지상체/정보활용/ 우주영역인식 등의 분야에 있어서도 위 분야들과 연동하여 많은 우주사업들이 기획 및 착수되었다. 위성체 조립/시험장 및 발사장, 계측소, 해외안테나 등 우주 인프라 구축에 대한 필요성도 인지되어 현재 관련 사업들이 진행되거나 기획되고 있으며, 동맹국과의 정보/인프라 공유를 위한 국제협력도 진행 중이다. 앞으로의 국방우주체계는 국내 민/군 상호 긴밀 협력은 필수적이다. 특히 근래 우크라이나전을 통해 판단할 수 있듯이, 국방우주체계는 단일 국가만의 힘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등 동맹국과의 위성체/발사체 및 우주 인프라 공동 활용과 같이 범세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사이버 안보와 상호호환성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2024.04.24 나경수 국방과학연구소 첨단원 위성체계단 팀장
- 한국에선 ‘안 유명’하지만 작품성 있는 힙합 다큐멘터리 힙합은 음악이지만 동시에 문화이고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리고 힙합의 이러한 면모를 이해하기에는 영상 콘텐츠가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이미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영화 및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 작품들은 힙합의 뿌리와 맞닿은 흑인역사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고 힙합에 잠재된 코드와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힙합 영화와 힙합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마치 교과서 같았다. 이번에는 한국에선 안 유명하지만 작품성 있는 힙합 다큐멘터리를 골라봤다. 처음엔 나만 보고 싶었지만 결국엔 남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지는 작품 몇 편을 소개한다. 셰이크더더스트 (사진=기고자 제공) ◆ 셰이크더더스트(Shake the Dust, 2014) 셰이크더더스트는 2014년에 공개된 비보잉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미국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비보잉은 이미 전 세계로 뻗어나가 각 문화권에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비보이가 국위 선양을 해온지는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이 작품은 미국 본토의 비보잉보다는 소위 제3세계의 비보잉에 대해 주목한다. 제3세계 국가들에 비보잉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이 나라에서 비보잉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와 그 양상에 대해 이 작품은 내내 이야기한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음악과 움직임의 울림은 통한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다큐의 감독인 아담 셰베리(Adam Sjoberg)는 세계 각지의 슬럼가와 게토를 탐색하며 창의적이고 놀라운 비보잉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영상으로도 화제를 끌었다. 또 래퍼 나스(Nas)가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점 역시 힙합 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프레시드레스드 (사진=기고자 제공) ◆ 프레시드레스드(Fresh Dressed, 2015) 2015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다. 셰이크더더스트와 마찬가지로 래퍼 나스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프레시드레스드는 제목처럼 힙합 패션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1970년대 미국 뉴욕을 시작으로 길거리를 활보한 힙합 패션을 되돌아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친숙한 1990년대 힙합 브랜드, 예를 들어 푸부(FUBU), 팻팜(Phat Farm), 션존(Sean John) 등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다루기도 하고 그 후 포화된 힙합 패션 시장의 문제점도 짚어본다. 나스 외에도 패션과 관련해 잘 알려진 힙합 뮤지션 카니에웨스트(Kanye West), 퍼렐(Pharrell), 스위즈비츠(Swizz Beatz) 등이 출연해 코멘트를 보탰다. 힙합패션에 흥미가 많거나 의문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힙합패션은 왜 그렇게 화려한지, 아디다스의 스니커즈인 슈퍼스타를 신을 때 왜 끈을 그런 방식으로 묶었는지 등 힙합패션에 관한 여러 궁금증을 문화사회적으로 설명해주는 작품이다. 브루클린보헤미안 (사진=기고자 제공) ◆ 브루클린보헤미안(Brooklyn Boheme, 2011) 2011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다. 1920년대의 할렘 르네상스에 이어 1980년대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한 흑인 예술 움직임을 다뤘다. 브루클린 주민인 넬슨조지(Nelson George)가 감독을 맡았고 당시 동네 주민이었던 래퍼 탈립콸리(Talib Kweli), 시인이자 포에트리슬래머 사울윌리엄스(Saul Williams), 코미디언 크리스 락(Chris Rock), 영화감독 스파이크리(Spike Lee) 등이 출연했다. 이들은 당시 브루클린의 포트그린 지역에서 거대한 예술공동체를 이루어 어울렸다. 