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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민주항쟁으로 국가가 인정한 ‘부마민주항쟁’

[가보니] 제40회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현장 취재기

2019.10.16 정책기자 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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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무 살 때, 엄마는 처음으로 엄마의 스무 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엄마가 바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주동자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시위를 기획한 용감한 엄마의 모습과 고문의 공포와 수치심으로 떨던 그때의 모습을 처음 들었습니다. 엄마가 보여준 용기, 엄마가 겪은 고통이 우리의 역사를 한 걸음 나아가게 했고, 저 역시나 그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10월 16일 오전 10시,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던 경남대 대운동장에서는 이용빈(20) 씨가 스무 살이었던 엄마의 항쟁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공개되자 대통령 내외와 함께 앉아있던 엄마 옥정애(부마민주항쟁 고문 피해자·당시 경남대 3학년) 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던 경남대 대운동장에서는 이용빈(20)씨가 20살이었던 엄마의 항쟁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고 있다.
10월 16일 오전 10시,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던 경남대 대운동장에서는 이용빈(20) 씨가 스무 살이었던 엄마의 항쟁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놨다.


10월 16일 오늘은 부산과 경남 마산 일대 시민들이 유신체제에 맞섰던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부마민주항쟁이 최초로 발생한 날로, 지난달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저항해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회원구)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다.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 5000여명이 교내에서 시작한 시위는 이후 부산 시내 중심에서 일반 시민들까지 합세하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이에 정부는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해 시위를 강제 진압했다.

하지만 시위는 인근 마산 지역으로까지 번졌고, 경남대학교와 마산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격렬한 시위가 전개됐다. 이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시위는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시위 기간은 짧았지만, 군사정권 철권통치 18년을 끝내는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민주화 운동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10월 16일은 부마민주항쟁이 최초로 발생한 날로, 지난달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첫 기념식에 참석해 부마항쟁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10월 16일은 부마민주항쟁이 최초로 발생한 날로, 지난달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첫 기념식에 참석해 부마항쟁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번 기념식은 ‘1979-2019 우리들의 부마’라는 주제로 부마민주항쟁의 의미와 정신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공감과 연결’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기념식은 100년 전 임시정부 수립부터 부마민주항쟁을 거쳐 촛불혁명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담은 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이어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위대가 가장 많이 불렀던 애국가를 항쟁 참여자와 가족 30여명이 무대 위에서 함께 제창했다.

애국가 첫 소절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고, 이날 모인 3000여명의 내빈이 함께 목청껏 4절까지 불렀다. 이어 항쟁 참여자와 가족의 사연을 담은 증언 영상 및 뮤지컬 배우들의 ‘우리들의 부마’ 공연으로 항쟁의 아픔을 공유했다.

계엄령이 선포된 뒤 옛 부산시청(부산 중구 광복동) 앞에서 탱크가 감시를 하고 있다. <사진=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계엄령이 선포된 뒤 옛 부산시청(부산 중구 광복동) 앞에서 탱크가 감시를 하고 있다.(사진=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이창곤(부마항쟁 고문 피해자·당시 경남대 3학년) 씨는 “기억이라는 게 잊으려 한다고 잊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통과 공포, 불안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그날의 아픔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부마항쟁 첫 시위 주동자였던 정광민(당시 부산대 2학년) 씨는 “부마항쟁으로 인해 사실 굉장한 시련과 고난을 겪었다”며 “짧은 시기에 두 번이나 징역을 살았고, 그것이 제 인생을 거의 결정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첫 기념식에 참석해 부마항쟁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문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길고, 엄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유신독재를 무너뜨림으로써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부산 중구 광복동에서 시민·학생이 유신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부산 중구 광복동에서 시민·학생이 유신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그러면서 “지난 9월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오늘 처음으로 정부 주관 기념식이 열렸다”며 “우리가 오늘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어제의 노력이 더 발전된 민주주의로 확장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천하는 가운데 확장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정부가 부마항쟁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 보상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투쟁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역사의 현장 민주의 절대한 힘을 하나하나 찾아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민주 투사 만세. 혁명 투사 만세.”

두 번째 주제공연에서는 ‘민주의 불꽃’이란 주제로 배우 조진웅 씨가 고(故) 임수생 시인의 ‘거대한 불꽃 부마민주항쟁’을 직접 낭독했다. 시 ‘거대한 불꽃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부마항쟁이 지닌 혁명 정신을 기리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40회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경남대학교 교내 일대에는 재학생들이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한 선배들에게 쓴 쪽지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제40회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경남대학교 교내 일대에는 재학생들이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한 선배들에게 쓴 쪽지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행정안전부 박지웅 사무관은 “부마민주항쟁은 부산·경남·창원 지역만의 민주화 운동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기념하고 계승해야 할 우리 민주주의 역사”라며 “국가기념일 지정이 늦은 만큼 다른 민주화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고 민주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979년 10월 16일 마산시위가 열렸던 경남대 교정에서 40주년 국가기념식이 열렸다.
마산 시위가 열렸던 경남대 교정에서 40년 후인 2019년 10월 16일 40주년 국가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에 이어 오후 7시부터는 경남대 화영운동장에서 ‘10월의 바람 1979’라는 주제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KBS기념음악회가 펼쳐진다. 이튿날인 17일에는 경남대 창조관 평화홀에서 ‘1979 부마민주항쟁을 기억하다’는 주제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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