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6조(벌칙)
-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개정 2011. 12. 2.>
1. 저작재산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제93조에 따른 권리는 제외한다)를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
2. 제129조의3제1항에 따른 법원의 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위반한 자 -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개정 2009. 4. 22., 2011. 6. 30., 2011. 12. 2.>
1.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
2. 제53조 및 제54조(제90조 및 제98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에 따른 등록을 거짓으로 한 자
3. 제93조에 따라 보호되는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복제ㆍ배포ㆍ방송 또는 전송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
3의2. 제103조의3제4항을 위반한 자
3의3. 업으로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제104조의2제1항 또는 제2항을 위반한 자
3의4. 업으로 또는 영리를 목적으로 제104조의3제1항을 위반한 자. 다만, 과실로 저작권 또는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 침해를 유발 또는 은닉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자는 제외한다.
3의5. 제104조의4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자
3의6. 제104조의5를 위반한 자
3의7. 제104조의7을 위반한 자
4. 제124조제1항에 따른 침해행위로 보는 행위를 한 자
5. 삭제 <2011. 6. 30.>
6. 삭제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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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알비니는 유독 특별한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는 노이즈 록/매스 록 밴드를 했으며 프로듀서로서는 얼터너티브, 그리고 인디 록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의 밴드활동보다는 약 1000여장의 앨범을 작업한 사운드 엔지니어로써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기본에 충실하되 급진적이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프로덕션, 변명하지 않는 반골 기질, 신랄한 유머감각 정도로 그의 캐릭터를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알비니와 여타 프로듀서들과의 차이점 중 하나는 그가 ‘프로듀서’라는 호칭을 혐오했다는 사실이다. 대신 ‘녹음 엔지니어’라는 호칭을 선호했다.
프로듀서의 경우 통제권을 쥐고 밴드의 음악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녹음 엔지니어의 역할은 음악가의 사운드를 작업하는 데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축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티브 알비니는 자신이 작업한 음반들로부터 로얄티를 받지 않으며 작업 시에도 저렴한 정액 요금을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예술가의 작품으로 무한정 돈을 버는 것이 비윤리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너바나와 작업한 앨범의 로얄티를 받지 않으면서 수백만 달러를 포기한 셈이었다.
스티브 알비니는 푸 파이터스 같이 현재 가장 큰 밴드부터 지금은 해체한 스크리밍 피메일스 같이 비교적 덜 알려진 밴드까지 누구와도 함께 일했고 자신이 일한 시간만큼 정해진 돈만 가져갔다.
스티브 알비니는 수십년간 거대 음반사의 횡포와 미국 음악산업 전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이어 나갔다.
특히 젊은 밴드가 경력 초기에 착취적인 계약에 유인되는 사례를 경계했고 대형 음반사의 경영진들의 약탈적 관행을 비난했다.
팝 음악에 대한 혐오감 또한 자주 표현했는데 보통의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들이 보컬의 볼륨을 높이면서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들에 반대되는 일을 하려했다.
스튜디오 레코딩의 교과서로 여겨지는 밴드 스틸리 댄을 싫어한다는 의사표현을 공공연하게 했는데, 그만큼 멀끔하고 기계처럼 정형화된 소리를 피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오늘날의 소비자 중심 사회에서 뮤지션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도전적이며 반체제적 사고 방식을 지닌 펑크 록이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늘 강조해왔다.
캘리포니아에서 1962년도에 태어나 몬태나에서 성장한 스티브 알비니는 십대 시절 라몬즈를 듣고 본인과 친구들의 불경함과 멍청함, 그리고 일종의 광기를 대표하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음악에 빠졌다.
그 무렵 다리를 심하게 다치면서 회복하는 동안 베이스 기타를 연습했고 이후 몇몇 밴드를 거쳤다.
노스웨스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카고로 이주한 스티브 알비니는 시카고의 DIY 펑크에 빠져 있었고 이후 저널리즘 학위를 받았다.
독립 잡지 <포스트 익스포저>에 글을 기고했으며 폭력적인 리프와 드럼 머신을 트레이드마크로 한 포스트 펑크 밴드 빅 블랙을 결성했다.
