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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로 울려 퍼지는 청년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독일/뤼벡

2019.09.26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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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독일의 대도시 함부르크에서 기차로 달려 약 한 시간 만에 뤼벡 역에 도착했다. 뤼벡이라면 한때 서유럽과 스칸디나비아 및 러시아를 중계하던 발트 해의 항구로 크게 번영하던 한자동맹의 맹주 도시였다. 현재의 뤼벡은 인구 20여만의 작은 도시로 운하로 둘러져 있는 구시가지는 걸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뤼벡 구시가지의 입구 홀슈텐 성문. 왼쪽에 성모 마리아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뤼벡 구시가지의 입구 홀슈텐 성문. 왼쪽에 성모 마리아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한자(Hansa)동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홀슈텐 성문 뒤로는 구시가지 건물의 지붕선을 뚫고 하늘을 찌르는 듯한 첨탑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성모 마리아 교회(St. Marien-Kirche)이다.

1250년에 시작하여 1350년까지 1백년에 걸쳐 건축된 이 교회는 북부 독일을 대표하는 고딕양식의 건축으로 손꼽힌다. 이 교회를 비롯하여 뤼벡에서 보이는 웬만한 옛 건물들은 벽돌로 세워져 있는데, 너무나 정교하고 기교가 넘쳐 마치 신의 손길이 깃든 것처럼 보인다.

뤼벡 구시가지의 고색창연한 벽돌건물들.
뤼벡 구시가지의 고색창연한 벽돌건물들.

교회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시선은 먼저 하늘을 향해 치솟은 높은 천정으로 향한다.

이때 교회 안에는 누가 오르간 연습을 하는지, 북스테후데의 오르간 곡이 장중하게 몇 마디 울리다가는 귀에 아주 익숙한 음악이 팡파레처럼 울려 퍼져 나오는데, 다름 아닌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65>이다.

이 환상적인 오르간의 울림이 끝난 다음,  천정에 한동안 고정되어 있던 나의 시선은 아래로 향한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채로 보존된 부서진 종에 멈추어진다.

이 종은 더 이상 울리지 않지만 지난날의 비극을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듯하다.


1942년 3월 29일, 부활절을 1주일 앞둔 종려주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로 그를 환영했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뤼벡은 마치 최후의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던져진 것처럼 하늘로부터 폭탄세례를 받았다.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인하여 순식간에 시가지의 1/5이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는데 성모 마리아 교회도 하룻밤 사이에 골격만 앙상하게 남긴 폐허로 변모하고 말았으며 이곳에 있던 유서 깊은 오르간도 불타 없어져 버렸다. 다만 부서진 종은 지금도 그날을 기억하는 듯 아무런 울림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교회는 급속도로 복구되었고 불타 없어진 오르간 자리에 지금은 1968년에 제작된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데, 1만개의 파이프와 음색을 조절하는 스톱이 자그마치 101개나 달려있고 가장 긴 파이프는 11미터나 된다.

조금 전 나를 매료시킨 바흐의 오르간 곡은 바로 저 웅대한 오르간에서 나오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런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는 한때 북부독일 프로테스탄트 음악의 요람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 교회의 오르간 주자 자리는 독일에서 음악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던 자리로 지금으로 치면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지휘자 자리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뤼벡 시가지의 스카이라인을 뚫고 나온 성모 마리아 교회.
뤼벡 시가지의 스카이라인을 뚫고 나온 성모 마리아 교회.

1668년부터 이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북스테후데가 봉직하고 있었다. 그는 오르간 음악에 있어서 내면적 정서를 간직한 극적이고 환상적인 작품을 쓴 음악가로, 모든 독일 음악가들이 꼭 한번 듣고 싶어 했던 대가였다. 이러한 그가 주관하는 ‘저녁 음악회’(Abendmusiken)는 수준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독일 각지에서 이것을 한번 보려고 많은 음악가들이 몰려왔다.

1705년에는 20세의 바흐도 이 음악회를 한번 보러 자신이 봉직하던 조그만 도시 아른슈타트에서 4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자그마치 300킬로미터가 넘는 머나먼 길을 두 발로 걸어 왔다. 뤼벡을 한번 방문한다는 것은 바흐로서는 그야 말로 오랜 소원을 푸는 것이었다.

성모 마리아 교회의 내부. 거대한 오르간이 보인다.
성모 마리아 교회의 내부. 거대한 오르간이 보인다.

그런데 그는 성모 마리아 교회에서 합창을 반주하는 40명의 악기주자들이 연주에 완전히 매료되어 4주일의 휴가기간이 지났어도 아른슈타트로 돌아가지 않고 북스테후데의 작곡기법을 속속들이 파헤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단결근도 아랑곳하지 않고 4주가 아니라 자그마치 4개월이나 뤼벡에서 머무른 다음에야 비로소 아른슈타트로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의 불후의 오르간 명곡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 565>는 바로 이 교회에서 북스테후데를 만난 다음 얼마 후에 작곡된 것이다.

이 곡에서는 북스테후데의 작곡기법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북스테후데의 음악에 비하면 감정의 기복이 크고 더욱더 격렬하게 교차하는 것 같고 또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더 느껴진다. 그러니까 바흐의 젊은 시절의 혈기가 물씬 느껴지는 음악이라고나 할까.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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