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6조(벌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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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개정 2011. 12. 2.>
1. 저작재산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제93조에 따른 권리는 제외한다)를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
2. 제129조의3제1항에 따른 법원의 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위반한 자 -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개정 2009. 4. 22., 2011. 6. 30., 2011. 12. 2.>
1.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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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7. 제104조의7을 위반한 자
4. 제124조제1항에 따른 침해행위로 보는 행위를 한 자
5. 삭제 <2011. 6. 30.>
6. 삭제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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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이다. 겨울이었다.
딴치섬으로 가는 갯길에서 이쁜이 어머니를 만났다. 곱게 화장을 하고 핸드백 대신 조새와 조락을 들고 작은딴치섬으로 가는 길목에서 굴을 까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주민이 아닌 줄 알았다. 다시 그 길을 걸으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두리번거렸다.
내 맘을 알았을까. 할머니 한 분이 ‘뭘 그렇게 찍어요’라며 질책과 웃음 반으로 말을 걸었다. 왼손에 호미와 그릇을, 오른 손에는 깔개방석을 등에는 배낭을 짊어졌다. 이쁜이 어머니가 앉아서 굴을 까던 그 자리에서. 허리는 직각으로 굽었다.
그래도 걸음은 나보다 빠르다. 갯길인생만도 내가 평생 살아온 세월보다 많으니 젊음으로 덮을 수 없다. 그사이 노인은 갯벌을 닮고 바다를 닮아갔다. 그렇게 딴치섬으로 갔다.
바지락을 캐러 딴치도로 향하는 할머니. 허리는 직각으로 굽었지만 60평생 갯벌인생이라 걸음은 필자보다 빠르다. 삶이 바다고 갯벌이 되어버렸다. |
그 많던 조기는 어디로 갔을까
한때 사람이 살았던 딴치섬은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치도리에 딸린 무인도도 큰딴치섬과 작은딴치섬이 있다.
그 섬 밖으로 형제섬이 있고 황금조기들의 고향 칠산바다로 이어진다. 주민도 떠난 딴치섬을 지키는 것은 위령비다. 칠산바다에서 조기잡이를 하던 500여 척의 배가 세 차례 강타한 태풍으로 침몰해 많은 어부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확한 촬영시기는 알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치도리에 모여든 조기잡이 어선을 가늠할 수 있는 사진이다. 마을 앞 장불에 배들이 가득찼다. |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당시 치도리는 위도를 대표하는 마을이었다. 마을 앞 선창에는 중선배가 가득했다. 제주에서 황해도에 이르기까지 조선 팔도에 뱃사람은 모두 칠산바다로 몰려왔다. 어기가 끝나면 다음 어기까지 치도리에 머물며 어구를 손질하며 기다렸다. 그 덕에 치도리에는 파시가 서고 임시로 지는 막들이 들어섰다.
칠산바다는 신안군 임자면에서 영광군에 속하는 낙월도, 송이도, 안마도 일대를 포함해 부안군 위도, 왕등도 일대까지 바다를 말한다. 영광군에 속한 일곱 개 무인도(칠산도라 함)의 이름을 빌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1960년대까지 봄이면 팔도의 조기잡이 배들이 ‘돈 실러 간다’는 바다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조기가 군의 북쪽에 있는 파시평에서 산출된다’고 했다. 위도를 이르는 말이다. 영광 북쪽에 위치했고, 당시 위도는 영광군에 속했다. 위도에서 잡는 조기가 영광굴비가 되었던 이유다. 파시평은 바다난장으로 칠산바다를 말한다.
고기잡이배가 하왕등도를 지나고 있다. 그 앞으로 보이는 섬 왼쪽 끝자락이 상왕등도 영해기점을 알리는 표지탑이 세워져 있다. |
일제강점기에 위도를 비롯해 용호도, 연평도, 녹도 등에 조기파시가 형성되었다. 조기가 이동하는 길목이다. 칠산어장에는 조기만 아니라 병어, 민어, 새우가 많다. 병어와 민어는 조기와 마찬가지로 새우를 좋아한다. 새우는 사니질 갯벌로 이루어진 곳에 많이 서식한다. 이런 곳이 바닷물고기들이 찾는 산란장소다. 게다가 먹이도 많으니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치도리는 딴치도가 바람을 막아 주고, 풍선배를 정박하기 좋은 ‘장불’(썰물에 드러나는 모래밭이나 작은 조약돌 해변)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칠산바다와 지척이니 돛과 노를 이용했던 당시 중선배가 정박하기 최적이었다.