힙합 문화는 물론 다양한 예술을 다양한 인물이 서로 교류하며 꽃피웠던 그 때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이 지역은 1990년대 들어 마약 문제로 피폐해졌고, 9/11 사태 이후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된다. 이렇듯 자본주의의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면서도 결국 이들이 남긴 유산에 대해 기록하는 작품이다.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2024.04.24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 개발제한구역 규제혁신과 국토 균형발전 김현수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통계청 발표(2023.11)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비수도권으로부터 수도권으로 순이동한 20대 청년층이 60여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순유입 인구는 27만 9000명이라고 하니 20대를 제외한 연령층에서는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인구가 빠져나간 것이다. 특히 부산·경남지역에서만 지난 10년간 16만 명의 20대 청년의 순유출이 발생해 가장 심각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청년들이 떠나간 지역은 고령화가 심화해 기업의 구인난, 대학 신입생의 미충원 문제로 직결된다. 청년들이 원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지역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분권 논의도 활발하다. 수도권 메가시티에 대응하는 균형발전 메가시티, 초광역권 구상논의도 재개되고 있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개발제한구역 규제혁신방안은 이처럼 절박한 균형발전 대책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즉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청년들의 지방 정착에 필요한 전략산업의 유치를 위해 첨단산업, 전략산업을 발굴, 육성하는 일이 가장 중차대한 일로 대두되고 있다. 수도권에는 인구도 증가하지만 성장세가 높은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등 신성장산업의 입지가 활발하고 스타트업, 벤처 등 청년고용 효과가 큰 기업들이 서울 등 수도권 대도시에서 성장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의 우려가 더 심화하고 특히 청년들의 수도권 이동이 늘어날 것이다. 지방 대도시권의 광역교통, 산업생태계의 중심지에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 정주 환경, 문화복지환경을 조성해 지방 청년들이 지방에 정착할 수 있는 혁신 거점을 조성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그리고 이런 정책사업의 추진을 지방 스스로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100만㎡ 이하 규모의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이양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된다. 다만, 지역전략사업의 협의와 환경평가등급 기준이라는 2단계 허들을 두고 있다. 우선, 지역전략사업의 적정성을 사업추진 필요성, 수요, 입지 불가피성 등의 기준을 중심으로 사전 검토 후 중앙도시계획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환경평가등급 1·2등급지의 경우에도 해제가 가능하게 하고 있으나 대체지 지정을 통해 총량적 관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간 1·2등급지의 개발은 엄격하게 관리해 왔으나 최근 환경관리 기술의 발달로 수질 환경관리와 탄소 배출관리 기법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환경이 양호한 1·2등급지의 면적이 늘어나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개발제한구역이 최초로 지정된 53년 전을 떠올려보면 도시화율, 산업화 추세, 교통통신 기술의 발달 수준에 있어서 현재와 비교하기 어렵다. 인구는 점점 더 대도시로 모이고 산업은 첨단화돼 융복합되어 간다. 고속철도, 광역철도의 도입으로 이동의 속도는 빨라지고 환승 거점 중심으로 인구와 산업이 집중하는 새로운 국토와 도시의 모습이 등장한다. 도시화율이 50% 남짓하던 시기에 만든 개발제한구역은 그간 여러 가지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광역도시계획으로 총량을 설정해 두고 그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이용하며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역할을 구분해왔다. 개발제한구역의 당위성,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뜨거우나 필요성이 다했다고 해서 전면 해제하기 어렵다.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권의 경우, 구역 지정 이후에 토지를 매입한 소유자가 대부분이며 전면 해제했을 때 난개발과 토지 투기로 인한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묘책도 요원하다. 무엇보다도 그간 어렵게 지켜온 자연환경을 포기하는 일은 더더욱 안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는 소유자와 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거주민의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 따라서 개발제한구역의 유지관리는 엄격하게 지속하되, 공적인 목적의 활용은 단계적으로 허용해 갈 필요가 있다. 