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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신윤복이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면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조선 풍속화 VS 네덜란드 풍속화

2015.09.30 변종필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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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에서 풍속화가 꽃을 피운 시기는 17세기 바로크시대이고, 그 중심은 네덜란드였다. 한국미술에서의 풍속화의 전성시대는 조선후기(18세기말) 정조와 순조 시대였다.

네덜란드 미술계에는 프란스 할스를 비롯해 반 델 루이스, 가브리엘 메추, 프란스 반 미리스, 아드리안 반 오스타데, 아드리안 브라우어, 얀 스테인, 피테르 드 호흐, 니콜라스 마스, 코이링 반 브레켈렌캄, 헤라르트 테르보르흐, 요하네스 베르메르 등 풍경화를 즐겨 그린 화가들이 많았다.

조선시대에도 18세기 양반출신의 윤두서와 조영석이 다져놓은 기틀 위에서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들이 풍속화를 대중의 미술로 끌어올렸다.

네덜란드와 조선 시대의 풍속화는 동서양을 떠나 당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착, 애정, 욕망을 특유의 풍자와 해학, 사실성과 상징성(알레고리)을 담아 표현한 공통점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 최고의 풍속 화가로 지극히 대조적인 화풍을 추구했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은 시공간을 넘어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과 비교할만한 하다.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 중 대표작인 <자리짜기>와 <서당>은 코이링 반 브레켈렌캄의 <실내풍경>과 얀 스테인의 <학교 선생>과 각각 비교할만하다.

코이링 반 브레켈렌캄의 <실내풍경>을 보면 남자재봉사가 일을 하고 여인은 음식재료를 다듬고 있고,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자리를 짜는 남자와 물레질하는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코이링 반 브레켈렌캄의 그림은 <실내풍경>이라는 제목처럼 일하는 사람과 공간에 초점을 두었다. 공간을 인물표현만큼 중요시했다.

코이링 반 브레켈렌캄, <실내풍경>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미술관. /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자리짜기> 국립중앙박물관.
코이링 반 브레켈렌캄, <실내풍경>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미술관. /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자리짜기> 국립중앙박물관.

반면, 김홍도의 그림은 배경을 생략하고, 온전히 화면 속 인물이 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표현했다. 배경을 생략했지만,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기에는 충분하다.

예컨대 일하는 부모 뒤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보이는 데 평민의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글공부하는 모습에서 양반이 독점하던 교육에 평민층이 참여하게 된 시대적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김홍도의 또 다른 대표작 <서당>은 얀 스테인의 <학교 선생>과 수업장면, 학생 수,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 등 구성과 표현에서 매우 유사하다. 숟가락 모양의 나무를 들고 손바닥을 때리는 학교 선생과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기 직전의 훈장의 모습에서부터 눈물을 훔치는 아이, 공부하는 주변의 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마치 같은 장면을 보는 듯 흥미롭다.

<학교 선생>은 인물을 겹치는 형식으로 표현하여 화면이 꽉 차 보인 반면 <서당>은 훈장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인물을 배치하여 질서 있는 구도를 취하였다. 배경을 생략한 김홍도의 조형적 특징 때문에 인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효과가 있다.

두 그림은 학교와 서당의 다른 분위기, 선생과 훈장의 위치, 공부하는 아이들의 자세와 태도, 주변 배경 등 구도와 형식의 여러 부분에서 비교되는 흥미로운 점이 많다.

얀 스테인, <학교선생> 더블린, 내셔널갤러리. /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서당> 국립중앙박물관.
얀 스테인, <학교선생> 더블린, 내셔널갤러리. /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서당>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은 프란스 반 미리스와 피테르 드 호흐 작품과 비교할만하다.

먼저, 신윤복의 <니부탐춘>은 프란스 반 미리스의 <주막집 풍경>과 성희(性戱)를 동물에 빗대어 암시한 부분이 닮았다.

<니부탐춘>에는 벚꽃이 만발한 봄날, 담장 밖 노송 위에 가체머리의 중년 여인과 댕기머리 처녀가 걸쳐 앉아 개의 교미장면을 구경하고 있고, <주막집 풍경>에서도 교미를 시도하는 개가 보인다. 옆의 남녀사이에 앞으로 일어날 성희를 암시하고 있다. 앉은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을 대하는 여성의 옷차림이 노골적이다.

프란스 반 미리스의 그림이 남녀 간 성희 이전 상황을 개의 교미에 빗대어 은연중 표현했다면, 신윤복의 그림은 기녀와 어린처녀를 함께 배치해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재미있다. 중년 여인의 허벅지를 꼬집는 처녀의 모습, 퍼덕거리는 참새 한 쌍, 개구멍, 담을 넘은 벚꽃 가지 등 곳곳에 성적 표현을 상징하는 소재를 배치한 신윤복의 재치가 돋보인다.

프란스 반 미리스, <주막집풍경> 헤이그, 마우리초이스미술관. / 신윤복, 풍속화첩 <니부탐춘(?婦耽春)> 간송미술관.
프란스 반 미리스, <주막집풍경> 헤이그, 마우리초이스미술관. / 신윤복, 풍속화첩 <니부탐춘(?婦耽春)> 간송미술관.

신윤복의 또 다른 그림 <연당야유도>는 피테르 드 호흐의 <술 마시는 여자>와 견줄만하다. 두 그림에서 당시 지배층의 유흥문화를 엿볼 수 있다. <연유야유도>는 신윤복 풍속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으로 연꽃이 피기 시작한 연못 주변으로 세 쌍의 남녀가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풍경을 담았다. 높은 담벼락, 고풍스러운 고목, 부드러운 잔디가 깔린 풍경과 한껏 멋을 낸 남자들의 옷차림에서 지체 높은 양반들의 유흥 자리임을 알 수 있다.

세 명의 여성 중 두 명은 기방(妓房)의 여인들이고, 한 명은 머리에 가리마(궁궐의녀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의녀인 듯하다. 화면은 크게 긴 담뱃대를 문 남자가 거문고를 타는 여인을 감상하고, 그 뒤로 사방관을 땅에 벗어놓고 채 여인을 품에 안고 있는 남자, 거문고 음률보다는 애정 행위를 하는 남녀 쪽을 바라보는 남자로 구성돼 있다.

피테르 드 호흐의 <술 마시는 여자>는 여성이 중심이다. 강렬한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이 이미 취기가 오른 붉은 얼굴로 자신을 관조적 자세로 바라보는 두 남자 사이에서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술을 따르는 남자 옆의 뚜쟁이로 보이는 여인이 오늘의 자리를 마련한 듯싶다. 신윤복과 피테르 드 호흐 두 화가가 담아낸 풍경은 당시 지체 높은 양반사회와 귀족의 유흥문화를 예찬보다는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피테르 드 호흐,<술마시는 여자> 파리, 루브르박물관. / 신윤복, 풍속화첩 <연당야유도(連塘野遊圖)> 간송미술관.
피테르 드 호흐,<술마시는 여자> 파리, 루브르박물관. / 신윤복, 풍속화첩 <연당야유도(連塘野遊圖)> 간송미술관.

살펴보았듯 풍속화는 동서양을 초월해 인간의 삶을 가장 생생하게 옮긴 기록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시민들의 일상과 조선 시대 서민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각자료로써 풍속화는 소소한 일상이 회화주제로 얼마나 의미있는지 보여준다.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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