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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과 예술사이…에로티시즘의 대가들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클림트 VS 실레

2015.01.30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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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와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에로티시즘, 강렬한 색채와 선 등으로 주목받아온 화가이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지만, 일반적 사제관계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때로는 갈등과 애증이 교차하는 사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의 재능을 인정하는 동지애적 관계였다. 상호 추구했던 예술세계가 달랐던 만큼 두 사람의 작품세계는 여러 관점에서 비교된다.

구스타프 클림트하면 화려한 금빛광채 그림이, 에곤 실레하면 긴 손가락, 마른 듯 한 몸, 근육질이 느껴지는 터치가 인상적인 자화상이 떠오른다.

금 세공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클림트는 중세시대 종교적 힘을 상징하는 색채로 대신했던 금을 과감하게 회화에 끌어들였다.

클림트, 키스, 1907-08년, 캔버스에 유채, 180×180cm
클림트, 키스, 1907-08년, 캔버스에 유채, 180×180cm

결과는 대성공이다. 찬란한 금빛과 유혹적인 색채가 어울려 발산된 환상과 몽환적인 분위기가 많은 사람을 매혹시켰다.

그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키스>를 보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성적 요소들이 숨어있다. 서로를 탐하는 남녀의 모습 뒤에 남성의 성기형상이 교묘하게 감춰져 성적호기심을 자극한다. 남자를 감싼 가운에 그려진 직사각형의 반복패턴은 남성성을 암시하고, 꽃무늬 원형문양으로 장식된 가운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키스>에는 성적 표현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화려한 금빛가운과 생동하는 녹색, 분홍, 노랑꽃으로 가득한 배경들이 키스의 황홀함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클림트에 견주어 에곤 실레는 성적 표현에서 훨씬 과감하고 도발적이다. ‘성(性)의 자유주의자’라 할 만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느낀 대로 거침없이 표출한 스타일이다.

실제 그의 그림 중에는 성적자극이 강한 포즈로 논란을 일으킬만한 그림이 많다. 미성년자의 누드를 비롯해 음부를 애무하거나 내보이는 그림, 동성애적 그림 등 자극성 짙은 그림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실레, 인체드로잉
실레, 인체드로잉

위의 그림만으로도 에곤 실레의 성적 표현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그의 드로잉을 공개적으로 다루기 힘든 부분이 여기에 있다.

그의 대표작 <포옹>을 보면 남녀의 육체적 사랑을 과감하게 표현한 기법과 시점이 눈에 띈다. 우선 두 사람의 애정행위를 적나라하게 위에서 내려 보고 있는 시점이 독특하다.

여기에 부딪혀서 난 상처나 멍이 든 피부처럼 여러 색이 혼용된 인체는 에곤 실레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인체묘사법이다. 격렬하게 포옹하고 있는 연인의 뜨거운 욕정이 꿈틀거리듯 펼쳐져있는 하얀 시트와 엉켜 보는 이의 마음을 자극한다.

실레, 포옹, 1917년 캔버스에 유채, 100×170cm
실레, 포옹, 1917년 캔버스에 유채, 100×170cm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그림은 에로티시즘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지만, 클림트가 남녀의 애정행위 묘사를 화려한 장식으로 눈속임하여 외설논쟁에 휘말리지 않을 정도의 수위를 유지했다면, 에곤 실레는 의상을 걷어내고 인간의 욕정을 숨김없이 과감하게 드러내는 도발적인 포즈를 선호했다.

두 사람의 독특한 개성은 드로잉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클림트가 부드럽고 연한 선을 중첩해서 사용한 반면, 실레는 강하고, 진한 선으로 단숨에 그려내는 스타일이다. 음악으로 표현하면 클림트의 드로잉이 느릿한 선율에 전체적으로 조용한 클래식이라면, 실레는 비트가 강한 재즈 음악 같다.