첫째, 공공임대주택, 지역균형발전사업 등은 일정한 규모, 밀도, 사업시행자 조건, 수요 타당성의 틀 속에서 허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친환경적인 토지이용, 체육시설, 기후위기대응형 산업 시설의 허용이 필요하다. 셋째, 거주자들의 실생활 편의 제고를 위한 주민편의시설의 설치 또한 허용돼야 한다. 지난 2월 발표된 개발제한구역 규제혁신방안에 대한 우려가 있다. 무분별한 해제, 환경훼손 확대와 난개발에 대한 걱정이다. 그간 개발제한구역 정책변화 때마다 개발과 보전, 중앙과 지방, 공공성과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 등을 둘러싸고 오랜 기간 뜨거운 논의가 이어져 왔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지방소멸 우려가 깊어지고 균형발전에 대한 열망이 높은 점, 환경관리 기술발달에 따른 유연한 환경평가등급 기준이 필요한 점 등 새로운 변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금번 혁신방안을 통해 지역균형발전의 거점을 조성하고 청년들의 지방 정착을 촉진하는 지역전략산업을 구축하는 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전략산업의 입지, 수요,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합리적으로 이뤄져 개발제한구역 규제혁신에 대한 우려를 일소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4.04.22 김현수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 ‘종합선물세트’로 우리를 유혹하는 하이든 모차르트와 베토벤 사이에는 하이든이라는 거장이 자리잡고 있다. 고전시대의 완성을 보여준 모차르트와 다가올 시대 혁신의 아이콘 베토벤에게 영향을 준 인물, 바로 하이든이다. 파파 하이든으로 불릴 만큼 음악인들 사이에서 그의 위치는 당대에도 자상하고 존경스런 아버지와 같았다. 하이든의 음악은 끝없이 흘러 넘치는 선율의 아름다움을 가진 모차르트나 깊은 인간적 고뇌와 철학에서 나온 베토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그의 음악은 탄탄한 구조를 바탕으로 때때로 유머와 재치를 보여주기도 하고, 깊은 종교적 느낌도 주며, 고전양식 속 명료함까지 보여준다. 한가지 매력만으로 청중을 휘어잡는 음악가이기 보다는 마치 종합선물세트로 우리를 유혹하는 느낌이다.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하이든이기에 세계적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은 같이 차 한 잔 하고 싶은 음악가로 하이든을 주저 없이 꼽았다. 혹자는 하이든을 고전시대의 보수적 음악가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당대 음악적 도전과 탐험을 즐기는 모험가였다. 그가 보여준 실내악 작품과 실험을 통해 완성한 교향곡양식은 그를 음악의 개척가라 부를 수 있겠다. 맑은 봄 내음이 공기 중에 스며드는 달에 태어난 하이든, 그의 여러 음악적 형식은 영상 속에서 어떻게 빛나고 있을까?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출발대합실에서 봄맞이 플래시몹 클래식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현악 4중주 두 대의 바이올린과 각각 한 대의 비올라와 첼로로 구성된 현악 사중주는 작은 오케스트라와도 같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악기와 타악기가 빠진 응축된 오케스트라 라고 할 수 있겠다. 하이든은 현악 사중주 형식을 발전시키고 확립시켰으며 자신의 교향곡 또한 현악 사중주가 튼튼한 기반이 되어 영향을 끼쳤다. 원래 현악 사중주는 바로크시대 이탈리아 작곡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가 건반없는 바이올린 2대, 비올라 1대, 첼로 1대로 연주하는 소나타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세상에 등장했다. 하지만 스타일을 확립하고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선보인 이는 바로크 이후 고전시대 작곡가 하이든이었다. 하이든이 현악 사중주를 작곡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보면 우연이라 할 수 있다. 청년시절 하이든은 귀족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그 귀족이 연주자 4명이 연주할 수 있는 소규모 실내악곡을 요청한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현악 사중주가 여러 곡 작곡되었고 이후 하나의 형식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사실 청년기의 하이든은 이후 한동안 현악 사중주 대신에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작곡하다가 30대 후반부터 40대에 많은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의 현악 사중주 작품은 빠르고 느린 악장 이후 미뉴엣과 트리오를 지나 마지막 빠른 악장으로 마무리하는 4악장 형식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가 정형화 시켜놓은 형식이며 교향곡 작품에도 적용되어있다. 균형미 넘치는 그의 현악 사중주 작품은 여러 영화에 사용되었는데 넷플릭스의 시리즈물인 브리저튼에는 작품번호(op)82와 76의 황제-Emperor가 쓰였다. 영화 스타트렉에서는 op.53이, 탐 크루즈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op.64가, 니콜라스 케이지의 내셔널 트래져에서는op. 33, 그리고 브레드피트의 얼라이드에서는 op.76이 OST로 활용되었다. ◆ 교향곡 흔히 하이든을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만큼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확립에는 하이든의 공이 지대하다. 