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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남북정상회담

“‘홍익인간호’ 몰고 북한까지 달리고 싶어요”

국어교사에서 평화운동가로 나선 김승식 씨

2018.04.20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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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 선 지 30여 년. 정년퇴직까지 4년 6개월 앞둔 어느 날 학교를 그만뒀다. 교단을 내려오며 받은 퇴직금은 25인승 중고 버스를 구매하고 시설을 갖추는 데 써버렸다. 이유는 단 하나, ‘방방곡곡에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다’는 오래전 소망 때문이었다. 60대 평범한 국어교사에서 평화운동가로 나선 김승식 씨의 이야기다.

김승식 씨.(사진=C영상미디어)
김승식 씨.(사진=C영상미디어)

김 씨는 2018년 4월 9일부터 2022년 8월까지 전국 17개 시·도 마을 곳곳을 누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퇴직금으로 마련한 빨간 중형 버스 ‘홍익인간호’가 그의 발이 되어 함께한다. 일명 ‘프로젝트 K2 2022’, 김 씨가 목표로 하는 이번 과제의 이름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이지만 가장 오르기 어려운 산은 K2(고드윈오스턴산)라고 해요. 길이 험준해 함부로 도전하기 어려운 산이에요. 나 홀로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프로젝트 명으로 짓게 됐어요. ‘2022’는 원래대로라면 교직생활을 공식적으로 내려놓게 되는, 동시에 이번 여정의 끝이 되는 시점을 가리켜요.”

출발지는 김 씨의 고향인 전남 강진군 성전면 명동마을이었다. 이곳을 시작으로 남부권, 제주도, 중부권까지 순차적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김 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통일을 주제로 한 시청각 자료를 제공하며 담소를 나눈다. 문화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농어촌 현실을 감안해 일종의 재능기부인 색소폰 연주도 준비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현장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직접 내린 따뜻한 음료를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며 마을 환경 정화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운전하는 버스 안에는 여느 버스와 달리 별게 다 있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간이침대와 작은 싱크대, 노래방 기계, 빔 프로젝터, 커피 머신 등 김 씨가 직접 개조하고 마련한 것들이다. 차량 지붕에는 장기간 바깥 생활에 대비하기 위한 태양광 장치도 달았다.

김승식씨.(사진=C영상미디어)
김승식씨.(사진=C영상미디어)

평화 염원 여정, 누군가 꼭 해야 할 일

‘통일’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단지 한민족이었던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면서까지 결심한 일이 이것이냐’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온전히 응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는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며 굳건한 의지를 보였다. 젊은 시절 방송으로 보았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결코 잊을 수 없어서다.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지구촌 시대에 부모와 자식이, 형제와 남매가 만날 수 없다는 건 너무나도 슬픈 일이잖아요. 통일의 필요성을 논하기에 이산가족 문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운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지만 그것을 어떤 형태로 구체화할지 결정한 건 12년 전이에요. 기동력을 가질 수 있는 버스가 딱이죠. 요새는 캠핑카로 세계를 도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무턱대고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김 씨는 다섯 가지 배경 요소를 들며 ‘프로젝트 K2 2022’의 성공 가능성을 전망했다. 가장 먼저 ‘통일과 평화’라는 충분한 대의명분이 전제됐고 그것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자신의 의지도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세 번째 요소는 도움인데, 김 씨가 수집한 자료들은 통일 관련 단체에서 도움을 받았다. 또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은 남북 합동 공연, 개최를 앞둔 남북정상회담 등 최근 시류와 통일 운동이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1인 활동이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는 홍보는 더욱 필요한 부분”이라고도 덧붙였다.

장기간 활동을 계획하는 만큼 수익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버스 한편에 마련된 ‘동행 모금함’이 해결책이다. 그는 “모금함을 후원의 개념으로 생각하기보다 함께 달린다는 의미의 동행으로 봐주시면 좋겠다”면서 “개인 생활비 절약도 병행하면 문제는 크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훨씬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 대신 깊숙한 마을을 목적지로 선택한 이유를 묻자 “흐트러지지 않고 책임감을 갖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3월 31일 자신의 활동 계획을 알리는 출정식을 연 것도 이 때문이다. 목적의식을 보다 뚜렷하게 함으로써 향후 여정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과 맞서려 한다.

그는 자신의 활동에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했다. 김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분이다. 고향에 아버지의 공적비가 세워졌는데 그것을 보며 ‘나도 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통일 운동은 그가 생각하는 봉사의 일환인 셈이다.

“버스 전면에 홍익인간이라는 문구를 붙였어요.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제가 평생 지켜온 신념이기도 합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비록 통일 전문가는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통일을 꾸준히 이야기하고 공감하다 보면 통일을 앞당기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여정 중 언젠가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돼 버스를 몰고 북한까지 갈 수 있길 바라봅니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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