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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로봇’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체코/프라하(Praha)

2021.06.18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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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태어난 음악가 중에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가 있다. 1819년 6월 20일 독일 쾰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시절부터 파리에서 살며 활동했는데 <호프만의 이야기>는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최고의 걸작 오페라로 꼽힌다. 환상과 현실이 혼재된 이 작품은 지금부터 꼭 140년 전인 1881년 2월 10일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오펜바흐는 불행히도 초연을 보지 못하고 4달 전에 6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호프만의 이야기>에서는 독일의 후기낭만주의 시대의 작가 호프만(1774-1822)이 자기 생애에서 겪었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 세 개를 들려준다. 이 오페라는 서막을 포함 모두 4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막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 ‘인형의 노래’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제1막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호프만은 올림피아를 사랑한다. 그녀는 노래도 부를 줄 알고 춤도 출 줄 안다. 그런데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과학자 스팔란자니가 만든 정교한 첨단 발명품이다. 단,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코펠리우스가 만들었다. 그런데 코펠리우스는 지적재산권을 두고 스팔란자니와 다투다가 자신이 속은 느낌이 들어 올림피아를 해체해 버린다. 호프만은 그때서야 올림피아가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이었음을 알고 탄식한다. 올림피아는 그냥 봐서는 인간과는 구분이 전혀 안되는 인조인간 또는 첨단 로봇이었던 셈이다.

프라하 국립극장.
프라하 국립극장.

그런데 ‘로봇’은 이 오페라가 초연된 지 40년이 지난 다음,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1년에 프라하에서 역사상 최초로 등장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31세의 체코 작가 카렐 차펙이 1920년 11월에 발표한 공상과학 희곡 <R.U.R>이 1921년 1월 25일에 프라하 국립극장 초연되었는데 이때 ‘로봇’이라는 신조어가 역사상 처음으로 무대에 선보였던 것이다. 프라하 국립극장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하에서 체코국민의 성금으로 세워진 오페라 연극 발레의 전당이다.

한편 <R.U.R>은 체코어 Rossumovi univerzální roboti의 약자이다. 영어로 바꾸면 Rossum's Universal Robots, 즉 <로숨의 만능 로봇들>이다. 카렐 차펙은 그의 형 요세프 차펙과 함께 작업한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로봇’이란 말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형이었다. 

그는 이 말을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낸 것이 아니라 ‘(강제로) 일을 해주는 자’, 또는 ‘(강제로 하는) 일’을 뜻하는 옛 체코어 단어 ‘로보타(robota)’를 차용했다. 즉 ‘로봇’(robot)이란 말은 영어권에서 나온 단어가 아닌 것이다. 이 희곡에서 로봇은 인간과 꼭 닮아서 겉으로는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인조인간이다. 그런데 이 로봇들은 나중에 인간에게 반항하고 마침내는 오히려 인간을 지배한다.

<R.U.R>은 프라하 공연 후 영어권 국가뿐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번역되어 공연되었다. 이에 따라 ‘로봇’이란 단어는 여러 나라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며 그후 공상과학 소설과 만화 및 영화에서는 단골로 사용되는 용어로 굳어졌다.

1938년 영국 BBC가 TV극으로 제작한 <R.U.R>의 한 장면.
1938년 영국 BBC가 TV극으로 제작한 <R.U.R>의 한 장면.

인조인간에 관련된 이야기는 ‘로봇’이 탄생하기 이미 몇 세기 전인 16세기 후반 프라하의 유대인 지역에서 등장한 적이 있다. 당시 박해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인 지도자 랍비 뢰브는 간절히 기도 중에 골렘을 만들라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골렘이란 히브리어로 ‘아직 형태가 갖추어 지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데 보통은 흙으로 빚은 영혼과 생명이 없는 사람 형태를 말한다.

랍비 뢰브는 유대교의 비법에 따라 블타바 강변의 흙으로 골렘을 만들고는 신비한 종교의식에 따라 주문을 하고 히브리어로 ‘진실’이란 뜻의 글자 에멧(Emet)을 골렘의 이마에 붙였다. 그리고는 코에다가 정기를 불어넣자 골렘이 생명을 얻어 일어섰다. 기골이 장대한 골렘의 임무는 이곳의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일이라 유대인들은 이제는 안심이었다.

그런데 골렘은 날로 점점 포악해져 유대인까지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랍비는 사람들에게 골렘을 파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골렘의 이마에 붙은 글자에서 에(E)를 떼어냈다. 그러자 골렘은 그만 생명을 잃고 흙의 형상으로 돌아갔다. 히브리어로 멧(Met)은 ‘죽음’이란 뜻이다. 

골렘의 형상으로 장식된 유대인 지역의 한 레스토랑.
골렘의 형상으로 장식된 유대인 지역의 한 레스토랑.

골렘 이야기는 후세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매리 셸리가 1818년에 출간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골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톨킨이 1954년에 처음 출간한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하는 ‘골룸’이란 이름은 다름 아닌 ‘골렘’을 변형한 것임에 틀림없다.

카렐 차펙은 그의 희곡 <R.U.R>과 골렘 이야기와의 연관성은 부인했지만 골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올림피아가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것도 골렘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있으니 혹시 호프만도 골렘 이야기에서 영감을 좀 받은 것은 아닐까?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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