해안을 따라 ‘제주촌’, 일본 사람들이 있었던 ‘아래것’, ‘임자도’, ‘황해도’, ‘원산덕’(태안) 등 임시가옥들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지어졌다. 주민들 집 마당에까지 임시막이 지어졌다. 모두 조기잡이 뱃사람들이 머무는 술집과 밥집들이다.
파장금에 삼치와 전갱이 파시가 형성되었다. 조기가 떠난 뒤 찾아온 삼차와 전갱이가 조기가 떠난 쓸쓸한 섬살이를 메웠다. 그 후 멸치잡이로 간간이 어장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요식업을 했던 인천관의 흔적이다. |
위도는 어장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했다.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1682년(숙종8)에 처음으로 위도진이 설치되었다. ‘호구총서’에는 치도리, 대저항리, 식도리, 왕등도 등의 지명이 등장한다. ‘여지도서’에 위도진에 ‘첨사 아래에 53명의 수군이 있다’고 했다.
위도진 첨사는 수군만 아니라 사법과 행정을 모두 관할했다. 도서지역에 유일하게 수군첨절제사가 머물렀던 관아가 있었다. 이순신이 명량해전 이후 쇠잔한 몸을 이끌고 지친 병사들과 이곳에 머물며 최후 결전을 준비했던 곳이다.
동네 개도 조기 맛을 안다?
위도는 큰 섬이지만 농사지을 땅이 적다. 대부분 산과 구릉과 바위로 이루어진 섬이다. 위도평야라고 부르는 진리마을 안쪽 작은 논들은 묵정밭으로 변했다. 작은 밭을 일궈 양념채소류를 얻고 있는 정도다. 옛날에도 일년 농사지어 3개월을 버티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섬살이가 가능했던 것은 오롯이 바다 덕분이다. 특히 조기어장이 있어서 가능했다. 1960년대 후반까지 봄철 3개월 잡은 조기로 일 년을 먹고 사는 섬이었다. 오죽했으면 노인들은 ‘위도는 개도 조기를 물고 다닌다’고 했을까. 당시 신문기사(조선일보, 1961. 7.1)를 보자.
후조(候鳥)처럼 고기잡이배를 쫓아 옮겨 다니는 슬픈 얼굴들이 보인다. 입술과 눈썹을 진하게 칠한 매춘부를 그들을 돕고 다니는 음식점과 하숙집 주인들 매춘부들을 쫓아 다니는 약방 미장원 잡화상들-이들은 연평도 조기잡이로 모였다가, 5·6월에는 위도, 7·8월엔 흑산도 아지 잡이로 내려오고 흑산도의 고기잡이철이 지나면 제주도 속초 또는 자기 고향으로 줄줄이 헤어졌다가 이듬해 봄 다시 연평도 조기잡이 때에 모여드는 군상(群像)이다.
기사와 달리 조기회유로를 따라 조도, 흑산도, 법성포, 위도, 연평도 등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후조도 있었다. 또 자은도 사월포파시, 비금도 송치파시 원평파시, 재원도 파시 등 작은 파시 어촌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팔도에서 모여든 뱃사람들은 조기잡이에 나서기 전에 치도리나 대리 당집에 올라 준비해온 음식을 차려놓고 풍어와 안전을 기원했다.
여의치 않으면 뱃머리를 당집을 향하고 밥한 그릇에 물이라도 떠 놓았다.
치도리당에는 조기의 신으로 추앙받는 ‘임경업’ 장군으로 추정되는 신이 모셔져 있다.(왼쪽) 지금도 위도에는 정월 초이틀 진리마을 당산제를 시작으로 대리, 식도, 치도리 등 몇 개의 마을에서 마을제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초사흘에 치러지는 위도 띠배놀이가 볼만하다. 이 굿은 남해안별신굿, 동해안별신굿과 함께 서해안풍어제를 대표하는 마을굿이다. 치도리에 배들이 모여들면 포구에 가득 차 마을 앞 딴치도까지 건너다닐 정도였다.
