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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기고

전주성 숭실대 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 우리 교육 세가지 방향
기계혁명으로 일컬어지는 1차 산업혁명, 에너지 혁명의 2차 산업혁명, 디지털 혁명의 3차 산업혁명에 이어 목하 우리가 겪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그 범위와 차원에서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격이 크게 다르다. 특히나, 그 변화 방향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의 불안과 염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공학, 생명공학,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ies), 초연결과 초융합, 공유경제 등은 우리 사회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나타내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이 단어들이 갖는 의미는 문자적으로는 가치중립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대중의 통제 밖에서 어떻게 활용되는가이다. 더욱 의문은 과연 이들이 통제될 수 있기는 하는가이다.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하여 많은 예측들이 난무하지만, 어쨌든 우리와 우리의 후속 세대가 그 격랑 한가운데 위태하게 떠 있는 배에 올라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현재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우리가 경험하게 될 두 가지의 비관적인 예측이 있다. 첫째는 만들어진 것과의 공존 혹은 그것으로부터의 소외이다. 짐 데이터 (Jim Dator)는 인간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실업의, 꿈의 사회를 예언하였지만, 다수의 미래 예측가들은 잉여 인간의 출현을 예언한다. 많은 부문에서 인간의 노동은 로봇으로, 의사결정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게 될 것이다. 테슬라모터스의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의 상용화로 인간의 20%만이 유의미한 직업을 갖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지난 11월 11일 중국의 광군제에서 알리바바가 하루 만에 기록한 28조의 매출은 사실상 인공지능과 자동화 로봇의 기여이다. 다양한 영역의 일자리에서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둘째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이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류는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를 경험하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첨단의 기술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는 급격히 심해질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Zigmunt Bauman),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와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분단된 사회의 위험을 지적한다. 20:80의 사회는 점점 10:90의 사회로 향해 가고 있다. 우리나라 2015년도 기준 소득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48.5%에 달할 정도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헬조선, 삼포세대라는 용어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조가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우리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우선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첨단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초연결 사회화는 역설적이게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파편화시키고 피상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어느새 직접적이기보다는 SNS 기반의 짤막하고 간접적인 의사소통에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무수한 연결과 대화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냄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외로운가? 지금까지의 교육이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교육이 인간다움의 회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것의 핵심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이는 새로운 경쟁 상대인 기계와의 싸움에서 대중의 인간이 이길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개인적 가치의 다양성 존중이다. 산업화 시대 교육의 이상은 이 시대에 적합한 표준화된 인간의 양성이었다. 인간을 하나의 표준에 맞추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procrustean bed)의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우리의 교육은 각 개인이 가지는 있는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고, 나아가 이들이 이루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고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는 미래사회에서의 생존에 필요한 핵심역량의 강화이다. 이들 역량은 대체로 자기이해력, 복잡한 문제해결력, 타인과의 협응력, 올바른 판단 및 의사결정 능력, 새로운 테크놀로지 이해력, 사회체제 변화에 대한 민감성(시스템적인 사고능력), 자기주도성 등이다. 우리의 교육이 위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평생교육체제라는 큰 그림 안에서 형식교육체제의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우선 다양한 목적을 가진 학교의 설립과 운영, 미래사회 핵심역량 기반의 교육과정 구축, 고등교육체제에서의 나노디그리(nano-degree)와 같은 융통성 있는 학력의 인정 등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껍질을 깨야만 숨을 쉴 수 있다.