실레, 추기경과 수녀, 1912년, 캔버스에 유채, 69.8×80.1cm
실레, 추기경과 수녀, 1912년, 캔버스에 유채, 69.8×80.1cm
실레의 화풍이 클림트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클림트의 <키스>와 비교되는 <추기경과 수녀>의 작품이나 클림트가 그린 <다나에>라는 같은 제목의 그림을 그린 것에서 쉽게 확인된다.

단, 일방적인 영향보다는 상호 자극을 주는 사이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예를 들어 클림트가 그린 <다나에>를 보고, 실레가 같은 제목의 다른 <다나에>를 그렸고, 다시 클림트가 실레의 <다나에>를 차용해 그린 <레다>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의 작품세계가 지닌 뚜렷한 차이점은 색채와 선 이외에 표현 대상에서도 드러난다. 실레는 자화상으로 유명하지만, 클림트는 자화상을 그리지 않은 작가로 유명하다.

클림트, 아담과 이브(미완성)1917-1918, 캔버스에 유채, 175x60cm
클림트, 아담과 이브(미완성)1917-1918, 캔버스에 유채, 175x60cm
클림트는 자신을 그리는 것에는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림 주제로 나 자신에게는 흥미가 없다”고 말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극히 꺼려했다.

반면, 에곤 실레는 미술사에서 자화상을 많이 남긴 대표화가로 꼽힐 만큼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것도 대부분 벌거벗은 나체그림이 많다.

실레는 삶과 예술의 본질적 물음에 관한 해답을 자신의 모습을 여러 관점에서 그리는 과정에서 찾고자 했다.

궁극적으로 클림트의 그림세계가 대중성을 지녔다면, 실레의 그림세계는 지극히 자기중심적 세계에 국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두 사람의 마지막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클림트의<아담과 이브>와 실레의 <가족>은 두 사람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담과 이브’는 오래전부터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주제로 소재 상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클림트의 아담과 이브는 아담중심, 또는 대등관계로 있던 두 사람의 관계를 이브중심으로 화면에 구성한 것이 흥미롭다.

이브의 양손 손목 아래로 묘사가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작 이지만, 말년에 클림트가 추구한 예술세계를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손색없다.

마지막까지 남녀간의 사랑을 테마로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아름다움을 그리려한 클림트의 의도가 읽힌다.

실레의 <가족> 역시 아내 앞에 있는 아이를 빼면 아담과 이브라는 최초의 인간이자 부부의 형상과 다르지 않다. 단, 그림 속 아이는 그림제작 시 임신 5개월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불행하게도 실레의 아내가 유행성 스페인 독감으로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끝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이가 되고 말았다.

결국 이 그림은 실레가 꿈꾸던 상상 속 가족의 그림이 되고 말았지만, 그가 자화상을 통해 삶의 본질적 가치를 탐구했던 시도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실레, 가족, 1918년, 캔버스에 유채, 152.5×162.5cm
실레, 가족, 1918년, 캔버스에 유채, 152.5×162.5cm

클림트는 가족 병력이었던 뇌졸중과 1918년 전 유럽을 강타한 스페인 독감이 겹쳐 56세에 생을 마감했다. 실레 또한 독감으로 아내를 잃고 난 후 3일 후 같은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때가 28살이었다.

클림트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이 2006년 1억 3500만 달러로 경매사상 13번째 비싼 가격으로 팔리며 대중적 화가로 부상하며 오스트리아를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최고의 화가가 되었고, 실레는 요절한 천재화가로 소수 마니아층을 사로잡는 작가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일탈과 자유를 갈망한 실레의 삶과 예술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인체표현기법과 구성으로 표출되어 그의 예술세계를 사랑하는 애호층을 두텁게 만들어 가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상징화가, 전통화풍에 반기를 든 반항아, 에로티시즘의 대표화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 등의 공통점을 지닌 클림트와 실레, 서로에게 창조적 영감과 예술적 자극을 준 두 사람의 삶과 예술은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관심거리다.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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