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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겨울을 눈물로 견디어 온 생존의 언어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화천 이외수문학관

2021.09.30 이광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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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 국내 최초로 생존 작가를 위한 조성된 ‘이외수 문학관’과 감성테마 문학공원.
2012년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 국내 최초로 생존 작가를 위해 조성된 ‘이외수 문학관’과 감성테마 문학공원.

“제가 생각하는 기인의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글이나 그림, 음악을 한다고 하면 다 말립니다. 춥고 배고프다 이거지요. 저는 30년 동안 글을 쓰면서 제 마누라와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건 기인 중에 기인이지요.”

작가 이외수가 2008년 MBC 예능프로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그는 서울 은평구 ‘셋이서 문학관’에 천상병 시인, 중광스님과 더불어 ‘기인 삼총사’로 한 방을 차지하고 있고, 2012년 강원도 화천에 국내 최초로 생존 작가를 위한 별도의 ‘이외수 문학관’이 조성되었으니, ‘기인 중의 기인’이라는 말보다 그를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외수의 익살스런 사진으로 꾸며놓은 문학관 내부.
이외수의 익살스런 사진으로 꾸며놓은 문학관 내부.

그는 ‘우리나라에서 다 말린다’는 문학과 미술과 음악으로 성공한 예술가가 되었고 방송은 물론 ‘트위터 대통령’이라고 불리며 SNS까지 두루 섭렵, 만능 엔터테이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팔선에서 남으로 14km 떨어진 수피령 고개 너머,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 그의 문학관이 있고 주위는 ‘감성테마 문학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뜯겨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하악하악 p73)’ 문학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보이는 글이다.

‘제가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이 저를 빌려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p126)’ ‘팔이 안으로 굽는다 하여 어찌 등 뒤에 있는 그대를 껴안을 수 없으랴. 내 한 몸 돌아서면 충분한 것을(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p65)’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뜯겨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하악하악 p73)’ 문학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보이는 글이다.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뜯겨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하악하악 p73)’ 문학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보이는 글이다.

문학관 곳곳은 그의 감성적 아포리즘으로 가득하다. 그의 친필원고와 문학작품, 미술품과 소장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문학관은 수동적인 관람 보다는 체험을 겸하고 있는 공간들이 많고, 소극장 같은 콘서트홀도 갖춰 전체적으로 밝고 세련된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문학관 밖으로는 맞배지붕 한옥 모월당(慕月堂)이 있다. ‘달을 사모하는 집’이라는 뜻의 이 건물에는 작은 도서관과 강연장이 조성되어 있고, 예술품을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방문객 센터와 집필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세련된 디자인과 조명으로 꾸며진 문학관 내부.
세련된 디자인과 조명으로 꾸며진 문학관 내부.

문학공원의 백미는 산책로다. 다목리 주차장에서 약수터로 넘어가는 ‘감성산책로’는 길이는 얼마 안 되지만 가운데로 개천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사이에 구름다리도 있어 걷는 재미가 있다.

특히나 산책로 곳곳에 작가의 문구들을 석비에 새겨놓아 1시간 정도 느릿느릿 돌아보면 책을 몇 권이나 읽은 기분이 난다. 

이외수는 1946년 경남 함양 출생이다.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제에서 초중고를 거쳐 1972년 춘천교육대학을 중퇴했다. 그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되어 데뷔했다. 문예잡지 ‘세대’의 공모에서 중편 <훈장>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1978년 원시생명에 대한 동경과 환상의식을 추구한 첫 장편 <꿈꾸는 식물>이 문단의 호평을 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신문사와 학원을 전전하던 직장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몰두하는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어 단편 <박제>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등과 중편 <장수하늘소>, 장편 <들개> <칼>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던 그는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또 철학적 삽화를 곁들인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 <외뿔> 등을 출간했으며, 시집 <풀꽃 술잔 나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감성사전>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을 펴내는 등 소설과 시와 산문, 글과 그림 등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을 선보였다.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작가 이외수의 문구 옆으로, 독자들이 투병중인 그의 쾌유를 빌며 남긴 메모 문구들이 가득 붙어있다.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작가 이외수의 문구 옆으로, 독자들이 투병중인 그의 쾌유를 빌며 남긴 메모 문구들이 가득 붙어있다.

