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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데 왜 육아휴직을 안내는지?
축구는 축구가 아니다
누구나 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패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경기. 그들이 있어 감동했고 신났고 행복했다. 그들을 보며 성실과 투혼이라는 단어가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여전히 사어(死語)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들은 증명했다. 그라운드는 힘센 나라, 가진 자만의 공간이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공은 둥글고 골대는 열려있다고. 영웅은 예고되지 않는다. 인구 순도 아니었다. 국민소득 순도 아니었다. 땅덩어리 순도 아니었다. 선수의 연봉 순도 아니었다. 랭킹 순도 아니었다. 나는 축구의 전략이나 기술은 잘 모른다. 그럼에도 경기를 지켜보는 건 그 90분이라는 시간이, 짧은 연장전이, 또는 비장한 승부차기의 세계가 너무나 극적이면서 평등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다. 인구 400만 명 남짓에 남한의 절반보다 조금 넓은 국토, 4년간의 내전으로 20만 명이 죽고 폐허가 됐던 땅, 독립한 지 불과 20년, 주전 11명 중 8명이 내전을 겪은 세대, 그리고 46세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 유럽연합(EU)에 28번째로 가장 늦게 가입한(2013년) 잘 살지 않는 나라. 그러나 보석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 우리는 그 나라를 잘 몰랐다. 멀기도 했고, 동유럽 국가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작고 가난한 나라였고, 구 유고연방의 역사도 복잡했고, 왠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을 것만 같은 나라였다. 우리가 그 나라 이름을 들은 건 순전히 꽃보다 누나들 덕이었다. 그리고 이참에 그 나라의 존재를 분명히 각인했다. 러시아 월드컵의 진정한 승자는 프랑스의 아트 사커도, 음바페도, 호날두도, 네이마루도, 푸틴도 아니었다. 그냥 그 나라 이름 크로아티아다. 그리고 인물로 치면 관중석에 있던 그 나라의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대통령이고, 우승 트로피 대신 골든볼을 수상한 키 172㎝의 그 나라 주장 모드리치다. 그 나라는 월드컵 결승전에 나간 국가 중 역대 FIFA 랭킹 최하위(20위)였다. 도박사들이 점친 우승 확률은 0.6%였다. 그러나 월드컵 사상 세 경기 연속 연장전을 치르며 결승에 오른 최초의 나라가 됐다. 크로아티아가 결승전에서 프랑스에 2대 4로 패하자 선수들은 경기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폭우가 쏟아졌다. 이때 관중의 시선은 우산도 없이 그라운드에 내려와 선수에게 다가가는 금발의 한 여인에게 쏠렸다.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그녀는 장대비를 다 맞으며 선수들을 한 명씩 아주 뜨겁게 안아주기 시작했다. 함께 눈물도 흘렸다. 시상식을 하러 우산을 받쳐 들고 내려온 푸틴 대통령과 대비가 됐다. 그녀의 모습은 전 세계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한 해외 언론은 월드컵 최고의 장면이다. 크로아티아의 진짜 스타는 관중석에 있던 키타로비치 대통령이었다고 썼다. 다른 언론은 프랑스는 우승을 차지했지만(won the cup), 그녀와 크로아티아는 우리의 마음을 차지했다(won our hearts)고 묘사했다. 키타로비치 대통령은 앞서 열린 덴마크와의 16강전부터 자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일반관중석에 자국 응원단과 함께 앉아 열정적인 응원을 하면서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유니폼을 입고는 VIP석에 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골은 이 여자 대통령을 춤추게 만들었다. 골이 터질 때마다 주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흔들며 신나게 춤을 췄다. 결승전이 끝나자 국내 포털에는 발음도 어려운 그녀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올랐다. 다소 민망스럽게도 노출이 상당히 심한 비키니 차림의 그녀 사진이 인터넷에 순식간에 돌았다. 미국의 한 매체가 실시한 세계 지도자 얼굴 평가에서 문재인 대통령보다 하나 앞선 8위를 했다는 뉴스도 화제가 됐다. 찾아보니 그녀는 우리에게 아주 낯선 사람은 아니었다. 2007년 외무장관 시절에 방한한 적이 있다. 외교관 출신의 그녀는 2015년 46세의 나이로 크로아티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 엄마 같은 대통령은 하루아침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여성 정치지도자가 되고 말았다. 크로아티아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내건 슬로건은 작은 나라 큰 꿈(Small country Big dreams)이었다. 꿈을 현실로 이뤄낸 대표팀은 전투기 두 대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했고 전 인구 중 10%가 거리로 뛰쳐나와 환영했다. 이제 크로아티아는 더 이상 발칸반도의 소국이 아니다. 역시 축구는 축구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는지 모른다. 축구는 가장 원시적이면서 보편적인 스포츠다. 손만 빼고 온 몸을 다 쓸 수 있다. 몸싸움도 태클도 허용된다. 아무 장비가 없어도 공 하나면 된다. 날씨와 종교와 빈부의 격차와 얼굴색과 상관없다. 축구를 하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규칙은 어디든 같다.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개인과 팀이 어울려야 한다. 아무리 세계적 스타가 포함돼 있어도 허망하게 질 수 있다. 선수들은 누구도 공을 소유할 수 없다. 모두가 공을 따라다닐 뿐이다. 그래서 패스를 숙명으로 한다. 축구가 가진 최고의 덕목은 공이 어디로 구를지 모르듯이 바로 기회의 평등이다. 평등한 기회는 곧 정의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운명을 결정한다. 크로아티아는 그 기회를 계속 잡으며 올라왔다. 그게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래서 그라운드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들 말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축구선수였다. 17세까지 프랑스령 알제리의 지역 축구팀에서 골키퍼를 했다. 골키퍼를 맡은 건 축구화가 가장 덜 닳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핵을 앓으며 그의 인생은 바뀌었지만, 그는 평생 축구는 인생의 학교라고 말했다. 공은 기대하는 방향으로부터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골키퍼를 하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이미 수많은 경험들을 안겨주었지만, 인간 존재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건 오직 축구에서 배웠다. 최영미 시인은 잘 알려진 축구광이다. 그는 오직 축구에 대한 이야기인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그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돈과 폭력과 약물로 오염된, 아무리 더러운 경기장에도 한 조각의 진실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다. 축구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건진 최상의 것이다. 내게 축구는 둥근 공을 통해 세계의 어디로든 가고 누구와도 만날 수 있는 자유이며, 스크린을 넘어 광막한 우주를 사유하는 감각적이며 지적인 욕망이다. 최 시인이 2005년에 낸 두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에는 축구에 대한 여러 편의 시가 있다. 그중 하나의 시 제목은 이렇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전략) 우리의 몸은 움직이고 뛰고 환호하기 위한 것/서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며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최선을 다한 패배는 승리만큼 아름다우며/최고의 선수는 반칙을 하지 않고/반칙도 게임의 일부임을 그대들은 내게 보여주었지//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수천 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거짓이 통하지 않으며, 위선은 숨을 구석이 없다//진실된 땀은 헛되지 않을지니/정의가 펄펄 살아 있는/여기 이 푸른 잔디 위에/순간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 한기봉 언론중재위원/칼럼니스트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다. hkb821072@naver.com
한기봉 언론중재위원/칼럼니스트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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