정월이면 위도에는 여러마을에서 풍어제가 열린다. 특히 대리마을 원당제는 규모가 크고 띠배놀이라는 널리 알려진 헌식제가 볼만하다. 대리마을 원당제를 지낸 후 띠배놀이를 위해 마을로 내려가는 중이다. |
한 해 동안 모든 액을 내치며, 마을안녕과 풍어와 선원의 안전을 기원하는 띠배를 보내고 있다. |
당시에는 지금처럼 먼 바다로 나가지 않고 섬 주변에 그물을 드리우기만 해도 팔뚝만한 조기들이 걸려들었다. 그 조기가 ‘영광굴비’가 되었던 것이다. 대리에서 만난 서씨는 영광굴비는 사실상 ‘위도굴비’라고 주장한다. 당시 칠산바다 섬들은 모두 영광군에 속했다.
그래도 바다다
위도 중심이 치도리에서 파장금으로 이동한 것은 뱃길과 어법의 변화가 큰 몫을 차지했다. 어구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나일론의 등장이다.
당시 조기잡이를 주도했던 유자망, 안강망, 자망 등 그물이 면사에서 나일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조기어획량이 줄어들자 그물은 더 길어지고 더 멀리 나가서 조업을 했다. 원양어업이 눈을 돌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칠산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조도나 흑산도로 들어오기 전에 월동하는 조기를 쫓아가서 잡았다. 인천, 군산, 목포 등 안강망 배들이 앞 다투어 동지나 어장으로 진출했다. 이곳 어장은 일본어선들도 진출해 10여년 만에 이곳도 바닥을 드러냈다.
같은 시기에 계화도 간척사업, 영광 백수 간척사업, 법성포 간척사업 등도 갯벌을 막아 대규모 논과 염전을 만들기 위한 매립과 간척사업이 진행되었다. 서식환경이 바뀌었고, 조기가 좋아하는 새우도 예전같지 않으니 설령 조기를 쫓아가서 잡지 않는다 해도 황금조기를 기다리는 것은 허사다.
그 후 삼치파시나 아지(전갱이)파시가 형성되었지만 조기파시는 끝내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 위도에서 조기파시는 영영 사라졌다. 다만 위도 파장금에 상처처럼 파시 흔적이 남아 있고, 치도리에는 기억마저 사라졌다. 그 후 대리마을 중심으로 멸치잡이가 명맥을 이었다. 인근 식도, 고군산군, 비안도 일대도 낭장망을 이용한 멸치잡이로 20여년을 버텼다.
위도사람들은 ‘영광굴비’ 이야기만 나오면 그 조기는 위도어장에서 잡은 것이라 위도굴비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 위도는 전남 영광군에 속했었다. |
이제 바다사정이 바뀌면서 고기들은 새로운 서식처를 찾아 떠났다. 하지만 주민들은 삶터를 버릴 수 없다. 그래도 바다만 쳐다 볼 뿐이다. 위도에 작은 절집 내원사를 지키는 스님이 차를 내주시며 했던 말이 있다. ‘부처님께 하지 말고, 바다에 절을 하세요’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신단다. 위도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은 여전히 바다 덕분이라 믿기 때문이다.
작은 섬에도 사람이 있다
작은 섬으로 다가가자 검은머리물떼새가 요란스럽다.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에 대한 경고다. 배가 선착장에 닿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울어대더니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힘을 어찌할 수 없었던지 날아오르더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바퀴 주변을 돌더니 서쪽 곶 가마우지가 앉아 있는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바위에 앉았다. 필시 근처에 짝짓기 한 결과물이 있을 터이다. 힐끔 쳐다보았다.
이쁘죠. 선생님. 저녀석들 틀림없이 부부일 겁니다. 혼자 다니는 법이 없어요. 검은 턱시도를 입은 신사죠. 부리는 노랗고, 굴이나 조개 등 딱딱한 껍질을 쪼아 살을 빼 먹습니다.
섬을 사랑하는 시인 이생진, 아흔을 앞둔 나이에도 동행을 했다. 그리고 검은머리물떼새 이름을 몇 번이고 물어보신다. 녀석들 횡재했다. 머지않아 아름다운 시가 되어 날아오를 것 같다. 하얀 찔레꽃에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 기어코 핸드폰에 담는다.
