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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제와 순수의 미학, 음표 사이 침묵이 만들어내는 신성한 드라마 슬로코어(Slowcore)라는 장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마도 포크 혹은 인디 록의 계보 아래 즈음 위치해 있을 것이다. 슬로코어와 상위 장르들과의 구별되는 지점이라 하면 보다 미니멀하고 정적이며 유독 침울한 부분이 두드러진다는 대목일 것이다. 80년대부터 이런 류의 음악을 하는 이들은 이미 존재했지만 9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슬로코어는 하나의 장르로써 분류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약간의 빛을 더하면 드림팝, 더욱 슬픈 감정을 강조하면 새드코어, 그리고 보다 극단적인 경우 드론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과거 어느 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슬로코어의 특징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었는데, 슬로코어의 좋은 점은 청취자의 세심한 주위를 요구한다는 점이며 나쁜 점은 세번 정도 노래를 들으면 잠들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태초에 갤럭시 500과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카우보이 정키스와 아메리칸 뮤직 클럽 등이 처연하면서도 쓸쓸한 슬로코어를 연주했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스페인, 아랍 스트랩, 아이다 등이 걸작을 내놓으면서 2000년대 초반 무렵 이 장르가 왕성하게 뿌리내려갔다. 현재 가장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는 라나 델 레이의 경우 자신의 음악을 두고 할리우드 새드코어라 지칭하고 있기도 하다. 슬로코어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들로는 로우(LOW)를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다. 로우는 그야말로 이 장르의 전형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대다수의 개척자들이 그렇듯 로우 또한 슬로코어라는 말을 환영하지는 않았는데, 1998년도 무렵 가졌던 인터뷰에서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멤버 앨런 스파호크는 그 명칭이 싫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베드헤드는 이 용어를 모욕이라 여겼고 레이다 브라더스 또한 슬로코어라는 표현에 반감을 표했다. 알란 스파호크의 솔로 밴드 투어 포스터 (출처=로우 홈페이지) 1993년 미네소타에서 알란 스파호크와 미미 파커를 중심으로 결성된 로우는 트리오의 형태로 운영됐지만 세번째 멤버의 경우 종종 교체됐다. 알란 스파호크와 미미 파커의 우아한 화음이 로우의 음악의 핵심이었는데, 이 신실한 목소리는 분명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발현된 소리처럼 감지되곤 했다. 미미 파커는 노래와 함께 축소된 규모의 드럼을 연주했는데 마치 퍼커션 주자처럼 일어선 채로 킥을 사용하지 않고 스틱 대신 브러시를 주로 활용했다. 실제로 알란 스파호크와 미미 파커는 부부사이이다. 시끄러운 그런지가 주류였던 1994년 무렵 데뷔 앨범 I Could Live in Hope를 발표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냈다. 슬로코어 답게 앨범의 구성도 단순했지만 무엇보다 모든 수록 곡들의 제목 또한 한 단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로우의 곡 Over the Ocean을 수록한 1996년도 앨범 The Curtain Hits the Cast 이후, 크랭키 레이블로 이적해 발표한 Secret Name과 Things We Lost in the Fire에서는 레이블의 성격 때문인지 보다 포스트 록적인 성향들이 두드러졌다. 이 두 앨범은 너바나의 프로듀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스티브 알비니가 녹음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아예 너바나의 레이블이었던 서브 팝으로 회사를 옮겼다. 서브 팝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2005년 작 The Great Destroyer는 보다 록적인 형태로 완수해내면서 세간에 충격을 줬다. 명 프로듀서 데이브 프리드먼이 참여한 이 앨범 이후부터 로우는 빌보드 차트에 랭크되기 시작하는데,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는 자신의 2010년도 솔로 앨범 Band of Joy 로우의 곡 Silver Rider를 재녹음해 수록하기도 했다. 로버트 플랜트는 인터뷰에서 로우의 The Great Destroyer 앨범에 대해 훌륭한 음악이며 자주 집에서 듣는다 언급하기도 한다. 크랭키 시절부터 시작된 로우의 실험은 느리게 변모해 갔는데, 이후에는 전자음악과 글리치를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한편 기존에 추구하던 미니멀리스트로써의 접근 방식 또한 유지해냈다. 2018년 작 Double Negative에서는 실험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 나가려 했다. 수차례 로우의 세번째 멤버가 바뀌다가 결국 2021년에 공개된 앨범 Hey What 이후부터는 아예 듀오 형태로 자리잡게 됐다. 로우의 초기시절에는 너무 조용했던 음악 탓에 주변 환경의 소음과 관객들의 잡담에 취약했던 터라 제대로 된 공연의 감상이 불가능하기까지 했다. 록 클럽에서 공연할 때면 관객들이 아예 바닥에 앉아서 관람하기도 했고, 1996년도 SXSW 페스티벌 공연에서는 이들이 공연하는 아래층에서 하드코어 밴드가 공연하면서 이 외부 소리가 로우의 음향을 덮어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결국 Trust 앨범부터 로우는 보다 강조된 사운드를 만들어 나갔다. 참고로 이들은 공연장에서는 조이 디비전과 스미스, 그리고 아웃캐스트의 Hey Ya나 펑크 밴드 미스피츠의 곡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커버하기도 했다. 