물론 처음 심포니 즉 교향곡은 바로크시대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교향곡은 보통 교회음악이거나 일관된 형식을 지니지 못하였으며 주로 빠르고 느리고 다시 빠른 악장의 단순한 구성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하이든은 4악장 형식과 100여곡이 넘는 작품을 통해 교향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이후 모차르트와 베토벤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 하이든은 20대 중반부터 에스터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으로 일하는 기간을 포함하여 거의 40년 동안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그의 몇몇 교향곡에는 여러 별명 또한 붙어있다. 슬픔, 이별, 놀람 등 감정상태를 나타내는 교향곡을 포함하여 사냥, 곰, 닭 같은 동물을 소재로 한 교향곡도 있다. 재미있는 별명도 있다. 그의 60번교향곡은 정신나간 사람들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데, 이는 장 프랑수아 레그나르(Jean-Francois Regnard)의 연극 Le Distrait(정신나간사람)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하이든의 유머러스함과 재치 그리고 교양과 품위가 느껴지는 교향곡 작품들은 한마디로 그의 시그니처이다. 이런 그의 교향곡은 어떤 영화에 쓰여졌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의 스토리를 그린 시리즈 The Crown에서는 교향곡 op. 100 Military-군대가 쓰였다. 앞서 언급한 시리즈물 브리저튼에서도 교향곡 45번이 등장한다. 교향곡 103번은 2012년작 Man on a Ledge에, 그의 교향곡1번은 2015년작 Moonwalkers에 각각OST로 삽입되었다. ◆ 협주곡 협주곡 Concerto는 어원은 라틴어 Concertare로, 경쟁하다는 뜻과 협력하다는 뜻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하이든은 바이올린과 플루트, 호른, 합시코드, 오보에 등 다양한 협주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협주곡은 첼로와 트럼펫이다. 바로크 이후 악기들의 발전은 점점 급속화되고 있었다. 특히 관악기들의 발전이 두드러졌는데 대표적 금관악기인 트럼펫은 하이든 시대에 이르러서 반음계를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진화하였다. 원래 트럼펫의 역사를 보면 고대시대 왕의 행차나 전쟁의 신호 등으로 쓰였으며, 긴 관을 이용하여 소리를 멀리 전달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바로크시대까지 음계를 연주할 수 있는 다양한 키(key) 또한 없었다. 하지만 1759년경 안톤 바이딩거(Anton Weidinger)에 의해 계발된 키 트럼펫은 배음렬과 반음계 연주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하이든의 명작인 트럼펫 협주곡 탄생에 기여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각종 CF와 장학퀴즈의 시그널 음악으로 잘 알려진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은 1796년 그의 나이 64세에 작곡된 후기 작품이다. E Flat 장조의 조성으로 작곡된 이 작품은 전체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키 트럼펫의 계발자이자 빈 궁정악단의 연주자인 안톤 바이딩거에 의해 빈 부르크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의 또 다른 명작인 첼로 협주곡 또한 악기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였다. 바로크 시대까지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를 비롯한 비올(Viol)족 악기들이 쇠퇴하고 바이올린, 비올라, 베이스 등의 악기들이 확립되었는데 그 중 첼로 또한 중요한 저음악기로 자리잡았다. 특히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은 솔로악기로써의 첼로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그의 첼로 협주곡은 1번이 특히 유명하고 2번 또한 비중 있게 연주되고 있다. 하이든은 첼로 협주곡을 몇 곡 더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반적으로 1번과 2번이 대중적이다. 첼로협주곡은 그가 에스터하지 가문에 봉직하고 있을 때 작곡되었으며 20세기 중반 협주곡1번의 악보가 발견되기 전까지 2번이 하이든의 유일한 첼로협주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은 할리웃 영화 빅히트를 비롯하여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에도 등장하였다. 첼로협주곡 또한 2017년 TV시리즈 The Power of Silence를 비롯하여 National Treasure 2022년 The Lost City등 다양한 작품에 삽입되었다. ◆ 오라토리오 하이든은 집안에 따로 기도실이 있을 정도로 종교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 여러 있는데 그 중 천지창조와 사계는 그의 신실한 신앙심이 잘 드러난 대표적 작품이다. 천지창조와 사계 모두 오라토리오 장르의 작품인데 오라토리오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연기나 움직임 없이 공연하는 종교적 성격의 오페라라고 보면 된다. 특히 하이든의 천지창조는 헨델의 메시아와 함께 오라토리오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다. 에스터하지 가문의 음악감독을 떠나서 자유롭게 된 하이든은 59세 영국 런던을 방문하였다. 