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에 용산역에 인접한 국제빌딩(현 LS용산타워)에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때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용산미군기지 그것도 미군 가족 숙소가 보였다. 붉은 벽돌로 된 단층집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고, 그 사이로 파릇한 잔디와 아름드리 나무를 볼 수 있었다.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미국의 중산층 주택가를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이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이 맞나?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이런 한적한 곳이 있었다니!”라면서 직원들과 감탄을 연발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곳은 그림의 떡과 다를 바 없었다. 미군 가족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우리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랬던 그곳이 어린이날 즈음해서 ‘용산어린이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용산어린이정원으로 가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내가 출퇴근하면서 지나갔던 길이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만 봤던 그곳에 드디어 입장할 수 있게 되다니! 하지만 이것은 알아둬야 한다. 용산어린이정원에 입장하려면 최소 6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것을.
교통의 중심지인 용산은 과거 서강, 마포, 두모포, 송파와 함께 한강의 수운을 통해 전국 물자가 집결한 장소였으며, 숭례문과 동작진을 연결하여 시흥, 군포, 수원으로 가는 남행길이었다. 고려 말 몽골군의 병참기지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는 왜군의 보급기지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1894년 청일전쟁 때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주둔했고, 1904년 러일전쟁 때 조선주차군사령부와 20사단이 주둔하여 용산은 일제의 병참기지로 변모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 24사단이 일본군 기지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용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미군의 용산 주둔은 서울 시민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미군 부대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원조물자와 미8군 무대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 영향을 주었고, 미군 부대 주변 지역에 화랑가가 형성되었다. 이처럼 용산은 청일전쟁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외국군 주둔의 오랜 역사를 지닌 아픔이 있던 곳이다.
서울 하늘 아래 있건만, 외국군 주둔으로 인해 우리에겐 금단의 땅이었다. 그런 용산이 국민의 품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작년 5월 10일 윤석열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했고, 올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서 용산어린이정원을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용산공원 부분개방부지가 있고, 왼쪽에 용산어린이정원이 있다. 용산어린이정원에 입장하는 것은 공항의 출국 심사대와 유사했다. 이름을 확인한 뒤 가방과 휴대전화를 바구니에 담아 검색대를 통과했다. 용산어린이정원을 걷다가 카페 어울림에 도착한 뒤 그 이유를 알았다. 용산어린이정원이 대통령실과 가까운 탓에 철저한 보안 검색이 필요했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종합안내센터로 입장해서 마주하게 되는 장군 숙소와 정원의 중심이 되는 잔디마당과 전망언덕, 동쪽에 있는 스포츠필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합안내센터를 거쳐서 바깥으로 나오면 맞은 편에 홍보관이 있다. 용산 미군기지의 역사를 알려주는 곳이다. 홍보관 뒤편에 용산서가가 있다. 너른 공간의 벽면에 책장이 있고, 책을 꺼내든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종일 이곳에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용산서가 옆에 어린이도서관도 있다. 용산어린이정원답게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갖춰져 있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용산 미군기지의 가족 숙소가 있던 곳이어서 밀집도가 낮다. 건물 사이를 이동하면서 걷는 가로수길로 곳곳에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정말 꽃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지금 용산어린이전시관에서 ‘온화, 溫火 Gentle Light’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따스한 불빛으로 용산의 미래를 밝히다’라는 주제에 맞춰서 작가 사일로 랩이 1500개의 전통 창호 모양의 빛을 구현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이다. 어둠 속에서 점점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불빛을 마주하니 용산이 폐쇄되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개방된 미래를 대하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활력이 넘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작품과 마주하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차분해진다.
기록관은 두 채의 건물이 마주하고 있다. 기록관1은 이곳이 과거 미군 장교 숙소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수 코스너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가족들의 생활을 재구성했다. 거실, 주방, 방 등을 둘러보고 있으니 수 코스너가 나와서 반겨 맞아줄 것만 같았다.
용산미군기지와 함께 미8군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 주둔한 미군 부대를 일컫는 말이다.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한 공연이 열렸다. 그것을 미8군 쇼라고 했다. 미8군 무대를 통해서 데뷔한 가수들도 여럿 있었다. 기록관2에 당시 활동했던 대중가수들의 LP판이 전시되어 있다. 의자에 앉아서 스크린에서 재생되는 당시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다. 흑백으로 촬영된 영상을 보고 있으니 TV 앞에 앉아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유년 시절의 나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그래봤자 불과 40년 전의 일이다.
마지막 건물은 카페 어울림이다. 카페 어울림 테라스는 전망언덕과 잔디마당으로 향해 있다. 테라스에 앉아서 드넓은 야외를 바라보니 비로소 이곳이 우리 품으로 되돌아온 용산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서울 시내 어딜 가든 하늘로 치솟은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다. 그게 1000만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위상이다. 그런데 용산어린이정원은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찾은 자연을 품은 교외와도 같은 공간이다. 굳이 멀리 자연을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서 자연을 마음껏 누려도 좋을 것이다.
내가 방문했던 날, 잔디마당에선 주말의 공연을 앞두고 무대를 설치하느라 분주했다. 한쪽에선 아이들이 잔디를 밟으면서 뛰어놀고 있다. 빈백에 편안하게 기댄 엄마들이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5살, 3살 두 아이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30대 여성은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어린이정원이라는 이름에 끌렸어요. TV에서 용산어린이정원을 개방한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예약했어요. 마침 이 근처에 살고 있어서 자주 이용할 것 같아요. 널찍하니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네요”라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내가 방문했던 평일 오후 시간대는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와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5살 아이와 처음 방문했다는 30대 여성은 “이국적이고 조용해서 산책하기 정말 좋았어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곳이 어린이정원이니깐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도 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미끄럼틀, 그네, 시소 같은 것들요. 그리고 6일 전에 예약해야 하는 게 아쉬워요. 하루나 이틀 전에 예약할 수 있다면 이용자로서 더 좋을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가로수길을 지나 왼쪽의 하늘바라기길로 접어들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나만 알고 싶은 곳을 발견했다. 커다란 두 그루의 나무 아래 벤치가 있다. 사방이 나를 중심으로 열려 있다. 거기에 앉아 있으니 한낮의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잠시 복잡한 세상에서 한 발자국 비켜 나온 듯 여유로운 느낌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용산어린이정원 안내센터에서 보낸 문자를 받았다. 개방 시간이 오후 6시까지라는 것을 알리는 문자였다. 그러고 보니 시계가 오후 5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 종합안내센터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어린이정원이지만 남녀노소 누구든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혼자 혹은 여럿이 방문해서 정원 사이에 난 길을 걷다가 독서, 운동, 휴식, 대화 등 각자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국민에게 되돌아온 용산, 그것도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해서 도심 속의 자연을 벗 삼아 여유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