전주성 숭실대 교수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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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한기봉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힘
헬무트 콜은 1990년 거의 무명에 가까운 동베를린 물리화학연구소 연구원 앙겔라 메르켈을 여성청년부 장관에 발탁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년 뒤다. 위대한 독일통일의 아버지는 약관 36세의 메르켈을 나의 소녀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2005년 소녀는 총리가 되었다. 독일 역사상 최초 여성 총리, 동독 출신 첫 총리, 전후 최연소 독일 총리가 됐다. 독일인은 그 이후 지금까지 총리관저에서 새로운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는 지난 9월 총선에서 승리해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자신이 당에서 축출한 정치적 대부이자 최장수 총리였던 콜과 같은 16년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3)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혔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는 지난 1일 2017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을 선정하며 메르켈을 가장 먼저 호명했다. 그는 7년 연속 포함됐고 열두 번 1위를 차지했다. 두 해 전인 2015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메르켈을 선정했다. 여성 단독으로는 30년 만이었다. 앙겔라 메르켈이 21세기 첫 4반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빛나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사실에 이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메르켈의 정치적,외교적 리더십에 대한 분석과 일화는 차고 넘친다. 책도 많이 나왔다.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교육과 경험과 위기에서 단련되고 만들어지지만, 여성 정치인 메르켈의 경우에는 좀 특별하다. 그의 인간적 성품 자체가 리더십의 큰 부분을 차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그의 인간적 면모와 품성과 개인 생활은 정치외교에 비해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성품 자체가 소탈하고 드러내길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가 장관에 발탁되었을 때 독일 정치판은 압도적으로 남성 천하였다. 마흔도 안 된 이혼녀에 아이도 안 낳아본 여자에게 여성청년부를 맡기냐고 말이 많았다. 언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얼핏 콜걸을 연상시키는 콜의 여자(Kohl's Girl)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세련된 구 서독 정치인의 이미지에 익숙했던 언론은 동독의 촌스런 시골 여자를 대놓고 놀렸다. 콜 총리도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는 메르켈이 자기 옷을 입고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언론이 뭐라 떠들든 대꾸하지 않았다. 제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해 나갔고 점수를 따나갔다. 정치는 이미지라고도 하지만 메르켈은 자신을 도드라지게 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편이다.여성임을 표 나게 앞세우지도 않는다. 카메라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대처처럼 대차지도 않고, 힐러리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패셔니스타로 통하는 이웃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처럼 차림새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 관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화장기 없고 바른 듯 만 듯한 립스틱, 이발소에서 싹둑 깎은 듯한 숏컷 헤어 스타일, 박스 모양 재킷에 벙벙한 검은 바지, 뭉툭한 단화. 독일인들은 그 차림을 총리의 유니폼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머리 모양에 대한 지적에 대해 머리를 매만질 시간이 없어서 한 번 만진 머리는 열두 시간 이상 버텨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스타일 사진이 두 번 국내외 언론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15년 국가부도를 선언한 그리스 정부의 구제금융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을 때, 맨 얼굴에 채 말리지 못한 젖은 머리로 급하게 공관에 출근하던 모습이 하나다. 그 사진은 지금도 그날의 올림머리와 비교돼 인터넷을 맴돈다. 또 하나는 정반대다. 2008년 노르웨이의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공연에 초대받았을 때다. 메르켈은 가슴과 등이 파격적으로 깊게 파인 검은 이브닝 드레스에 푸른 숄을 걸치고 왔다. 언론에서 난리가 났다. 사진에는 드디어 총리가 가슴선을 보여 줬다는 설명이 붙었다. 한 신문은 메르켈의 대량 살상 무기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실었다. 다음날 총리 대변인은 총리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보다 드레스에 이목이 쏠린 상황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다. 