검은머리물떼새가 자리를 비껴준 섬은 거륜도다. 위도 대리마을에서 불과 1㎞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오가는 객선이 없으니 뱃사람의 신세를 지지 않으면 오갈 수 없는 곳이다. 한 가구 혼자서 섬을 지키고 있다. 어느 방송에 출연한 후 인기남이 되었다. 방송이 가만 두겠는가.
섬에 올라서자 아직도 ‘국민학교’라는 문패가 그대로 달려 있는 학교 앞에 학생대신 염소들이 인사를 한다. 위도국민학교거륜분교장이다. 주인공이 사는 집 외에 헐지 않는 집 중 일부는 낚시꾼을 위한 방갈로가 되어 있었다.
거주민이 한 명인 거륜도는 위도에서 700~800미터 거리에 있고 여객선이 없다. 한때 분교가 있었다. |
위도에 딸린 작은 섬은 또 있다. 거륜도와 달리 한 시간 이상 뱃길을 달려야 닿는 왕등도다. 상왕등도와 하왕등도로 나뉘어져 있다. 일주일에 딱 두 번 객선이 닿는 섬이다. 얼추 헤아려도 10여 가구는 사는 것 같다.
군산에서 마지막 조업을 나온 꽃게잡이 어선도 잠시 쉬어간다. 그래도 상왕등도는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이라도 있다. 하왕등도는 바람만 조금 불면 배를 접안하기도 어렵다. 집들도 벼랑에 지은 제비집처럼 섬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주민들도 어기가 아니면 위도나 군산으로 나갔다가 들어온다. 우리 영토의 경계가 되는 기점도서다. 이 섬으로부터 서쪽으로 12해리가 우리 영해, 배타적경제수역이라 부르는 곳이다.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다. 이곳에 사는 섬사람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영해기점도서 표지석. 이곳으로 서쪽으로 12해리가 우리나라 영해에 해당한다. 동해안은 해안으로부터 12해리이지만 남해와 서해는 가장 바깥쪽 섬(기점)을 연결한 선을 기준으로 영해가 그어진다. 상왕등도가 기점섬의 하나다. |
서해 곳곳에 작은 섬에 이렇게 섬지기 노릇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뭉클해진다. 새들도 쉬어 갈 만한 거리에 있지만 바닷물고기들에게는 이런 천국이 없다. 한때 황금어장이었고 뱃사람들이 빈번하게 드나들었던 바다다.
위도바다가 황금바다이던 시절 주민들 바다가 아니었다. 팔도에서 몰려든 뱃사람들 바다였다. 주민들이 주인 노릇을 할 무렵에는 조기가 떠난 후 텅빈바다였다. 그나마 멸치가 있어 몇십년은 주민들이 어부로 생활했다. 이것도 잠시였다.
검은머리물떼새, 천연기념물이다. 산란철을 맞아 불쑥 찾아온 인간들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이다. 주변에 알을 낳아 품고 있다는 증거다. 늘 인간이 문제다. |
영광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새만금사업으로 다시 찾은 바다를 내놓아야 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때는 피해보상 말도 꺼내지 못했다. 새만금사업은 위도어장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바다의 생명인 물길을 막았으니 바다도 더 이상 바다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된 후 위도 인근 바다에 바닷물고기는 모두 떠났다고 낚시꾼들은 입을 모은다. 이런 상황이 방사선폐기물처리장 유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허균의 홍길동전 ‘율도국’ 모델을 위도로 비정하기도 한다.