그곳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선배 작곡가인 헨델의 추모음악회에 참석한 하이든은 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듣게 된다. 이에 크게 감명받은 하이든은 구약성서와 존 밀턴의 실낙원을 바탕으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장면을 웅장하게 표현한 천지창조를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총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2시간에 가까운 연주시간을 가지고 있는 대작이다. 또 다른 역작 오라토리오 사계는 천지창조 이후 작품으로 소박한 농부들의 대화형식으로 자연 속 생활하는 그들의 기쁨과 신에 대한 감사, 인간의 일대기 등을 사계절 속에서 노래하고 있다. 천지창조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작품이라면 사계는 내적인 성숙함을 말하고 있다. 두 작품은 초연부터 대단한 찬사를 받으며 하이든 음악의 절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지창조는 2021작 Reyes de la noche, 2016년 Voyage of Time: Life's Journey, 2015년 James of the Tree등에 삽입되었고 사계 또한 2012년 작 To the Wonder에 OST로 활용되었다. ☞ 추천음반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 작품은 개인적으로 알반베르크 사중주단과 하겐 사중주단의 연주를 추천 드린다. 교향곡은 전집을 발표한 안탈 도라티의 올드 레코딩과 콜린 데이비스, 아담 피셔의 지휘가 대중적이다. 빛나는 트럼펫 협주곡은 모리스 앙드레와 윈튼 마샬리스의 연주가 널리 알려져 있다. 첼로 협주곡은 젊고 뛰어난 연주자들도 많지만 전성기의 로스트로포비치와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로 들으면 후회 없다. 오라토리오 작품은 존 엘리엇 가디너의 음반을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2024.04.19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 절제와 순수의 미학, 음표 사이 침묵이 만들어내는 신성한 드라마 슬로코어(Slowcore)라는 장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마도 포크 혹은 인디 록의 계보 아래 즈음 위치해 있을 것이다. 슬로코어와 상위 장르들과의 구별되는 지점이라 하면 보다 미니멀하고 정적이며 유독 침울한 부분이 두드러진다는 대목일 것이다. 80년대부터 이런 류의 음악을 하는 이들은 이미 존재했지만 9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슬로코어는 하나의 장르로써 분류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약간의 빛을 더하면 드림팝, 더욱 슬픈 감정을 강조하면 새드코어, 그리고 보다 극단적인 경우 드론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과거 어느 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슬로코어의 특징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었는데, 슬로코어의 좋은 점은 청취자의 세심한 주위를 요구한다는 점이며 나쁜 점은 세번 정도 노래를 들으면 잠들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태초에 갤럭시 500과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카우보이 정키스와 아메리칸 뮤직 클럽 등이 처연하면서도 쓸쓸한 슬로코어를 연주했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스페인, 아랍 스트랩, 아이다 등이 걸작을 내놓으면서 2000년대 초반 무렵 이 장르가 왕성하게 뿌리내려갔다. 현재 가장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는 라나 델 레이의 경우 자신의 음악을 두고 할리우드 새드코어라 지칭하고 있기도 하다. 슬로코어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들로는 로우(LOW)를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다. 로우는 그야말로 이 장르의 전형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대다수의 개척자들이 그렇듯 로우 또한 슬로코어라는 말을 환영하지는 않았는데, 1998년도 무렵 가졌던 인터뷰에서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멤버 앨런 스파호크는 그 명칭이 싫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베드헤드는 이 용어를 모욕이라 여겼고 레이다 브라더스 또한 슬로코어라는 표현에 반감을 표했다. 알란 스파호크의 솔로 밴드 투어 포스터 (출처=로우 홈페이지) 1993년 미네소타에서 알란 스파호크와 미미 파커를 중심으로 결성된 로우는 트리오의 형태로 운영됐지만 세번째 멤버의 경우 종종 교체됐다. 알란 스파호크와 미미 파커의 우아한 화음이 로우의 음악의 핵심이었는데, 이 신실한 목소리는 분명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발현된 소리처럼 감지되곤 했다. 미미 파커는 노래와 함께 축소된 규모의 드럼을 연주했는데 마치 퍼커션 주자처럼 일어선 채로 킥을 사용하지 않고 스틱 대신 브러시를 주로 활용했다. 실제로 알란 스파호크와 미미 파커는 부부사이이다. 시끄러운 그런지가 주류였던 1994년 무렵 데뷔 앨범 I Could Live in Hope를 발표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냈다. 