오랜 기간 성실히 활동해 오던 로우의 미미 파커는 2020년 말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2021년 치료를 시작했고 2022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병에 대해 공개했는데, 치료를 위해 다수의 투어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된다. 로우가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알란 스파호크는 자신의 아들 사이러스와 데미안이라는 새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 11월 5일 미미 파커가 우리 곁을 떠났다. 미미 파커의 음악적,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였던 알란 스파호크는 미미 파커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미미는 로우 그 자체였으며 따라서 밴드도 끝났음을 공표했다. 그리고 이런 성명을 덧붙였다. 친구들이여, 이 우주를 몇 마디 언어와 짧은 메시지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녀는 지난 밤 여러분을 포함한 가족과 사랑에 둘러싸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친밀하고 성스럽게 간직해 주십시오. 이 순간을 당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와 공유하세요. 사랑은 정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로우는 인간이 품은 영혼의 상태를 음악으로 번역하는 데에 있어 가장 탁월한 밴드였다. 실제로 몰몬 교도들이었고 의도와 관계없이 이들의 음악에는 은연중에 어떤 종교적 경건함이 묻어 있었다. 음악 자체에 여백이 많았기 때문에 사색할 수 있는 공간 또한 많았는데 이들은 조용한 음악이 지닌 힘에 대해 수차례 증명해냈다. 그러니까 로우는 시끄러운 것과 폭발적인 것이 같은 의미라는 개념을 무너뜨리는 한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들이 창조해낸 우주 속에 존재하는 소박한 아득함은 음악을 듣는 이들을 순식간에 압도했으며 수십, 수백 번신경을 전율시켰다. 완전하게 그들만의 시간 축으로 흐르는 음악. 그렇기 때문에 이 침묵의 성가들은 가볍게 시대를 초월하며 그 어떤 종교적인 음악들 보다 엄숙하다. ☞ 추천 음반 ◆ Christmas (Tugboat / 1999) 이교도들도 좋아할 수 있는 종교적인 앨범이라는 평가를 얻어낸 로우의 Christmas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크리스마스 앨범이다. 앨범에 수록된 The Little Drummer Boy의 경우 의외로 G모 의류회사의 TV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앨범 안에는 상업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우리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고 적어 놓았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2024.04.16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 ‘단통법’ 10년을 되돌아보며 배경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단말기 유통법(단통법)은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하고, 일부에게만 집중된 보조금을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게 해 이용자 편익을 증진하자는 취지에서 2014년에 제정된 법이다. 이른바 호갱을 없애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법인데, 어수룩해 이용하기 쉬운 고객을 얕잡아 부르는 표현인 호갱은 바로 휴대전화 유통 부문에서 최초로 쓰인 용어다. 단통법은 제정 직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는데 최근에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단통법 폐지를 외치는 상황이 됐다. 단통법 제정 10년을 맞이한 현시점에서 단통법의 득과 실을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통법의 출발에는 잦은 단말기 대란이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단말기를 구매하더라도 정보력이 차이에 따라서 그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최신 단말기가 공짜로 판매되기 일쑤였고 정보력이 떨어지는 고객들은 제값을 주고 단말기를 구매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극심한 이용자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규제를 새롭게 담은 법이 단통법이었다. 단통법은 가입하는 요금제 수준과 연계된 합리적인 단말기 지원금 차등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한 차별적인 지원금 지급은 금지했고 이통사와 유통점은 지원금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게시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특히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은 기존 고객들에게도 지원금에 상응하는 할인을 제공하도록 해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아도 통신 요금을 절감할 수 있도록 했고 불필요한 단말기 과소비를 억제하고자 했다. 단말기 유통법은 그 시행 초기부터 잡음이 끊기지 않았다. 새로운 규제로 인해 이통사의 마케팅이 위축되고 지원금이 크게 줄면서 불만이 커졌다. 국회를 중심으로 즉각적인 법 개정 요구가 제기됐고 이통사를 단말기 유통에서 완전히 배제하자는 완전자급제 논의도 활발했다. 정부는 단말기 유통법에 대한 다양한 보완책을 제시하면서 시장에서 성과가 나타나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 결과 이통사 유통채널이 아닌 자급제 단말기 유통이 활성화됐고 자급제 단말기와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를 결합하는 패턴이 등장한 점은 긍정적이었다. 단통법 시행 이후 단말기 대란의 빈도는 크게 줄었고 이용자 차별이 완화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경쟁에 있었다. 