적자와 서자 차별이 없고 탐관오리 횡포가 없는 사회를 말한다. 섬사람, 위도사람들, 어민들이 원하는 건강한 바다, 조기가 다시 칠산바다를 찾는 사회가 율도국이 아닐까.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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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뉴스 6·25전쟁 참전 고 티탈렙타 네덜란드 용사 유해 봉환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군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을 지킨 유엔 참전용사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다. 국가보훈부는 26일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네덜란드 참전용사의 유해 봉환식을 오는 29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A)에서 거행한다고 밝혔다.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는 1953년 4월 3일 네덜란드군 반호이츠 부대 소속 이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1954년 4월 23일까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고인은 21살의 나이에 자원해 6·25전쟁 참전을 결심했고 참전 일주일만에 오른쪽 엉덩이와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으나 다시 전장으로 복귀했다. 정전 하루 전날인 1953년 7월 26일 전개된 묵곡리 전투(340고지 전투)에서 여러 명의 전우를 잃은 아픔도 겪었다. 그는 6·25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1984년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정부 훈장을 받았고, 은퇴 후에는 반호이츠 부대 역사박물관에서 20년간 봉사하며 네덜란드군의 6·25전쟁 참전의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의 배우자 마리아나 티탈렙타(74세)씨는 남편이 생전에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기를 희망했고 남편의 유언대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게 되어 기쁘다고 유해 봉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유해 봉환식은 29일 오후 4시 40분경 유해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5시 30분부터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이 모시겠습니다라는 주제로 거행한다. 유해 봉환식에는 강정애 보훈부 장관, 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네덜란드 대사, 고인의 배우자, 손녀 등이 참석해 국방부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함을 향해 예를 표하고 추모사 후 봉송 차량까지 모시는 간결한 의식으로 진행한다. 추모사는 강정애 장관과 페이터 반 더 플리트 대사, 고인의 배우자가 차례로 낭독할 예정이다. 봉환식을 마치면 유해는 5월 1일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되며, 안장식은 유족과의 협의에 따라 2일 오후 2시부터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주관으로 거행된다. 가평전투 73주년을 맞아 방한한 영연방 4개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23일 오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전우의 넋을 기리며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국가보훈부 제공)2024.4.23.(ⓒ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편,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와 생전에 인연이 깊은 페트뤼스 호르메스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협회장과 반호이츠 부대원들도 방한해 일정을 함께한다. 유족을 포함한 방한단은 29일 입국한 뒤 유해 봉환식과 횡성전투기념식, 안장식 등에 참석한 후 다음 달 3일 출국할 예정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님의 유언에 따라 대한민국 부산에서 영예롭게 잠드실 수 있도록 예우를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 유엔기념공원에는 2015년 5월 레몽 베르나르 프랑스 참전용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26명이 사후 안장돼 있으며, 그중 네덜란드 참전용사는 5명이다. 문의: 국가보훈부 국제협력과(044-202-5912)
- 카드뉴스 사업장 이전으로 퇴사하게 되면 실업급여는 못 받나요? 자발적 퇴사임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통근이 곤란한 경우에 대해서 준비해왔습니다! 우리 모두 사례를 통해 고드래곤과 함께 알아볼까요? Ⅴ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기본 조건 실업급여를 수급하기 위해서는 다음 4가지 조건에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기여기간(180일 이상) 비자발적 퇴사 실업상태 적극적 구직활동 ※ 실업급여란?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 소정의 급여를 지급해 생계 안정 및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자발적 퇴사인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사유들이 있는데요!(예외사유) 통근이 곤란한 경우, 2개월 이상 임금체불 직장내 괴롭힘 등 이번엔 그중 통근이 곤란한 경우에 대해 사례로 알아볼까요? [사례1] 회사 이전으로 출퇴근이 멀어져서 퇴사하게 됐는데요? 이런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나요? - 네! 받을 수 있습니다! 