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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이 지키는 체코 최고 음악의 전당 루돌피눔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44] 체코/프라하(praha)

2015.01.30 정태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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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의 젖줄 블타바(Vltava) 강은 프라하 시가지를 관통하면서 유유히 흘러간다. 블타바 강변에는 르네상스 복고풍의 웅장한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다름 아닌 체코 최고의 예술전당인 루돌피눔(Rudolfinum)이다.

체코 최고의 예술의 전당인 루돌피눔과 그 앞에 세워진 드보르작의 동상.
체코 최고의 예술의 전당인 루돌피눔과 그 앞에 세워진 드보르작의 동상.

‘루돌피눔’은 ‘루돌프의 전당’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루돌프는 누구인가? 체코 역사에서 루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가장 중요한 인물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2세(1552 – 1612)이다. 그는 ‘체코의 세종대왕’인 카렐 4세 다음으로 프라하를 황금기로 이끌어 올린 황제로 궁정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아예 프라하로 옮겨버릴 정도로 빈보다 프라하를 더 사랑했다.

한편 이 전당이 세워질 때 보헤미아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권좌를 이어 받을 황태자의 이름도 루돌프인데 ‘루돌피눔’이란 이름은 공식적으로 바로 이 황태자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보헤미아의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드보르작의 동상.
보헤미아의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드보르작의 동상.

하지만 프라하에 문화를 꽃피운 그의 조상인 루돌프 2세를 기념하는 전당으로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루돌피눔의 건축은 18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라하 시는 블타바 강변 쓰레기를 버리던 버려진 땅을 조성하고 이곳에 문화의 도시 프라하에 걸맞는 예술의 전당을 세우기로 계획한다.

8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884년에 모두 완공하고는 1885년 2월 8일에 젊은 루돌프 황태자가 참석한 가운데 화려한 개막식을 열었다.

그런데 루돌피눔에는 루돌프 황태자를 기념하는 기념상이라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광을 욕되게 한 ‘괘씸죄’ 때문이었을까?

그는 개막식을 한지 4년이 지나고 30세가 되던 해인 1889년 빈 근교 마이얼링의 황실 소유 사냥용 별장에서 숨겨놓은 애인인 17세의 마리아 폰 베체라와 동반 자살하고 말았다.

그의 정치적 성향이 부왕과는 달리 개혁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직도 수많은 의혹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전당 건물 위에 둘러가며 세워져 있는 석상들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바흐, 헨델, 하이든, 글룩, 모차르트,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과 같이 서양음악을 이끌어간 음악가들이다. 그런데 하나 같이 모두 독일어권 음악가들이고 체코 음악가의 석상이라곤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루돌피눔 정면을 마주보는 곳에 안토닌 드보르작(Antonín Dvorak1841-1904)의 동상이 당당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드보르작은 스메타나와 함께 체코의 음악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은 인물이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슬라브 민족의 정신을 낭만주의 음악언어로 승화시켜 놓았으며 보헤미아의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음악가이다. 즉, 그야말로 선배 스메타나가 못다 이룬 체코 국민음악의 다양한 가능성을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세계의 음악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한편 체코의 음악역사에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은 1894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루돌피눔에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1896년 1월 4일이고 그때 지휘봉을 잡은 사람이 바로 드보르작이었다.

고대 그리스 신전과 같은 분위기인 드보르작 홀.
고대 그리스 신전과 같은 분위기인 드보르작 홀.

그가 연주했던 홀은 지금 그의 이름을 붙여 ‘드보르작 홀’이라고 부른다. 루돌피눔에서 핵심을 이루는 이 홀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연주홀 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음향도 매우 뛰어나서 구스타프 말러는 1908년에 바로 이곳에서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 7번>을 초연하기도 했다.

이 홀의 무대부분은 고대 그리스 신전 연상하게 하고 관객석은 그리스 반원형극장을 연상하게 하지만 객석 의자가 옆으로 너무 길게 연결되어 중간 부분에 앉은 관객이 한번 나가려면 좀 애를 먹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예술의 전당은 한동안 예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용도의 건물로 탈바꿈한 적이 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됨과 동시에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는 당장 국회의사당이 필요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루돌피눔을 국회의사당으로 용도변경 했던 것이다.

이 때 드보르작 홀의 무대부분은 국회의장석으로 바뀌었고 무대 뒤에 있던 파이프 오르간은 떼어다가 다른 곳에 보관했다. 이처럼 이 예술의 전당은 1939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다가 나치가 체코를 점령했을 때는 악명 높은 점령군 총사령부로 사용되었다.

루돌피눔 위에 세워진 음악가들의 석상 중에서 베토벤과 바흐의 석상.
루돌피눔 위에 세워진 음악가들의 석상 중에서 베토벤과 바흐의 석상.

이때 나치 독일은 루돌피눔 위의 음악가들의 석상 중에서 유대계라는 이유로 멘델스존의 석상을 제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멘델스존의 석상은 다시 본래 자리에 다시 올려졌는데 이 때는 루돌피눔이 다시 원래의 기능을 되찾은 다음이었다.

그리고 1946년에는 체코를 대표하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곳에 상주하기 시작하고 아울러 프라하의 봄 음악제의 주요 음악회가 이곳에 열리게 돼 루돌피눔은 명실공히 체코 최고의 예술의 전당으로 다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예술의 전당은 체코가 겪어온 격동의 근대사도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 같다.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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