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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조명섭

2019.12.20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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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 하나. 근래에 이런 젊은이를 본 적이 없다. 조근조근한 말투, 과장되지 않은 언행, 긍정적 기운이 가득한 귀공자 같은 얼굴, 순박하고 풋풋한 미소, 해맑은 눈빛, 정갈하게 빗어 올백한 머리, 단정한 넥타이에 튀지 않는 슈트 차림, 자기를 키워준 할머니를 끔찍이 사랑하는 손자, 북한서 막 내려온 듯한 촌스러운 어투지만 그대로 옮겨 적어도 될 만한 거의 완전한 문장.

“내 인생이 빵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누워지냈다. 할머니가 나를 키웠다. 가난해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그만두었다가 할머니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경연에 나왔다. 할 수 있으니까 도전하는 거다. 지금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

“세상에는 부족한 사람이 참 많다. 그중에 한 명이 바로 나다.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하나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을 헐뜯고 욕하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나는 그런 세상에서 힘을 받고 노래로 보답하고 싶다.”

“사랑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의사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 정신적 육체적 환경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내 노래로 위안받기를 바란다.노래는 내 삶의 희망이자 꿈이자 보약이다.”

기획사에서 조련된 가수 지망생이 이런 말을 하면 착한 사람 코스프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청년에게서는 전혀 그런 혐의를 느낄 수가 없다. 그의 말이 곧 그의 진심이라는 건, 경연 프로그램에서의 언행이나 여러 인터뷰를 보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나는 KBS 경연 프로그램 ‘노래가 좋아-트로트 편’(10.19~11.23)을 보지 않아 그를 몰랐다. 그러나 지인 한 분이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못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들은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는 그 ‘신라의 달밤’이다.
나도 낚였다. 연이어 다섯 번을 들었다. 아니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갓 20대청년의 그 유려하고 품위 있는 중저음 미성,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그 자연스러운 창법과 바이브레이션. 가수는 쥐어짜지 않는데 청중의 가슴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의 트로트는 부박하거나 구성진 뒷맛을 남기지 않는다. 품위 있고 고급하다. 현인과 남인수의 환생이라는 수사는 적어도 내게는 부족했다. 닮은 듯 닮지 않은 그 이상이었다. 종일 불국사의 종소리가 머릿속을 흔들었다.

유튜브에 있는 그의 노래들은 다 찾아 들었다. 거의 다 100만 뷰가 훨씬 넘는다, KBS ‘신라의 달밤’ 동영상은 처음 일주일 만에 600만 뷰가 넘었다고 한다. 그는 대체로 정통 트로트만을 부른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꿈속의 사랑’ ‘베사메무쵸’ ‘나포리 맘보’ ‘눈물 젖은 두만강’…

자기를 키워준 할머니와 KBS ‘노래가 좋아’에 출연한 조명섭. (사진=KBS 화면 캡처)
자기를 키워준 할머니와 KBS ‘노래가 좋아’에 출연한 조명섭. (사진=KBS 화면 캡처)


댓글도 엄청난 상찬으로 가득하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생업을 포기할 정도다. 책임져라” “노래 듣고 울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당신을 알게 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복” “온 국민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당신이 다 풀어준다” “내 나이 예순에 비로소 노래다운 노래를 들었다”

그의 할머니가 말했듯 천상 ‘애늙은이’인 그에게 관심이 생겼다. 신문 방송의 인터뷰 기사와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모조리 다 뒤져 읽었다. ‘남자 송가인’이니 ‘백년 만의 미성’이니 ‘한국 전통가요계를 50년 이상 이끌 신성(작곡가 박성훈)’이니 하는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내가 ‘조명섭’을 글의 소재로 삼은 건 사실 그의 노래 실력에 감탄해서가 아니다. 나를 진짜로 움직인 건 신체적 경제적으로 불우하게 살아온 스물 한 살 젊은이의 삶이다. 좌절하지 않고, 나쁜 데로 빠지지도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무한대의 애정으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그의 삶의 자세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인터뷰 동영상에서 사회자에게 답하는 그의 태도와 생각을 보면 볼수록 요즘 세상에서 참 착한 청년이구나, 바른 청년이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는 강원도 원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하체 장애로 초등학생 때 2년간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 오랜 기간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고 한다.

“열두 살 때 우연히 현인의 ‘신라의 달밤’을 듣고는 큰 위안을 받아 노래를 시작했다.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 아름다웠다. 내 인생의 노래가 됐다. 그의 신사다움을 닮고 싶었다. 나만의 창법을 만들어 수없이 연습했다. 옛날 노래만 부른다며 평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옛날 노래에서 감동을 느낀다. 나는 전통이 좋다. 과거의 노래가 있어 지금의 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로트는 나를 긍정적으로 바꿔주었다.”    
6년 전에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트로트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고 성공이 예고된 건 아니었다. 커가면서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우울증도 앓았다. 알바를 일년에 40~50개씩 했다. 10만~20만 원을 받고 향우회 같은 작은 행사장에서 노래했다. 노래를 제대로 배울 돈이 없어서 혼자 자신만의 창법을 연구하고 끝없이 연습했다.

역경을 이기고 세계적 가수가 된 폴 포츠는 그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5년 전부터는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대학도 못 갔다. 입대를 앞두고 오직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경연에 참여했다. 그는 어떤 걸그룹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걸그룹은 하나도 모르고 자기는 한복이 잘 어울리는 송소희 누나나 이난영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해의 스타 탄생은 단연코 송가인이다. 그녀 역시 지방 행사를 뛰던 별 이름 없는 가수였지만 그보다는 여러모로 사정이 나았다. 가수 유산슬은 트로트의 인기에 편승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그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냥 때가 온 것이다. 나는 그에게 닥친 갑작스런 행운이 그의 착함과 반듯함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고단하고 암담하고 우울한 한국의 세모 풍경에 그는 선물이 됐다. 나는 그를 ‘이 시대의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부르고 싶다. 신데델라 송가인처럼 그의 ‘값’도 곧 수백 배로 뛸 것이다. 입영도 연기했고 앨범도 냈고 어느 기획사에 픽업도 됐다고 한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가 우쭐하거나 때 묻지 않고 지금처럼 맑고 순박한 청년으로 오래오래 남는 것이다.

한기봉

◆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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