사업장의 이전 또는 지역을 달리하는 사업장으로의 전근 등에 의한 사유로 퇴사 시 통상의 교통수단으로 통근 왕복 시간이 3시간 이상 소요된다면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됩니다! [사례 2] 결혼으로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할 예정인데, 이런 경우에도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되나요? - 네! 해당됩니다! 배우자 또는 부양할 친족과의 동거를 위한 이사로 퇴사를 하게 되는 경우,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됩니다. 다만, 위 경우를 제외한 사유로 이사하게 되어 퇴사하는 경우에는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돼요! 마지막으로 통근이 곤란한 사유로 인정되는 사례를 정리해볼까요? Ⅴ 사업장의 이전 Ⅴ 다른 지역 사업장으로의 전근 Ⅴ 배우자 또는 부양 가족과의 동거를 위한 이전 Ⅴ 기타 불가피한 사유로 통근이 곤란한 경우 위의 사유 중 한 가지에 해당되며, 통상 교통수단으로 왕복 3시간 이상 소요된다면 실업급여 수급 가능! 당연히 기여 기간, 실업상태, 구직활동 등의 요건도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 건강 심방세동 예방 관리 8대 생활 수칙 심장의 박동이나 리듬이 고르지 않은 것을 부정맥이라고 합니다. 심방세동은 부정맥의 한 종류로 심장 박동이 지속해서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심방세동이 생기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며, 심박이 빨라지므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걸을 때 숨이 차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붓거나 어지럽고 피로한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습니다. 전혀 증상 없이 우연히 발견되기도 합니다. 주로 어르신에게서 관찰되지만, 드물게 50세 이전의 중장년층에게서도 발병합니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뇌경색(중풍) 예방입니다. 맥박을 만져 보거나 혈압을 측정할 때 이상 상태가 관찰되며 스마트워치로 발견할 수 있지만 심방세동은 심전도 검사를 해야만 확실한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방세동 예방 관리 8대 생활 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두근거림이 있으면 항상 맥박을 재거나 심전도 검사를 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릴 때, 손가락을 가볍게 손목에 올려 맥박이 불규칙하지는 않은지 천천히 확인합니다. 자동 혈압계나 스마트워치를 이용하여 맥박수나 심전도를 측정합니다.두근거림이 지속되면 가까운 병원에 방문하여 심전도를 측정합니다. 2. 과음과 폭음을 삼갑니다. 술자리는 되도록 피합니다. 술은 하루에 3잔 이상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실 때 폭탄주와 원샷은 피합니다. - 폭탄주는 체내 알코올 흡수율과 전체 음주량을 높이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원샷은 혈중알코올농도를 급상승시켜 폭음으로 이어질 확률을 높이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3.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합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면 요가나 본인에게 맞는 유산소 운동을 하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려면 자기 몸을 스스로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제어 요법이 도움이 됩니다. - 과도한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심방세동을 유발하거나 심방세동 재발 빈도를 높입니다.- 생체 자기 제어(바이오피드백) 방법으로 깊이 호흡하거나 인위적으로 근육을 이완한다거나, 자기 체면, 명상 요법이 해당합니다. 4.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과 같은 기저질환을 잘 관리합니다. 혈압을 자주 측정하여 목표 혈압이 유지되는지 확인합니다. - 고혈압 환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혈압약을 먹기 전과 자기 전에 측정한 혈압이 중요합니다. 본인의 목표 혈압이 얼마인지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혈압약은 매일 같은 시간에 먹습니다. - 약을 깜박 잊는 경우 생각나는 즉시 먹어야 합니다. 본인의 당화혈색소를 확인합니다. - 심장, 혈관에 가장 좋은 수치는 일반적으로 6.5% 이내입니다.- 본인의 당화혈색소가 잘 조절되고 있는지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5. 수면 무호흡을 잘 관리합니다. 수면 무호흡과 심방세동 발생을 줄이려면 적절한 체중 유지가 중요합니다. - 자신의 적절한 체중[(키(㎝)-100)0.9]을 확인합니다. 잠을 충분히 자도 낮에 계속 피곤하고 나른하다면 수면 검사를 받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 이후 음식물 섭취를 피하고, 가벼운 운동을 합니다. 6. 금연을 합니다. 흡연은 심방세동의 위험 인자이므로 금연합니다. 금연을 위한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니도록 합니다. - 금연, 체중 감량, 금주, 운동 등의 생활 습관은 심방세동 예방과 심혈관 건강을 증진합니다. 금연이 어렵다면 금연 교실, 금연 약물 등과 관련해 담당 의사와 상의합니다. 7. 비만을 관리합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합니다. - 식습관을 파악하기 위해 식사 일기를 적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짠 음식, 단 음식, 기름진 음식을 줄이고 물을 충분히 마시는 습관을 기릅니다. 매일 20분 이상 걷기 운동을 합니다. - 심한 무릎관절염과 같이 걷기 운동이 무리가 될 때는 담당 의사 판단에 따라 다른 운동으로 대체합니다. 하루 7~8시간의 충분한 수면 시간을 지킵니다. 8. 심방세동으로 진단받으면 반드시 적절한 치료를 받습니다. 심방세동을 치료하지 않으면 뇌졸중, 심혈관질환 등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아집니다. 심방세동을 치료하려고 약물치료를 받을 때 약물 순응도와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 심방세동을 치료하지 않으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발생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자료=질병관리청·대한의학회