단말기 지원금 규제가 딱히 다른 경쟁, 즉 요금 경쟁이나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용자 차별을 완화하려고 하다 보니 이통사 변경에 따르는 지원금 차등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런 이유로 이통사 간 경쟁은 크게 둔화했다. 이통사를 변경하는 데에는 위약금, 결합 할인, 장기 가입 혜택 등으로 상당한 전환비용이 존재하는데 이를 지원할 방법이 부재했다. 실제로 2013년 1116만 건이던 번호이동 건수는 2022년 453만 건으로 감소하는 등 사업자 경쟁이 많이 위축됐다. 한편 단말기 유통규제는 글로벌 규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과거에 미국, 핀란드, 벨기에 등의 국가들에서는 서비스와 단말기의 결합 판매가 이용자의 선택권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한 바 있으나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폐지했다. 일본이 우리의 단통법의 일부 내용과 유사한 지원금 규제를 도입했는데 시장에서 규제가 잘 작동하지 않아 이를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제 대부분의 국가에서 단말기 지원금의 폐지 여부는 이통사들의 자발적 선택의 문제는 될지언정 법적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영구불변의 법은 없다. 법이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단통법도 마찬가지다. 단통법 제정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이동통신 시장은 포화되었고 시장의 성장 동력이 부재하며 사업자 간 경쟁은 부족하다. 단말기 유통 부문에 이런 이례적인 강한 규제를 별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글로벌 규제 완화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이제 법 제정 10년이 되는 시점에서 단통법 폐지론은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다. 물론 단통법 폐지로 인해 이용자 차별이 다시 극심해지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고민할 필요는 있지만, 단말기 유통법의 폐지를 통해서 이통사 간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가계통신비 절감과 소비자 편익 증진을 도모할 때이다. 2024.04.15 배경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 예루살렘 정복자 티투스 황제의 자비 모차르트는 평생 20여개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의 오페라들은 어린 시절의 소규모 작품부터 성숙기의 완성도 높은 오페라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극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라고 하면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를 손꼽는다. 그런가 하면 그의 마지막 오페라는 티토의 자비(La Clemenza di Tito)다. 이 오페라는 그가 1791년 마술피리을 작곡하던 중 그해 보헤미아 왕위에 오른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모차르트는 죽기 3달 전인 1791년 9월 6일 이 오페라를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 보헤미아는 오늘날의 체코를 말한다. 그러면 티토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로마제국의 티투스 황제(39~81AD)다. 즉 라틴 명칭 Titus의 이탈리아식 표기가 Tito인 것이다. 초연 때 사용된 오페라 대본 표지. 로마에는 티투스 황제에게 바쳐진 개선문이 콜로세움 근처 지대가 다소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이 개선문의 윗부분에는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이 신격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신격 티투스에게 바친다라는 라틴어 문구가 뚜렷하다. 티투스가 신격화됐다는 것은 이 개선문이 그가 죽은 후에 세워졌다는 뜻이다. 개선문 안쪽 벽에는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정벌하고 로마에 개선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는데 그 안에는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을까? 티투스 개선문. 1821년 복구돼 현재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때는 네로황제가 통치하던 서기 66년, 로마제국의 속주 유데아(유대)에서 걷잡을 수 없는 반란이 일어나자 네로 황제는 노장 베스파시아누스를 급파했다.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장남 티투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은 반란군의 저항선을 뚫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마침 그때 수도 로마에서 정변이 일어나 네로 황제가 스스로 생을 끝냈다. 이어서 쿠데타의 연속으로 1년 동안 황제가 세 명이나 바뀌는 등 로마의 정세는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에 오리엔트 군단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황제로 옹립하여 사태를 평정했고,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에 입성해 황제 자리에 올랐다. 아버지로부터 예루살렘 공략을 위임받은 장남 티투스는 공격을 개시했다. 예루살렘 성은 넉달 동안 계속된 포위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예루살렘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예루살렘 성 안은 무자비한 살육으로 아비규환을 이뤘으며, 목숨 붙은 자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서기 71년,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가 개선마차를 타고 로마에 입성했다. 