슬로코어 답게 앨범의 구성도 단순했지만 무엇보다 모든 수록 곡들의 제목 또한 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로우의 곡 Over the Ocean을 수록한 1996년도 앨범 The Curtain Hits the Cast 이후, 크랭키 레이블로 이적해 발표한 Secret Name과 Things We Lost in the Fire에서는 레이블의 성격 때문인지 보다 포스트 록적인 성향들이 두드러졌다. 이 두 앨범은 너바나의 프로듀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스티브 알비니가 녹음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아예 너바나의 레이블이었던 서브 팝으로 회사를 옮겼다. 서브 팝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2005년 작 The Great Destroyer는 보다 록적인 형태로 완수해내면서 세간에 충격을 줬다. 명 프로듀서 데이브 프리드먼이 참여한 이 앨범 이후부터 로우는 빌보드 차트에 랭크되기 시작하는데,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는 자신의 2010년도 솔로 앨범 Band of Joy 로우의 곡 Silver Rider를 재녹음해 수록하기도 했다. 로버트 플랜트는 인터뷰에서 로우의 The Great Destroyer 앨범에 대해 훌륭한 음악이며 자주 집에서 듣는다 언급하기도 한다. 크랭키 시절부터 시작된 로우의 실험은 느리게 변모해 갔는데, 이후에는 전자음악과 글리치를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한편 기존에 추구하던 미니멀리스트로써의 접근 방식 또한 유지해냈다. 2018년 작 Double Negative에서는 실험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 나가려 했다. 수차례 로우의 세번째 멤버가 바뀌다가 결국 2021년에 공개된 앨범 Hey What 이후부터는 아예 듀오 형태로 자리잡게 됐다. 로우의 초기시절에는 너무 조용했던 음악 탓에 주변 환경의 소음과 관객들의 잡담에 취약했던 터라 제대로 된 공연의 감상이 불가능하기까지 했다. 록 클럽에서 공연할 때면 관객들이 아예 바닥에 앉아서 관람하기도 했고, 1996년도 SXSW 페스티벌 공연에서는 이들이 공연하는 아래층에서 하드코어 밴드가 공연하면서 이 외부 소리가 로우의 음향을 덮어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결국 Trust 앨범부터 로우는 보다 강조된 사운드를 만들어 나갔다. 참고로 이들은 공연장에서는 조이 디비전과 스미스, 그리고 아웃캐스트의 Hey Ya나 펑크 밴드 미스피츠의 곡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커버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성실히 활동해 오던 로우의 미미 파커는 2020년 말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2021년 치료를 시작했고 2022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병에 대해 공개했는데, 치료를 위해 다수의 투어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된다. 로우가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알란 스파호크는 자신의 아들 사이러스와 데미안이라는 새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 11월 5일 미미 파커가 우리 곁을 떠났다. 미미 파커의 음악적,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였던 알란 스파호크는 미미 파커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미미는 로우 그 자체였으며 따라서 밴드도 끝났음을 공표했다. 그리고 이런 성명을 덧붙였다. 친구들이여, 이 우주를 몇 마디 언어와 짧은 메시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녀는 지난 밤 여러분을 포함한 가족과 사랑에 둘러싸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친밀하고 성스럽게 간직해 주십시오. 이 순간을 당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와 공유하세요. 사랑은 정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로우는 인간이 품은 영혼의 상태를 음악으로 번역하는 데에 있어 가장 탁월한 밴드였다. 실제로 몰몬 교도들이었고 의도와 관계없이 이들의 음악에는 은연중에 어떤 종교적 경건함이 묻어 있었다. 음악 자체에 여백이 많았기 때문에 사색할 수 있는 공간 또한 많았는데 이들은 조용한 음악이 지닌 힘에 대해 수차례 증명해냈다. 그러니까 로우는 시끄러운 것과 폭발적인 것이 같은 의미라는 개념을 무너뜨리는 한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들이 창조해낸 우주 속에 존재하는 소박한 아득함은 음악을 듣는 이들을 순식간에 압도했으며 수십, 수백 번신경을 전율시켰다. 완전하게 그들만의 시간 축으로 흐르는 음악. 그렇기 때문에 이 침묵의 성가들은 가볍게 시대를 초월하며 그 어떤 종교적인 음악들 보다 엄숙하다. ☞ 추천 음반 ◆ Christmas (Tugboat / 1999) 이교도들도 좋아할 수 있는 종교적인 앨범이라는 평가를 얻어낸 로우의 Christmas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크리스마스 앨범이다. 앨범에 수록된 The Little Drummer Boy의 경우 의외로 G모 의류회사의 TV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앨범 안에는 상업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우리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고 적어 놓았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2024.04.16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 ‘단통법’ 10년을 되돌아보며 배경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단말기 유통법(단통법)은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하고, 일부에게만 집중된 보조금을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게 해 이용자 편익을 증진하자는 취지에서 2014년에 제정된 법이다. 