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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힙합 그룹이 살아남는 법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⑭에픽하이 ‘Fly’

2019.04.18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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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을 기억한다. 이 프로그램의 첫 회에선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 날의 1위 후보는 동방신기와 에픽하이였다. 보통은 동방신기가 1위를 했을 거라는 예측이 자연스럽지만 그랬다면 이 이야기를 꺼냈을 리 없다. 그렇다. 이 날 1위를 차지한 노래는 에픽하이의 ‘Fly’였다. 

2003년 1집 앨범 <Map Of The Human Soul>로 데뷔한 에픽하이(Epik High).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3년 1집 앨범 <Map Of The Human Soul>로 데뷔한 에픽하이(Epik High).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힙합 뮤지션의 노래가 심심치 않게 음원차트 1위에 오르는 요즘에 비춰 본다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싶지만 당시는 지금과 달랐다. ‘역대급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 음악평론가 윤호준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90년대 중반부터 아이돌 댄스뮤직이 TV를 완전히 점령한 이래 순위 프로그램에서 록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뮤지션이 1위를 거머쥔 사례가 있었던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힙합은 2000년 이후 뮤지션들 각각의 정규 앨범이 하나 둘 발표되기 시작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걸 해냈다”

그러나 당시 ‘Fly’에 대한 힙합 마니아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단 힙합 마니아 중에서 이 노래를 ‘힙합’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힙합 마니아 대다수는 ‘Fly’를 힙합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다. 게다가 나와의 인터뷰에서 타블로 본인 역시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동안의 앨범에 힙합적인 곡도 많았지만 2집의 ‘평화의 날’, 3집의 ‘Fly’, 이번 ‘FAN’ 같은 곡은 누가 들어도 힙합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대중이 ‘Fly’를 ‘힙합 노래’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힙합 마니아가 보는 ‘Fly’는 ‘아이돌 가요’와 다를 바 없는 노래였지만 <쇼! 음악중심>을 즐겨보는 대중에게 ‘Fly’는 평소 즐겨 듣던 노래들과는 또 다른 노래였다.

비록(?) ‘Fly’가 댄스 리듬을 차용한 노래이긴 했지만 메시지의 전달 도구로는 노래 내내 랩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에게 힙합은 곧 랩으로 가득한 노래이기도 했으니까.

힙합 그룹 에픽하이는 타블로(왼쪽), 미쓰라 진, DJ 투컷 등 3명이 멤버 교체없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힙합 그룹 에픽하이는 타블로(왼쪽), 미쓰라 진, DJ 투컷 등 3명이 멤버 교체없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에픽하이는 한국의 어떤 힙합 뮤지션보다 입체적인 행보를 이어온 그룹이다. <Lesson> 시리즈를 이어나가면서도 ‘평화의 날’이나 ‘Fly’ 같은 노래를 만들었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과 교류하면서도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농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그들의 이런 행보는 ‘균형’이자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적지 않은 힙합 마니아에게 이 같은 광경은 ‘어중간’하거나 ‘정체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반응에 대해 타블로는 그동안 이렇게 말해왔다.

“힙합에 대한 사랑은 절대 장난이 아니에요. 저희 앨범의 반은 분명히 힙합이구요. 리스너로서 저희의 음악 사랑의 중심은 여전히 힙합입니다.

저희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기 이전에 음악을 듣는 사람이기 때문에 힙합과 랩을 너무 좋아하고 또 문화적인 면도 좋아하지만 저희가 그 문화를 100% 반영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사실 사람이 살면서 ‘나는 힙합이고, 힙합 외의 것들은 내가 아니다’라고 구분을 짓고 살 수가 없잖아요. 저는 록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삶의 방식을 흑백으로 나눌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 안에는 두 가지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Lesson One (Tablo’s Word)’, ‘출처’ 같은 곡을 좋아하며 만드는 제가 있고요. ‘우산’이나 ‘Airbag’ 같은 노래를 좋아하며 만드는 제가 있어요. 동일한 비중으로요. 매우 다른 색깔 둘을 한 틀 안에서 만드니까…”

“그걸 에픽하이라는 하나의 이름 안에서 다 해버려서 우리 팀이 사랑을 받는 것 같긴 한데, 부작용도 생기죠. 호불호도 생기고, 팬들 사이에서도 갈라지고…

줏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안 할 수는 없거든요. 굳이 한색을 접어야 한다면 저는 차라리 음악 자체를 접는 게 나아요”

2009년 24회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서 도끼(오른쪽)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에픽하이.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EPA,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9년 24회 골든 디스크 시상식에서 도끼(오른쪽)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에픽하이.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EPA,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보기에 따라 도끼(Dok2)의 성공이 에픽하이의 성공보다 힙합의 관점에서는 더 ‘순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힙합 씬이 내미는 잣대와 기준은 에픽하이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에픽하이는 살아남았다. 아니, 가장 성공한 힙합 그룹이 되었다.

물론 당신은 에픽하이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픽하이의 역사가 ‘한국’에서 ‘힙합’ 그룹이 어떻게 생존하고 또 안착하는가와 관련해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할 교과서임은 틀림없다.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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