빅 블랙의 마지막 공연에서 당시 쓰던 악기들을 모두 부쉈고, 이후 매스록 밴드 셸락을 결성했는데 이는 그의 경력 끝까지 이어진다.
셸락의 경우 페스티벌 공연을 의도적으로 피했는데 관련 없는 아티스트들과의 소란스럽고 상업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큐레이팅이 중심이 되는 ‘올 투모로스 파티’ 페스티벌의 경우에만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프로듀서로서는 픽시즈의 세기의 걸작 <Surfer Rosa>를 녹음하면서 주목받았으며, 이후 픽시즈의 베이스연주자 킴 딜의 밴드 브리더스의 <Pod>를 녹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두 앨범을 좋아했던 커트 코베인에 의해 당시 <Nevermind>로 세상의 중심에 있었던 너바나가 자신들의 다음 앨범 <In Utero>의 녹음을 스티브 알비니에게 맡긴다.
정작 스티브 알비니는 <Nevermind>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픽시즈와의 작업에 대해서는 “코걸이에 걸려 끌려 다니기를 더 열망하는 네 마리의 소”라고 빈정댔던 것으로 유명했다.
스티브 알비니는 너바나가 소속되어 있는 거대 음반사의 경영진들을 멀리하기 위해 일부러 고립된 스튜디오를 선택했고 녹음은 6일만에 완료됐다.
예상대로 스티브 알비니 특유의 거친 결과물을 들은 음반사 측은 당연히 불만족스러워 했고 결국 몇몇 곡의 경우 R.E.M.을 작업했던 스캇 릿에 의해 새로 믹스됐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너바나의 <In Utero>가 스티브 알비니를 전설로 만들어 줬지만 당시에는 그에 대한 입소문이 이상하게 나면서 음반사들이 스티브 알비니를 기피했고 예정된 작업마저 취소되는 등 일자리를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자신만의 스튜디오의 필요성을 깨달은 스티브 알비니는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의 앨범을 작업한 돈으로, 이제는 시카고의 명소가 된 일렉트리컬 오디오 스튜디오를 1997년도에 설립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작업시간에 대해서만 비용을 청구하고 친구나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무료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스티브 알비니는 큰 밴드이건 작은 밴드이건 간에 하루 일당으로 750달러를 받는데, 세계적 수준의 스튜디오에서 일급 엔지니어인 그가 하루 작업하는 데에 750달러의 금액을 받는 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최근까지 스튜디오에 전화를 걸면 스티브 알비니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스티브 알비니는 특정한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았고 그저 일정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PJ 하비의 <Rid of Me>처럼 원초적이고 높은 에너지의 프로덕션이 주로 많았지만 니나 나스타샤, 조안나 뉴섬, 로우 등의 인디 포크 작품들, 모과이, 슬린트 등의 포스트록, 그리고 크랭키 소속의 실험적인 음악들 또한 두루 작업해냈다.
작업 시에는 음악에 대한 의견을 내지 않으려 굉장히 노력했으며, 한발 물러나 자신의 일만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이 좋고 나쁘고는 그가 해야 할 부분이 아니었다. 무엇을 연주하든 단지 종소리처럼 명확하게 들리게끔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까다로운 성격답게 아날로그 작업을 지지하고 디지털 녹음을 비난했지만 의외로 음원의 디지털 공유나 스트리밍의 경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다는 지점 때문에 지지했다.
스스로가 평생에 걸쳐 터득해 온 레코딩 노하우나 팁, 사용하는 장비 등을 세간에 널리 공유하는 편이기도 했다.
스티브 알비니는 나이가 들면서 온화해지지는 않았지만 적대적인 습관들을 점차 버려갔다. 그럼에도 항상 그를 지탱해 온 견고한 원칙 같은 것들은 굳건히 지켜냈다. 음악 작업 이외에도 의외로 포커 플레이어로써 대회에서 수백명을 이기면서 몇 차례 우승하기도 했다.
2024년 5월 7일, 불현듯 스티브 알비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61세라는 짧다면 짧은 생애였다.
최근까지 꾸준히 얼굴을 내밀었으며, 사망소식이 전해진지 일주일 후에는 자신의 밴드 셸락의 10년 만의 새 앨범 <To All Trains>이 발매될 예정이었다.
