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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그 불편한 진실을 넘어서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2017.12.29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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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거리에는 어김없이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기 울려 퍼지고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언제라도 치솟을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구세군 냄비를 향한 손길은 뜸하고 사랑의 온도탑의 열기는 예년 같지 않다고 한다. 국정농단 사태로 기부문화가 한 차례 위축된 데다 최근 ‘어금니 아빠 사건’ 등 기부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일들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기부 민심이 식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연말이면 왠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것을 ‘연말정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특별한 감정이 존재하는 한 미지근한 사랑의 온도탑은 이내 온기를 더할 것이며 구세군 냄비를 찾는 손길 또한 분주해질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현장은 곳곳에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오후, 서울 인사동 한 갤러리는 젊음의 발길로 북적였다. 입양동화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이 건전한 입양문화 확산과 편견 해소를 위한 그림동화 ‘가족이 되었어요’를 발간하고 이를 기념해 전시를 마련했다.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가는 강아지 ‘푸실이’가 단짝 친구 ‘까끌이’와 함께 새 아빠를 찾아 마침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잔잔한 그림과 우화 형식의 글로 풀어냈다. 주최 측은 전시가 호응을 얻자 지방순회전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 무대도 계획 중이다. 

15컷의 그림과 짤막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만큼 줄거리는 간략하다. 하지만 메시지는 강렬하다. 높은 곳에 올라가 무언가 찾는 걸 유달리 좋아하는 푸실이와 까끌이는 ‘해가 땅에 박치기할 때가 돼서야’ 아래로 내려온다. 망원경까지 들고 무엇을 그렇게 찾는 것일까. 바로 푸실이의 새 아빠가 되어줄 사람, 손이 커서 음식도 척척 만들고 나무집도 잘 짓는 그런 아빠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까끌이의 아빠다. 푸실이는 이제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밤 늦도록 창가에 앉아 밤 고양이를 구경하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까끌이네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작은 일로도 잘 웃는 새 삶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화의 힘은 세다. 인격화한 주인공 강아지가 전하는 풍자와 교훈의 메시지는 어떤 소설의 언어보다도 울림이 크다. 입양, 그러니까 새로운 가족됨의 의미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이 그림동화가 보여주듯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사랑의 온기를 함께 나누는 데 있다. 그것은 곧 ‘인간의 회복’에 다름 아니다.  

입양의 진정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해외 입양의 불편한 진실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 입양은 ‘고아수출’, ‘아동거래’ 같은 부끄러운 낙인이 찍힌 지 오래다. 한국은 1952년 정부가 전쟁고아들을 위해 사회복지 시설 제도와 위탁부모 정책을 도입한 이래 65년간 ‘입양아 수출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해외로 입양된 ‘IMF 고아’들도 적지 않다. 해외입양의 흑역사를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외 입양을 주요 국정 사안의 하나로 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15만 명의 한국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것에 대해 국가와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고아 수출에 생각이 미치니 지금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릴 때 미국 가정에 입양된 후 20년 만에 생모를 찾아 한국에 온 청년 조쉬는 이렇게 노래한다. “어렸을 적 난, 모든 아기들이 공항에서 태어난다 생각 했어.” ‘입양 송출’의 씁쓸한 현실이다. 입양의 어두운 면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지 모른다.

해외 입양인의 정체성 혼란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찾기 위해 떠난다. ‘뿌리 여행’이다. 그러나 남는 것은 결국 나에게는 부모가 없다는 정신적 고아의식이다. 그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질적이고 탈영토화된 존재다. 또 다른 ‘종족의 발생(ethnogenesis)’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유엔아동권리헌장은 ‘어린이는 가정에서 보호받고 사랑받으면서 살아갈 권리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유엔의 이런 규정이 무색하게 우리의 아동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부모의 사망·이혼 등으로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어린이가 4500명이 넘는다. 지난해 기준 1만 3600여 명의 어린이가 보호시설에서 자란다. 이른바 ‘시설아동’이다.

이들에게 새 가정을 찾아주어야 한다. 그 길은 입양,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바른’ 입양이다. 올해 국내 입양 아동수는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줄어드는 반면 해외 입양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비단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언필칭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가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최우선적으로 출생 가족에게서 양육돼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동일한 문화권인 자국 내에서 보호되도록 하며, 그것도 어려우면 최후의 수단으로 해외 입양을 허가하도록 돼 있다. 아동의 해외 입양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이다.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비준동의안이 처리되면 연간 수백 건씩 발생하는 국내 아동의 해외 입양 건수가 적잖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저주와도 같은 ‘고아 수출국’의 오명은 이제 벗어던져야 한다.

일각에서는 해외 입양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입양은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내듯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단 해외 입양을 최대한 줄이고 입양의 물꼬를 국내로 돌리는 것이 현실에 맞는 처방이다. 해외 입양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사어(死語)가 될 때까지 아동이 중심이 되는 ‘행복입양’ 바이러스를 전파해 나가야 한다.

국내 입양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시 입양동화 속 푸실이가 늘 높은 데에 올라 새 아빠 찾기 장면이 겹쳐진다. 이는 기존 입양 패턴의 역전이다. 어른이 아이가 마음에 들거나 눈에 밟혀서 하는 입양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를 고르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입양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면

◆ 김종면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

서울신문에서 문화부장 등을 거쳐 수석논설위원을 했다. 지금은 국민권익위원회와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겸임교수로 세계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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