그는 특유의 감각과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하고 문학의 다양화에 기여한 ‘기인 소설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존버’라는 말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스님이  이외수에게 “요즘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그는 “존버 정신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답한 일화가 있다.

존버는 ‘존나 버로우’의 준말 혹은 ‘존나 버티기’라는 뜻으로 젊은 층에서 유행했던 말인데, 버로우는 게임 스트크래프트에 나오는 용어로 땅 속에 ‘잠복(潛伏)’하여 버티는 상황을 뜻한다. ‘존버정신’은 ‘학교에서 돌아와 할머니하고 동냥 얻어서 밥 묵고 숙제하고 밤이 와서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p94)’라고 썼던 어린 시절 가난했던 기억, 그리고 ‘나는 밤마다 빛나는 눈으로 목을 드는 늑대 같이 차디찬 겨울을 목 놓아 울면서 나 자신을 확인해 왔다’는 신춘문예 당선소감에서 드러나듯이, 젊은이들에게 해주는 전언이기에 앞서 그 스스로 바닥을 기면서 차디찬 겨울을 눈물로 견디어 온 생존의 언어이기에 더욱 울림이 크다.        

‘나는 밤마다 빛나는 눈으로 목을 드는 늑대 같이 차디찬 겨울을 목 놓아 울면서 나 자신을 확인해 왔다’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중에서.
‘나는 밤마다 빛나는 눈으로 목을 드는 늑대 같이 차디찬 겨울을 목 놓아 울면서 나 자신을 확인해 왔다’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중에서.

그는 우화집 <외뿔>에서 사과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네 단계로 구별해 놓았는데 그 분석이 재미있다.

첫째 육안(肉眼)으로, 사과를 음식물로 보고 침을 흘리며 먹어치우고는 배설하는 가장 낮은 단계이다. 둘째 뇌안(腦眼)으로, 진화는 되었으되 본성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사과를 탐구물로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떠올리며 현상에 집착하는 눈이다. 셋째 심안(心眼)으로 현상을 떠나 본성에 이르는 눈이다. 사과 속에서 시와 노래와 사랑과 은총을 찾아내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넷째 가장 고급한 단계인 영안(靈眼)이다. 사과를 해탈의 결정체로 본다. 신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과 자신의 본성과 사과의 본성을 하나로 보며 삼라만상에 가득한 사랑을 깨닫는 사람이다.          

독서의 향기와 인생의 힐링, 그리고 사랑에 관한 아포리즘들이 공원 곳곳에 빗돌로 세워져 한 시간 정도 느릿느릿 돌아보면 책을 몇 권이나 읽은 듯한 기쁨을 선물한다.
독서의 향기와 인생의 힐링, 그리고 사랑에 관한 아포리즘들이 공원 곳곳에 빗돌로 세워져 한 시간 정도 느릿느릿 돌아보면 책을 몇 권이나 읽은 듯한 기쁨을 선물한다.

감성테마 문학공원을 거닐면서 독자는 문학의 향기와 삶의 힐링을 얻어갈 것이다. 그리고 연인과 함께라면 채워질 것이 또 하나 있다. ‘사랑, 대수롭지 않은 안부 한마디에도 가슴 뭉클해지는 것’, ‘그리움은 과거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흩날리는 낙엽이고 기다림은 미래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흔들리는 꽃잎이다. 멀어질수록 선명한 아픔으로 새겨지는 젊은 날의 문신들’ ‘기억하라, 사랑은 아무 것으로도 대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과 마음을 통해서만이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는 것도 아니고 받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가슴 안에 소중한 마음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이외수의 이런 문구들을 읽으면서 이 가을 어찌 사랑이 무르익지 않겠는가.    

이광이

◆ 이광이 작가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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