당연히 앨범 발매 투어 또한 계획되어 있었다. 생전의 그는 자주 돌발적인 언행을 해왔는데 결국 의도치 않게 자신의 죽음마저도 너무도 갑작스러워 몹시나 당황스럽다.
스티브 알비니의 중요성은 그의 명성보다 크다. 시카고가, 더 나아가 미국이 인디 록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브 알비니의 공이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음반에 기록된 음악과 문화 그 자체가 자신들이 작업한 아티스트들보다 오래 지속되기를 원했다. 그는 밴드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음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자신의 음악작업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지만 스스로가 특정 산업에 속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던 스티브 알비니의 뒤에는 그럼에도 무수한 추종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나는 평생 목표 없이 살아왔으며, 그것은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코 불안하거나 불만스러운 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뭔가를 성취하지 못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아직 성취해야 할 게 남아있다고 느껴본 적도 없다.
목표라는 것은 꽤나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만족스러워 할 것이며, 그 특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 목적은 사라지고 존재의 지침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항상 모든 것을 과정으로 보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지속 가능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방식으로 일을 하고 싶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 나에게 성공이란 내일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카고 선타임스와의 인터뷰 중)
☞ 추천 음반
◆ Godspeed You! Black Emperor - Yanqui U.X.O. (2002 / Constellation)
이 업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밴드와 프로듀서가 충돌해 만들어낸 결과물. 밴드 특유의 분노로 뒤덮인 시네마틱한 사운드가 끊임없이 폭발을 멈추지 않는다.
스티브 알비니와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 모두 알루미늄 넥으로 된 기타를 사용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앨범 커버 뒷면에 4대 대형 음반사의 수익이 어떻게 다국적 무기 제조 업체들에게로 유입되는지를 나타내는 다이어그램을 보노라면 이 협업은 필연적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바이닐 레코드 버전이 몇 분 더 긴데 두 버전 모두 구매해 비교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 On the Pulse >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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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뉴스 ‘공무원 육아시간 보장’…정부-공무원노조 교섭 타결 정부와 공무원노동조합 간 역대 세 번째 정부교섭이 타결됐다. 인사혁신처는 3일 정부와 국가 및 지방공무원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을 마무리하고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2020 정부교섭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체결식은 지난 2006년 시행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6 정부교섭과 2008 정부교섭에 이어 노조 측이 2020 정부교섭을 요구한 지 4년 7개월 만에 타결된 세 번째 정부교섭이다. 정부 측 교섭위원으로 김승호 인사혁신처장(교섭대표)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국민권익위원회 등 6개 관계부처 차관(급)이 참석했다. 노조 측 교섭위원으로는 이해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교섭대표)과 석현정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현진 공무원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이관우 교육청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등 10명이 참석했다. 김승호 인사혁신처장과 이해준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등 교섭위원들이 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2020 정부교섭' 단체협약을 체결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6.3.(ⓒ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협약 체결을 위해 정부와 공무원노조는 지난 2020년 1월부터 단체교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분과교섭과 실무교섭 등의 절차를 거쳤다. 이번 단체협약에서는 저출산 극복 및 모성보호 강화를 위해 공무원의 육아시간을 보장하고, 임신 중인 여성 공무원이 모성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직무 여건을 개선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민원인 등의 폭언·폭행 등으로부터 민원 담당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정기적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이에 따른 개선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공무원의 근무조건과 관련한 의제 논의를 위해 공무원노사협의회를 설치·운영하고, 공무원 보수와 수당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노조가 지속적인 논의를 추진키로 했다. 김승호 인사처장은 공무원 노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교섭에 임해 정부교섭을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건전한 공무원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국민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반자로서 적극 협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의: 인사혁신처 공무원노사협력관 노사협력담당관 (044-201-8089)
- 한컷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의사가 늘어납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의사가 늘어납니다! 지금은!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일수록 의사가 부족합니다. - 의료사고로 받게 될 피해로 필수의료 선택을 기피 - 필수분야 의료진 업무 강도 증가 및 피로 누적으로 사고 위험 증가하고 의료진이 이탈하는 악순환 반복 앞으로는!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필수의료 의사가 늘어납니다. -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을 통해 생명이 직결된 진료행위에 대한 보상 강화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미래를 그립니다.