이른바 호갱을 없애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법인데, 어수룩해 이용하기 쉬운 고객을 얕잡아 부르는 표현인 호갱은 바로 휴대전화 유통 부문에서 최초로 쓰인 용어다. 단통법은 제정 직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는데 최근에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단통법 폐지를 외치는 상황이 됐다. 단통법 제정 10년을 맞이한 현시점에서 단통법의 득과 실을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통법의 출발에는 잦은 단말기 대란이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단말기를 구매하더라도 정보력이 차이에 따라서 그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최신 단말기가 공짜로 판매되기 일쑤였고 정보력이 떨어지는 고객들은 제값을 주고 단말기를 구매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극심한 이용자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규제를 새롭게 담은 법이 단통법이었다. 단통법은 가입하는 요금제 수준과 연계된 합리적인 단말기 지원금 차등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한 차별적인 지원금 지급은 금지했고 이통사와 유통점은 지원금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게시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특히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은 기존 고객들에게도 지원금에 상응하는 할인을 제공하도록 해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아도 통신 요금을 절감할 수 있도록 했고 불필요한 단말기 과소비를 억제하고자 했다. 단말기 유통법은 그 시행 초기부터 잡음이 끊기지 않았다. 새로운 규제로 인해 이통사의 마케팅이 위축되고 지원금이 크게 줄면서 불만이 커졌다. 국회를 중심으로 즉각적인 법 개정 요구가 제기됐고 이통사를 단말기 유통에서 완전히 배제하자는 완전자급제 논의도 활발했다. 정부는 단말기 유통법에 대한 다양한 보완책을 제시하면서 시장에서 성과가 나타나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 결과 이통사 유통채널이 아닌 자급제 단말기 유통이 활성화됐고 자급제 단말기와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를 결합하는 패턴이 등장한 점은 긍정적이었다.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대란의 빈도는 크게 줄었고 이용자 차별이 완화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경쟁에 있었다. 단말기 지원금 규제가 딱히 다른 경쟁, 즉 요금 경쟁이나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용자 차별을 완화하려고 하다 보니 이통사 변경에 따르는 지원금 차등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런 이유로 이통사 간 경쟁은 크게 둔화했다. 이통사를 변경하는 데에는 위약금, 결합 할인, 장기 가입 혜택 등으로 상당한 전환비용이 존재하는데 이를 지원할 방법이 부재했다. 실제로 2013년 1116만 건이던 번호이동 건수는 2022년 453만 건으로 감소하는 등 사업자 경쟁이 많이 위축됐다. 한편 단말기 유통규제는 글로벌 규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과거에 미국, 핀란드, 벨기에 등의 국가들에서는 서비스와 단말기의 결합 판매가 이용자의 선택권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한 바 있으나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폐지했다. 일본이 우리의 단통법의 일부 내용과 유사한 지원금 규제를 도입했는데 시장에서 규제가 잘 작동하지 않아 이를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단말기 지원금의 폐지 여부는 이통사들의 자발적 선택의 문제는 될지언정 법적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영구불변의 법은 없다. 법이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단통법도 마찬가지다. 단통법 제정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이동통신 시장은 포화되었고 시장의 성장 동력이 부재하며 사업자 간 경쟁은 부족하다. 단말기 유통 부문에 이런 이례적인 강한 규제를 별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글로벌 규제 완화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이제 법 제정 10년이 되는 시점에서 단통법 폐지론은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다. 물론 단통법 폐지로 인해 이용자 차별이 다시 극심해지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고민할 필요는 있지만, 단말기 유통법의 폐지를 통해서 이통사 간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가계통신비 절감과 소비자 편익 증진을 도모할 때이다. 2024.04.15 배경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