- 사진 산림청, 전남 구례 사방사업지 산사태 예방 대응 태세 점검 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여름철 산사태 예방을 위해 사업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여름철 산사태 예방을 위해 사업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주민안전을 위해 견실하고 철저한 시공을 당부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보건소 스마트워치로 건강 관리 시작합니다! 스마트워치가 생겼습니다. 팔목에 착 감기는 착용감이 무척 편안합니다. 시계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전화, 문자, 카톡 알림도 신속하게 들어옵니다. 전화 걸기와 받기까지 가능합니다. 이뿐일까요. 심박수와 스트레스 측정 또한 간편하게 체크할 수 있습니다. 이 스마트워치의 최대 기능이라면 개인의 활동 및 운동 데이터가 수집, 전송된다는 것입니다. 유명 브랜드의 스마트워치 못지않은 성능과 디자인으로 제 일상의 건강 관리를 돕고 있습니다. 성능과 디자인이 모두 훌륭한 보건소 스마트워치. 국민의 건강을 위한 워치형 스마트밴드(스마트워치)를 지난 4월 12일 지자체 보건소에서 받아왔습니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의 일환인데요. 모바일 헬스케어란 ICT를 활용한 공공형 건강 관리 서비스로 6개월간 진행하는 장기 프로그램입니다.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채움건강 앱과 활동량계(스마트워치)를 통해 기록된 개인별 생활습관을 모니터링해 맞춤형 건강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건소 채움건강 앱. 매년 초 각 지자체 보건소에서는 모바일 헬스케어 참여자를 모집해 6개월간 사업을 진행하는데요. 저는 지난 2월 신청해 4월 12일 초기검진을 실시했습니다. 검진에서는 혈압, 공복혈당, HDL, 중성지방, 허리둘레 등을 체크했습니다. 최근 혈압이 높았던 저는 혈압 대상자에 해당돼 모바일 헬스케어 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1시간 이상 교육 및 상담이 이뤄졌습니다. 일단 진료실에서 의사와 상담을 했습니다.혈압이 높은 이유는 체중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체중을 줄이면 혈압도 자연히 내려간다고 말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지속 가능한 건강 관리를 위해 한 달에 1.2kg 감량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너무 무리해서 빼지도 말고, 절대 굶지 않기를 권유하셨습니다. 3개월 뒤 중간점검이 있을 시 3.6kg 정도를 감량하면 아주 건강한 다이어트가 될 거라말씀하셨습니다. 보건소에서 제공한 계절별 건강 식단표. 다음으로는 식단 관리를 위해 영양사님을 만났습니다. 제 수치를 보고 필요한 식단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하루 섭취 칼로리는 2000kcal로 설정해 주셨습니다. 그림처럼 아침, 점심, 저녁 정확한 식단표도 보여줬습니다. 한 끼마다 채소 두 가지 이상을 꼭 섭취할 것, 잡곡밥 먹기, 먹는 순서까지도 세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모르고도 못했고, 알고도 실천하지 못했던 식단 관리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채움건강 앱을 통해 매일 제가 먹는 식사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여러 이벤트를 통해 꾸준히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셨습니다. 보건소에서 나눠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근력운동. 마지막으로 운동관리사를 만났습니다. 일상 속 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주며 퇴근 후에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기를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7000보 이상 걸을 것을강조했습니다. 개인 운동 역시 운동일기를 적으며 매일매일 꾸준히 실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모든 활동은 스마트워치와 채움건강 앱을 통해 보건소 분야별 전문가에서 전달될 예정이며, 만약 변화가 없을 경우 개별 상담이 꾸준히 이뤄질 것입니다. 사실 건강 관리라는 것이 의지 만으로 오래 지속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보건소의 도움으로 6개월간 지속 관리를 통해 천천히 변화를 꾀하고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초기검진, 중간검진, 최종검진으로 저는 6kg 이상을 근 손실 없이 체지방만 빼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초기, 중간, 최종검진 항목. 보건소에서 수령한 스마트워치는 6개월 간 충분히 잘 활용하면 무상으로 증정된다고 했습니다. 6개월 뒤에도 스마트위치를 활용한 건강 관리를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전국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건강 관련 지원사업에 꼭 참여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깐요.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영미 pym11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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