- 건강 영양가 풍부한 6월 수산물 2가지 영양가 풍부한 6월 수산물을 소개한다. 1. 서대 가자미목 참서대과에 속한 서대는 동물이나 사람의 혀를 닮아 설어(舌魚)라고 표기하고 우리말로 서대라고 불렀다. 서대는 주로 전남 남해안 지역에서 잡히며, 여수에서는 제사상에 올리기도 하는 귀한 생선이다. 주로 새콤달콤한 양념에 무쳐 먹지만, 말려서 조림·찜 등으로 먹어도 그 맛이 별미다. 특히 필수아미노산과 칼슘이 풍부해 면역력 향상 및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2. 전복 패류의 황제로도 불리는 전복은 맛과 영양이 뛰어나 회, 죽, 구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즐겨 먹으며, 일부 지역에선 내장으로 젓갈을 담가 먹기도 한다. 또한 껍질은 자개, 나전, 단추 등으로도 만들 수 있어 버릴 것이 없다. 타우린이 풍부해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및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며, 원기회복에도 효과가 좋아 무더운 여름철 보양식으로 제격이다. 자료=해양수산부
- 사진 산업부, 제25회 철의 날 기념식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제25회 철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제25회 철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제25회 철의 날 기념식’에서 류호창 한금 회장에게 은탑산업훈장을 수여하고 있다.,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제25회 철의 날 기념식’에서 수상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제25회 철의 날 기념식’에 참석, 철강 ESG 상생펀드 협약식에 임석해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3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열린 ‘제25회 철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효창공원에서 애국선열을 기리다 독립운동가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가? 이실직고하자면 나도 불과 몇 년 전에 알았다. 선생의 묘는 효창공원에 있다. 효창공원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를 비롯한 왕족들의 무덤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다. 그러나 일제가 이곳을 격하하기 위해공원법을 제정,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바꾸고 이들 묘를 서삼릉으로 강제로 옮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이 항일투쟁에 목숨을 바친 세 명의 의사(義士)의 유해를 이곳에 모셨고, 세 명의 임시정부 요인 및 김구 선생 유해도 함께 안장되었다. 효창공원 정문.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을 기리고자김구 선생을 비롯한 7인의 독립운동가가 잠들어 있는 서울시 용산구 효창공원을 2년 만에 다시 찾았다. 공원의 총면적은 축구장의 24배 크기에 달할 정도로 넓다. 그러다 보니 여러 방향에서 효창공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처음 방문한다면 독립운동가 묘역과 근거리에 있는 정문으로 들어가시길 추천드린다. 정문 입장 후, 좌측 안내도 표지판을 통해 묘역 등 위치를 확인하고 리플릿을 참고해각 지점들을 찾아가면 탐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효창공원 전경. 먼저 김구 선생 묘역을 찾았다.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삼의사 묘역을 지나 왼쪽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 뒤, 7월 5일 국민장으로 이곳에 모셔졌다. 입구 오르막 계단을 올라 묘역을 보려 했는데, 이날 계단 정비 공사가 진행 중이라 이용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쉽기도 했지만 묘역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김구 선생 묘역 전경. 우회하여 우측 언덕길로 김구 선생 묘역에 다다랐더니 푸른 하늘과 구름 조각, 소나무 군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름답고도 웅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가까이 다가가 선생의 묘역 바로 앞에 서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함, 안타까움, 미안함 등 복합적인 심경이 혼재했다. 가까이에서 본 김구 선생 묘역. 이 현장을 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살아갈지도 모르겠지만, 김구 선생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이 일대 유난히 까치가 많아 김구 선생이 외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삼의사 묘역으로 옮겼다. 삼의사 묘역 입구. 백범 김구 묘역과 외관상 판박이 느낌의 삼의사 묘역은 계단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한 칸 한 칸 오르다 보면 언덕 너머로 묘역이 서서히 보이고 그 끝에 삼의사가 안장돼 있다. 묘역까지 가는과정에서 극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야말로 온몸 바쳐 애국을 실행한 삼의사의 삶이 워낙 극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든 것일까? 삼의사 묘역. 묘역의 배경 풍경은 백범 김구 묘역과 유사하나, 무덤 숫자가 많다는 것과 가운데 태극기가 보이는 부분 등에서 차이가 있다. 우측에서부터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묘역이 위치하고 있다. 중국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와 일본 도쿄에서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에 반해백정기 의사는 생소한 분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삼의사 묘역을 찾은 방문객의 모습. 