행사의 주인공인 노르웨이 공주보다 관심이 더 집중돼 미안하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드레스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지난 여름에는 영국의 한 언론이 메르켈 총리가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 북부 산악 휴양지의 한 호텔에서 매년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늘 같은 옷이었다며 보라색 체크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 차림의 5년간 사진을 증거로 보여줬다. 그는 공식석상에서도 같은 옷을 여러 차례 다시 입고 등장하는 것에도 개의치 않는다. 메르켈은 총리관저에서 살지 않는다. 남편과 베를린 시내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문에는 남편 요아힘 자우어 훔볼트대 화학과 교수의 이름이 붙어있다. 남편 역시 대중 앞에 나서기를꺼린다. 아내의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휴가를 떠날 때도 메르켈은 관용기로, 남편은 민간 여객기로 따로 간다. 메르켈은 두 번 결혼했지만 자녀는 없다. 물리학자와 결혼했다가 5년 만에 이혼했는데 첫 남편의 성인 메르켈을 고집하고 있다. 집에서는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며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며 쉬는 걸 좋아한다. 다섯 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사저에서의 생활은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남에게 드러내길 싫어하지만 소탈하고 특권을 내세우지 않는 그는 시장이나 약국,미용실,음식점 같은 의외의 곳에서 시민이나 언론과 마주쳐 사진이 찍힌다. 2015년 조선일보 베를린 주재 기자가 동네 수퍼마켓서 메르켈을 만난 기사와 사진을 보도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꼬깃꼬깃한 장바구니를 들고 전용차에서 내려 1유로 동전을 넣고 카트를 꺼냈다. 1993년부터 매주 이 곳에 들러 생필품을 구입한다고 한다. 이날은 종이에 적어온 걸 보면서 오렌지, 가지, 양배추, 로션, 주방용 타월, 레드와인, 초콜릿, 밀가루, 토마토소스 등을 사고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자기 카드로 결제했다. 동네의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였다. 주인도 쇼핑객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를 다룬 평전을 보면 메르켈은 꽤 인문학적이며 학구적이다. 그런 취향이 지도자의 덕목인 혜안과 통찰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메르켈은 러시아어와 러시아 역사에 능통한 문학 애호가다.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체홉,푸시킨 책을 탐독한다. 2014년에 회갑을 맞았는데 집권 기독민주당(CDU)이 주최한 회갑 선물은 역사 강연회였다. 저명한 학자 위르겐 오스터함멜이 역사의 시간적 지평이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가 직접 초대했다고 한다. 이 생일파티 때문에 브뤼셀에서 열기로 했던 유럽연합 정상회의 날짜가 연기됐다. 그게 유럽에서의 메르켈의 위상이다. 메르켈의 인간적 품성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소박한 차림, 검소한 생활, 소탈한 품행이다. 마초 같은 상남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뚝심에, 이웃집 아줌마 같은 편안함이 정치적 장수의 첫 번째 비결이라고 분석한 정치평론가가 많다. 그래서 독일인이 붙인 그녀의 별명은 무티(Mutti, 엄마)이고 그녀의 리더십은 엄마 리더십이라고 불린다. 그에 대한 독일 언론의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메르켈은 권력을 가진 것을 특별하지 않은 일로 바꿔 놓았다. 그녀는 권력을 과시하지 않는 힘을 가졌다. 메르켈은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서울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국내 몇몇 언론이 두 지도자가 여러 점에서 닮았다고 기사를 썼다. 여성-비슷한 나이-보수(정당)-전공(이과)-분단의 역사를 거론했다. 그로부터 7년 후, 한 여자는 4연임에 성공했고 한 여자는 임기 중에 창살에 갇혔다. 그런데 두 여인을 비교하면서 가장 중요한 걸 간과했다. 메르켈은 동독의 작은 교회 가난한 목사의 딸이었다. 그는 자수성가했다. 박 대통령보다 2년 4개월 늦게 태어났지만 그때에도 눈가와 입언저리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였다.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기봉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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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평창 메달, 평창만의 독창성과 한국의 미 표현”
이석우 디자이너가 지난 9월 2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메달 공개 행사에서 메달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은,동메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메달 디자인의 컨셉은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음성 체계이자 우리 민족의얼이담긴 한글이다. 메달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한 온 국민의 기대와 염원을 품은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IOC와 국제경기연맹으로부터 역대 올림픽 메달 중 신선하고 창의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평창올림픽 메달, 우리 민족의 한글 입체감있게 표현 내년 2월강원도 평창에서 선의의 경쟁을 치른 선수들에게 수여될 금,은,동메달을 디자인한 이석우 디자이너(40)를 서울마포구 서교동 디자인컨설팅회사 SWNA 사무실에서 만나 메달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한 이석우 디자이너는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약 1년간 메달 디자인에 몰두했다. 