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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폴로니아’에 담긴 고난과 희망의 폴란드 역사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폴란드/바르샤바(Warszawa)

2021.08.11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매년 8월 1일 오후 5시, 사이렌이 울리면 바르샤바의 모든 것이 정지하고 시민들은 1분 동안 묵념한다. 1944년 8월 1일 독일 점령군에 맞서 일어난 대대적인 봉기를 기념하는 것이다. 올해 7월 31일에는 바르샤바 봉기 77주년을 하루 앞두고 바르샤바 봉기 기념상이 세워진 크라신스키 광장에서 폴란드 정부 고위관료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엄숙하게 열렸다.

한편 ‘바르샤바 봉기’는 1830년 11월 30일에도 있었다. 러시아의 압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봉기였는데 그 이전에 고국을 떠난 20세의 쇼팽은 11월 22일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도착한지 8일 만에 이 소식을 접했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보면 폴란드는 우리나라처럼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숱한 고난을 겪은 나라이다.

왕궁(오른쪽)이 보이는 바르샤바의 심장. 지붕선 위로 성 요한 대성당(가운데)이 솟아있다.
왕궁(오른쪽)이 보이는 바르샤바의 심장. 지붕선 위로 성 요한 대성당(가운데)이 솟아있다.

바르샤바의 심장 구시가지는 비스와 강 서안에 위치한다. 파스텔 톤의 예쁘고 아기자기한 옛 건축물들로 가득한 구시가지에서는 왕궁 외에도 성 십자가 성당과 성 요한 대성당은 누구나 꼭 한번 찾아보는 명소이다. 성 십자가 성당에는 쇼팽의 심장이 안치되어 있다.

쇼팽은 1830년의 바르샤바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고국에는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1848년에 파리에서 숨을 거두면서 자기 심장만큼은 조국에 묻어 달라고 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이 성당에 그의 심장이 안치되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성 요한 대성당에는 폴란드의 역사를 빛냈던 왕, 대통령을 비롯 음악가 파데렙스키(1860-1941)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묘소가 안치되어 있다. 

쇼팽의 심장이 안치된 성 십자가 성당.
쇼팽의 심장이 안치된 성 십자가 성당.

‘폴란드’는 영어 국명이고 폴란드어 국명은 폴스카(Polska)이며 라틴어 국명은 폴로니아(Polonia)이다.

‘폴로니아’라면 파데렙스키의 <교향곡 B단조 ‘폴로니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파데렙스키는 1903년부터 1908년에 걸쳐 이 대곡을 썼는데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제국 지배하에 있었다.

이 교향곡은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악장마다 붙은 표제는 폴란드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해준다.

즉, 제1악장 ‘과거 폴란드의 영광스런 날들’, 제2악장 ‘외세의 지배 밑에서 국운이 나락으로 떨어진 현재(1907년)의 폴란드’, 제3악장 ‘더 행복한 미래의 폴란드로 향하여’이다.  

제2악장의 표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18세기 후반 이후 폴란드의 역사는 그야말로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되어 있다.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한 폴란드의 분할통치가 시작된 1795년부터 폴란드는 독립을 잃었다. 폴란드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전개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1810년에 쇼팽이 태어났고 1860년에는 파데렙스키가 태어났다.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누리던 파데렙스키는 1913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파리주재 폴란드 재건 위원회에서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고 종전 후에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폴란드의 독립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는 등 폴란드를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리하여 1918년에 독립된 민주국가 폴란드 공화국이 탄생했고 파데렙스키는 초대 총리겸 외무장관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그는 1년도 안 되어 다시 음악가의 길로 되돌아갔다. 10년이 흐른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파데렙스키는 런던주재 폴란드 임시정부의 국회의장을 맡았으며 미국에서는 폴란드 난민 구제기금 모금을 위한 피아노 연주회도 가졌으나 뉴욕연주를 끝으로 1941년 향년 81세로 영원히 눈을 감았다.

크라신스키 광장에 세워진 바르샤바 봉기 기념상.
크라신스키 광장에 세워진 바르샤바 봉기 기념상.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폴란드가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던 중 1944년 6월에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소련이 독일을 향해 진격하기 위해 폴란드로 다가왔다. 이에 폴란드 지하저항군은 소련군이 오기 전에 바르샤바를 폴란드인의 손으로 독일군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했다. 즉, 소련군이 해방군으로 입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1944년 8월 1일 오후 5시를 기해 지하저항군과 시민군은 일제히 독일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선을 잡았다.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은 독일군의 무자비한 반격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비스와 강 건너편까지 왔지만 불구경만하고 있었고 연합군의 지원은 미미했다.

성 요한 대성당 안에 있는 파데렙스키 흉상.
성 요한 대성당 안에 있는 파데렙스키 흉상.

결국 바르샤바 봉기는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두 달 만에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사태를 진압한 독일군은 폴란드 민족혼을 완전히 말살하려는 듯 바르샤바 시가지의 90% 이상을 완전히 파괴했으며 생명이 붙은 자들은 죽음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고 갔다.

종전 후에는 소련이 조종하는 공산정권이 다시 폴란드의 자유를 짓밟았는데 다행스럽게도, 폐허가 된 바르샤바 구시가지는 원래모습대로 복원하기로 했다.

바르샤바 시민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성 요한 대성당, 성 십자가 성당, 왕궁 등을 포함 구시가지가 복원되면서 바르샤바의 심장은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후 1990년에 폴란드가 자유화 되었고 1992년는 파데렙스키의 유해가 미국에서 바르샤바로 옮겨져 새롭게 복구된 성 요한 대성당 안에 안장되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넘어서야 <교향곡 ‘폴로니아’> 제3악장에서 꿈꾸었던 행복한 미래를 맞는 조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 폴란드는 그의 서거 80주년을 기념한다.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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