백 의사는 3.1운동 후 상하이로 가서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여 일본 상품 배격 운동을 이끌었고, 1933년 상하이 훙커우 육삼정 연회에 참가한 일본 주중 공사 아라요시를 습격하려다 잡혀 일본 나가사키 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듬해 6월 5일 순국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 가묘. 배경 지식이 없이 여기에 오면 삼의사 묘역인데, 왜 무덤은 네 개가 있지 하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좌측 끝에 가장 늦게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비석 글자를 보면 그 의문은 풀린다. 의사안중근지묘(義士安重根之墓). 바로 안중근 의사의 가묘이다. 가슴 아프게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해 지금은 가묘로 있지만, 만약 유해가 확인되면 여기 자리에 안장될 것이다. 안 의사의 유해를 반드시 찾아 동료 애국지사와 함께 이곳에 머무르시길 간절히 바라며, 머지않은 미래에 사의사묘역으로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태극조형물. 독립운동가 이름이 명명된 무궁화와 분수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의사 묘역을 나와서는 그 주변부에 있는 광복 70주년 기념광장의 태극조형물과 나라꽃 무궁화 등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북쪽 담장까지 올라간 뒤 자연학습장을 지나 우측으로 둘레길을 걸으며 남쪽 끝에 위치한 임정요인 묘역으로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수목들과 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루는 그 광경은 일품이었다. 임정요인 묘역 전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한 3인의 묘역이 안장돼 있는데,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한 이동녕 선생,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내면서 청산리전투 등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한 조성환 선생,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편집국장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임시정부 비서장으로서 독립운동에 큰 활약을 한 차리석 선생이다. 7인의 독립운동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의열사 내부. 묘역 외 효창공원 내 꼭 보아야 할 곳으로의열사와 그 좌측의 이봉창 의사 동상 및 백범기념관이 있다. 의열사는 효창공원에 잠들어 있는 7인의 독립운동가 영정을 모신 곳으로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3일에 합동추모제로 매년 봉행되는 장소다. 이날은 문이 닫혀 있었지만 예전에 방문했을 때 위 7인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영정사진까지 볼 수가 있었다. 이봉창 의사 동상. 의열사 좌측 담장 밖에는 아주 늠름한 모습의 이봉창 의사의 동상을 볼 수가 있다.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 실린, 거사 직전 폭탄을 들고 활짝 웃는 이봉창 의사의모습이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사진 속 모습과는 달리 폭탄을 던지는 동작의 이 동상에서는 비장함을 엿볼 수가 있다. 백범기념관 내부의 백범 좌상. 동상 바로 위에는 하얀색 2층 건물인 백범기념관이 있다.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동학운동을 하고 1년간 승려 생활을 했던 내용을 포함해 항일운동까지, 선생의 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기에 꼭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방문객이 효창공원 숲 속 내 의자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 지인들 및 반려견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방문객 모습. 무엇보다도 효창공원은 빼어난 힐링의 장소이기도 하다.일상에서 지친 피로를 풀 수 있도록 여러 갈래 산책길을 거닐어보고 숲 속 의자에 앉아 힐링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애국선열도 기리고 숲 속 산책도 할 수 있는 효창공원에 꼭 한 번 가보시면 좋겠다. 정책기자단|곽한솔greatpine7@naver.com 여러분들께 유용한 이야기를 쉽고 편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 영상 [의료개혁 연구소] ep.2 초고령사회 진입과 증가하는 의료수요 with 엑소쌤 오늘은 초고령사회 진입과 이로 인해 증가하는 노인 질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이는 멀고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불과 몇 개월 뒤에 우리에게 일어날 현실입니다. UN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는 그 문턱에 서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의료 수요와 요양수급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와 의료 시스템은 이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도 이에 대비하여 다양한 맞춤형 정책들을 시행 중인데요. 우리 모두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사회 변화에 발맞춘새로운 의료 시스템으로의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