그 뒤에는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수많은 전리품과 포로 행렬이 줄을 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굳건함을 만방에 보여주려는 듯 웅대한 원형 경기장을 72년 착공했는데, 이것이 바로 콜로세움이다. 하지만 그는 콜로세움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79년 타계했고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콜로세움 개막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 그런데 티투스는 재위 2년 만에 41살의 나이로 절명하고 말았다. 로마로 입성하는 개선 행렬.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들이 보인다. 티투스 개선문 안쪽 벽면에는 개선 장면이 묘사돼 있다. 왼쪽 벽의 개선 행렬을 보면 전리품으로 챙긴 은나팔, 금으로 만든 제대(祭臺), 일곱 개의 가지로 된 금촛대 등 예루살렘 신전의 보물들이 눈에 선명하게 띈다. 오른쪽 벽면에는 개선 마차에 올라탄 티투스에게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가 면류관을 씌우는 모습이 보이며, 로마를 상징하는 여신이 말을 끌고 있고 뒤에는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보인다.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가 올라 탄 개선마차. 그러면 티투스는 어떤 황제였을까? 그는 원래 성격이 포악하고 행실이 좋지 않았으나 황제가 된 다음부터는 로마제국의 최고통치자로서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온순하고 자비스러운 모습으로 의욕적으로 제국을 통치했다. 그런데 그가 재위하던 동안 로마에는 큰 재앙이 많았다. 79년 8월 24일 황제가 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가 매몰되었는가 하면 80년 초에는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81년 여름에는 유례없는 전염병이 나돌아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티투스는 재앙이 있을 때마다 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켜 현장에 나서서 진두지휘했으며 복구와 구호사업에 사재를 털어 넣기도 했다. 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몸소 팔에 안고 위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해 9월 13일 전염병이 수그러질 때쯤 그는 온천으로 요양하러 가는 도중에 그만 쓰러졌다. 로마제국의 모든 시민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물론 유대인들은 그가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했겠지만. 티투스 황제. 한편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투스의 자비를 보면 티투스 황제가 자기를 암살하려던 측근을 콜로세움에 던져 맹수들의 밥이 되도록 하지 않고 사면해 주자 백성들은 그를 크게 칭송한다. 즉, 이 오페라는 티투스가 정치적 음모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정의와 화합을 추구한 자비롭고 관대한 황제였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이 오페라에서 다뤄진 사랑의 삼각관계와 황제 암살 시도 등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창작된 이야기일 뿐이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2024.04.11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음악이 삽입된 영화들 바로크 음악의 정점에 올라있는 작곡가 바흐는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물론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탐구가 이들 작품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그가 쉴 수 없이 작품을 내놓은 이유는 열정 이전에 20명의 자녀(이중 10명은 성년이전에 사망했다)를 둔 가장이자 매주 교회에 새로운 음악 선보여야 했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교회 음악감독 일만으로도 시간이 없었던 바흐이기에 몇몇 음악의 멜로디는 이전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도 있다. 우리는 바흐를 흔히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가 음악에 미친 영향이 실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들이 현재 재즈와 팝송 등 다양한 장르에서 차용되는 것에는 이런 그의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평균율의 발견은 세상의 모든 음악이 없어져도 평균율만 있으면 다시 복원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평균율을 음악의 구약성서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바흐의 보물 같은 음악들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사실 매우 정교하게 작곡되었으며 현재 여러 영화음악에도 사용되고 있다. 3월은 바흐가 태어난 달이기도 하다. 그를 기리며 어떤 그의 음악이 영화에 삽입되었는지 살펴 보도록 하자. 안산시립국악단이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에서 Music of Movie를 테마로 한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1977년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우주선 보이저 1호와 2호에는 인류의 메시지가 담긴 골든 레코드가 실려있다. 골든 레코드는 코스모스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아이디어로 혹시 모를 외계생명체와의 조우에서 우리인류를 소개하려는 목적에 있다. 골든 레코드는 12인치 구리로 만든 디스크이지만 이렇게 명명한 이유는 레코드 자체가 황금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골든디스크에는 바흐의 음악이 실려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이다. 