한국 최초로 열리는 동계올림픽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영광스럽다고 밝힌 이석우 디자이너는 책임감을 갖고 메달 디자인 작업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되서 굉장히 영광스럽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도 들었죠. SWNA 회사 스탭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이큰 힘이 됐고요.아무래도 아이디어를 다듬고 발전시켜 최종 결과물에 이르는 데 가장 고심했죠. 형태, 소재, 제조 공정 전 과정에 디자인 콘셉트와 아이디어가 일관되게 반영되도록 노력했어요. 이석우 디자이너.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은 역대최초로 측면에 메시지가 담겼다.메시지는 바로우리의 민족의 근간을 뜻하는 한글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우리 문화유산을 어떻게 메달 디자인에 반영할지 고심했다며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세계 각 나라 선수의 열정과 노력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강원도 평창의지역적인 특색을표현하는 동시에우리 민족의 정신을메달에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문화의 근간의 커다란 뿌리는 바로 언어죠. 이런 언어 생활양식은 그 민족과 국가의 문화를 만들고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글을 창의적으로 형상화하고 입체화할지에 중점을 뒀죠.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은 현존하는 가장 완성도 높은 음성체계인 한글을 모티브로 자음이 길게 뻗어나가는 형상으로 역동적이면서 새로운 형상을 제안하는 컨셉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의 씨앗이 진화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꽃과 열매가 된다는 함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기존 메달과 다른 평창만의 독창성을 담고 싶었다며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며 우리 문화의 근간이자 씨앗이며그 씨앗이 곧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자음을 입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정신 선수들의 노력과 인내표현 메달 앞면을 보면 좌측 상단에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이 그려졌다. 선수들의 노력과 인내를 표현한 역동적인 사선이 펼쳐졌다. 뒷면에는 대회 엠블럼과 세부 종목명을 담았다.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인 측면과 정면. (사진 =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측면이다. 테두리를 빙 둘러 평창동계올림픽이공일팔의 초성과 종성의 자음을 딴 ㅍㅇㅊㅇㄷㅇㄱㅇㄹㄹㅁㅍㄱㅇㄱㅇㅇㄹㅍㄹ을 새겨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그는문자와 사선이 연결되는 부분의 경우 제조공법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스트랩도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소재라 여러 과정을거치며 연구를 거듭했다고 설명했다. 또한복의 천을 사용한 메달 리본과 우리 기와의 곡선을 살린 메달 케이스를 통해 전통미와 독창성을 부각했다. 한국적인 세련미를 표현하는 초점이 맞춰졌다. 메달을 목에 걸 리본(스트랩)에는 PyeongChang 2018과 오륜기를 새겼다. 전통 한복 특유의 갑사 기법을 통해한글 눈꽃 패턴과 자수를 섬세하게 적용했다. 리본은 대회 룩의 라이트틸(Light Teal)과 라이트레드(Light Red)의 두 가지 색을 사용했는데 폭은 3.6cm이고, 메달을 장착했을 때의 길이는 42.5cm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 한복에는 은은하고 단아한 멋이 있다며 이 아름다움을 메달 리본에 잘 표현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국적 아름다움 살린 메달 리본 원목으로 만든 메달 케이스는 전통 기와지붕의 곡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디자인했다. 2014년 소치 대회와 비교하면 금메달과 은메달은 더 무거워졌고 동메달은 가벼워졌다. 메달의 지름은 92.5㎜, 두께는 최소 4.4㎜, 최대 9.42㎜이다. 무게는 금메달이 586g, 은메달이 580g, 동메달이 493g이다. 금메달과 은메달은 순은(순도 99.9%)으로 제작했고, 금메달의 경우 순은에 순금 6g 이상을 도금하도록 한 IOC 규정을 준수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은,동메달. 동메달은 단동(Cu90-Zn10) 소재이며, 은메달과 함께 착조 형태로 마감된다. 동계패럴림픽 메달은 현재 제작 중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과 더불어 패럴림픽 메달 디자인에도 참여한이석우 디자이너는 패럴림픽 메달은 사선 모양이 아니라 수직 패턴이며 이는 평등하다라는 의미를 담고있다고 설명했다. 메달은 올림픽의 상징이다. 우승자에게 금,은,동메달이 수여되기 시작한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 때였고 선수 가슴에 달아주었다. 목에 거는 메달은 1960년 로마올림픽에 등장했다. 메달은 개최국의 특색을 드러내는 동시에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지 30년만에 치러지는 동계올림픽이다. 이석우 디자이너는평창올림픽 메달의가치, 올림픽 메달의 정신이 잘 드러나도록 심혈을 기울인 만큼 내년에 올림픽 때잘 쓰여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는 평창올림픽 메달을 모두 259세트를 제작한다. 한국조폐공사가 제작에 참여한다. 259세트 가운데 222세트는 102개 세부종목 영광의 입상자들에게 수여하고, 나머지는 동점자 발생 대비용(5세트)과 국내외 전시용(국제올림픽위원회 25세트, 국내 7세트)으로 활용된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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