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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2019…지금 여기 ‘우리들의 부마’가 있습니다

2019.10.10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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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부산·마산(現 창원)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불꽃이 피어난 지 40년 만에, 마침내 우리는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이라는 뜻깊은 결실을 이뤄냈다.

이는 유신독재에 혹독한 희생을 치렀던 부산·마산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간절한 염원의 결과이다.

그동안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해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부산과 창원, 경상남도의 지자체와 협력해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회토론회와 지정촉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시민들의 의지를 모으는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또한 2019년은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정부와 국민이 함께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부마민주항쟁은 40년 전 유신독재를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1979년 10월, 유신의 군부독재 아래 부산과 마산(現 창원)의 시민들이 맨몸으로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일어났다. 이는 독재에 맞선 시민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이후 대한민국은 대단한 변혁을 겪었다.

당장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사망했고, 그 다음 해에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에서 부마민주항쟁과 결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는 군부독재를 몰아내지 못했지만 1987년 6·10항쟁으로 드디어 대통령직선제를 이룩할 수 있었다.

지난 9월 18일 부마민주항쟁 발원지인 부산대학교에서 (왼쪽 세번째부터) 허성무 창원시장, 김경수 경상남도지사,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환영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지난 9월 18일 부마민주항쟁 발원지인 부산대학교에서 (왼쪽 세번째부터)허성무 창원시장, 김경수 경상남도지사,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이처럼 큰 줄기에 있는 사건들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부마민주항쟁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크고 역사적 의미와 성과는 실로 놀라웠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부마민주항쟁은 지난 40년 동안 잊혀진 역사, 지역의 미미한 사건으로 취급되어 여타 민주화 운동들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되어온 게 사실이다.

또한 항쟁 당시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된 분들의 고통은 망각 되어버렸고, 자신의 정당한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했다.

많이 늦었지만 이번 국가기념일 지정을 통해 그분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부마민주항쟁의 의미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바란다. 

특히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40년 전 평범한 대학생, 회사원, 고등학생, 상인, 노동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민주주의를 향한 용감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 걸음은 유신체제를 끝장내고 이듬해 5월 광주로, 1987년에는 전국을 뒤흔드는 외침이 되어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 또한 오늘날에는 촛불혁명으로 다시 한번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민주시민임을 보여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어느 한 지역의 국한된 민주화운동이 아닌 국민 모두에게 “우리들의 부마”로 기억해야 할 역사다.

군부독재에 항거해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외쳤던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가 결코 가볍게 이룩된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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