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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을 따라 파리의 거리를 걷다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프랑스/파리(Paris)

2016.12.02 정태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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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사랑 이외에 음악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진실한 사랑은 음악만큼이나 나를 불행하게 만들겠지만 그래도 나는 음악과 평생을 같이할 것이다.” ‘관현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베를리오즈가 한 말이다.

시대를 앞서간 독창적인 낭만주의 작곡가였던 그가 남긴 음악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단연 <환상 교향곡>이다. 이 곡에는 ‘어느 예술가의 생애의 에피소드’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이 작품은 그의 불같았던 사랑의 에피소드와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에 파리에서 그의 추억이 담겨진 현장을 몇 군데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여행이 되리라.  

오데옹. 베를리오즈는 이곳에서 영국극단이 공연하는 햄릿을 관람했다.
오데옹. 베를리오즈는 이 곳에서 영국극단이 공연하는 햄릿을 관람했다.

먼저 센강 남쪽 6구에 있는 뤽상부르 공원 바로 북쪽에 위치한 오데옹(Odéon)으로 향한다. 1827년 9월 11일, 24세의 베를리오즈는 바로 이곳에서 영국극단이 공연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보게 되는데 극 중 인물 오필리아 역을 맡은 아일랜드 여배우 하리엣 스미드슨에게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3살 연상인 그녀에게 구애의 편지를 계속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무반응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파리를 떠나고 말았으니 가슴만 조리던 베를리오즈의 실망은 이만저만 아니었으리라.    

오데옹에서 센 강을 건너 19구에 있는 옛 파리 음악원으로 향한다. 파리 음악원은 1795년에 설립되었는데 현재 이 곳은 국립 고등 드라마 예술학교로 사용되고 있고 음악원은 라 빌레트 지역으로 이전했다.

옛 파리 음악원 건물. 지금은 국립 무용학교가 들어서 있다.
옛 파리 음악원 건물. 지금은 국립 무용학교가 들어서 있다.

유서 깊은 이 옛 음악원 건물 입구에 붙어있는 명판에는 바로 이곳에서 베를리오즈가 1830년에 <환상 교향곡>, 1832년 <렐리오>, 1834년 <이탈리아의 해롤드>, 1839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초연했다고 새겨져있다.

그가 초연한 이 작품들 중에서 <환상 교향곡>이 바로 하리엣 스미드슨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상처에 대한 반작용으로 작곡한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이 곡을 초연하고 2년이 지난 후에 마침 그녀를 알고 있는 지인을 통해 그녀를 <환상 교향곡> 연주회에 초대했고 그녀는 초대를 받아들였다.

옛 파리 음악원 건물 입구에 붙은 명판. 베를리오즈가 이곳에서 초연한 작품명이 새겨져 있다.
옛 파리 음악원 건물 입구에 붙은 명판. 베를리오즈가 이곳에서 초연한 작품명이 새겨져 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알게 되었고 사랑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인기 있는 연예인이 아니라 엄청난 빚에 쪼들리고 있는 가련한 여인이었다.

베를리오즈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33년에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꿈과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빚을 떠맡은 베를리오즈는 각박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데 모든 정력을 소모해야 했고 성격차이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더 벌어져 몇 년 후에는 결국 서로 별거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현실에 환멸을 느낀 베를리오즈는 다시 환상의 세계로 돌아가 또 다른 환상 속의 여인을 좇고 있었으니 그 여인은 오필리아와 줄리엣이었으리라. 하지만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와는 정반대로 그의 현실 세계는 실패와 가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연주를 들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크게 감동해 그에게 선뜻 거액의 수표를 한 장 건네주었는데, 분명 환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파가니니의 희사금은 처참한 현실에 날개가 묶여 있던 베를리오즈를 완전히 해방시켰으며 다시 환상의 세계로 날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베를리오즈는 파가니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주시간이 장장 140분이나 되는 관현악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하고 바로 이 곳에서 초연했던 것이다. 이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 필적할 만한 걸작으로 오케스트라, 독창, 합창으로 극을 이끌어 가는 기념비적인 대곡이다. 이 작품에서 베를리오즈는 환상 속에서 꿈꾸던 여인 줄리엣을 만나고 있었으리라.  

베를리오즈의 묘지.
베를리오즈의 묘지.

마지막 여정은 파리 북쪽 18구에 있는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이다.

이 묘지 안을 둘러보는데 화가 드가, 과학자 푸코, 작가 스탕달, 독일 시인 하이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등 유명인물의 묘소도 눈에 띈다.

낙엽을 밟으면서 걷다가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베를리오즈 묘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는 그의 묘소 아래 한쪽 모서리 새겨진 ‘이곳에 1854년에 사망한 하리엣 스미드슨과 1862년에 사망한 마리 레시오(Marie Recio)가 쉬고 있다’는 문구에 눈길을 던진다. 

베를리오즈는 하리엣 스미드슨이 알콜중독으로 사망한 후에 소프라노 가수이자 배우인 마리 레시오와 재혼했으나 몇 년 후 그녀와도 사별하자, 작곡활동을 중단하고 세상 사람들과 격리된 삶을 살아갔다.

임종 때 그는 자신의 명성과 자신의 음악은 죽음과 함께 땅속에 묻힐 것이라고 괴로워하면서 66세의 일기로 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과 자기 작품에 대한 비관적인 환상이 옳지 않았다는 것이 후세에 밝혀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젊은 시절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이 그와 함께 땅 속에 묻힐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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