인류의 문화 유산인 이 작품은 오직 피아노 또는 챔발로로 연주되도록 작곡되었다. 물론 현재는 피아노 트리오 등 다양하게 변주되어 연주되고 있지만 바흐가 원래 지은 제목은 2단 건반 클라비어 챔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들로 이루어져 있는 클라비어 연습곡이다. 기본 G장조이며 첫곡 아리아(Aria)와 30개의 변주곡(variation), 그리고 다시 처음 곡인 아리아로 돌아오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1시간이 넘어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고 있으면 흙에서 태어나 질곡 있는 시간을 보내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자연의 원칙마저 느껴진다. 이 작품은 원래 드레스덴의 카이저링크 백작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작곡되었는데,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은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고용된 연주자이자 그의 제자이기도 한 요한 골드베르크에서 가져온 것이다. 당시 14살이었던 골드베르크는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백작 때문에 계속 연주를 해야했던 고충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여러 유명영화에도 삽입되었는데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양들의 침묵을 비롯해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쉬 페이션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도 나온다. 이외에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 그리고 조지 클루니의 솔라리스등 수 많은 작품의 OST로 활용되고 있다. ◆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Jesu, Joy of Mans Desiring) 바흐의 칸타타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을 꼽으라면 아마도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Jesu, Joy of Mans Desiring)일 것이다. 우리에겐 찬송곡으로 익숙하게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1723년 강림절에 바흐가 작곡한 칸타타 BWV 147 마음과 입과 행위와 삶(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의 합창곡에서 멜로디를 가져왔다. 이 칸타타에는 6번째 악장인 예수님이 계시는 축복받은 나(Wohl mir, dass ich Jesum habe)와 10번째 악장 예수는 나의 기쁨(Jesus bleibet meine Freude)에 합창이 나온다. 각 악장의 가사는 다르지만 멜로디는 동일하다. 영어 제목은 영국 피아니스트 마이러 헤스(Myra Hess)가 1926년에 피아노 솔로로, 1934년에 피아노 이중창으로 편곡을 하면서 붙여졌으며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에 의해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어 유명세를 탔다. 사실 이 작품의 멜로디는 바흐가 온전하게 작곡한 것이 아니고 그가 태어나기 전에 출판되었던 요한 쇼프(Johann Schop)의 찬송가에서 가져온 것으로, 완전한 바흐 멜로디의 작품으로 보기는 힘들다. 특히 많은 작품들을 작곡해야 했던 바흐는 종종 같은 멜로디를 차용해 작곡을 했는데 칸타타 BWV 147 또한 그러한 작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현재 오르간, 피아노, 합창, 관현악 등 다양하게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장면에 자주 등장한다. 이 작품이 OST로 사용된 영화는 탐 크루즈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아일랜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출세작 부기 나이트 이외에도 영화 더 베리얼, TV시리즈 심슨 등 다양하다. ◆ Orchestral Suite No. 3 - Air 바흐의4개의 관현악 모음곡(Orchestral Suite)은 영국과 프랑스 궁정 취향의 춤곡들을 엮어서 만든 작품이다. 바흐는 이 작품을 작곡할 시기가 인생에서 행복했었던 한 때라고 회상했다. 4개의 작품 모두 서곡(Overture)로 시작하고 있으며 미뉴에트(Minuet)와 부레(Bourree), 가보트(Gavotte) 등 잘 알려진 춤곡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궁정음악 분위기에 맞게 쾨텐궁전에서 연주되었다고 한다. 사실 관현악 모음곡은 멘델스존에 의해 발굴되기 전까지 10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작품이다. 지금의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칭송 받을 수 있게 된 이유에는 이런 멘델스존의 노고가 있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바흐가 작곡한 무수히 많은 교회음악과 성격이 다른 관현악모음곡은 이후 아름다운 멜로디로 주목받게 되는데, 특히 모음곡 3번의 두 번째 악장 Air가 그것이다. Air는 영어식 발음이고 이탈리아어로 아리아(Aria)라고 부르는데 어원은 선율 또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곡을 뜻하며, 이후 오페라의 아름다운 독창곡에도 통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모음곡 3번의 다른 악장들은 모두 관악기와 팀파니가 함께 하는데 두 번째 악장 Air 만큼은 오직 현악합주로만 연주된다. 아름답고 고고한 Air의 멜로디에 반한 19세기 독일의 명 바이올리스트 빌헬미(August Wilhelmj, 1845~1908)는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음인 G선에서만 연주하도록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했으며 이 곡에 G선상의 아리아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작품 또한 여러 영화에 사용되었는데, TV시리즈 하우스M.D.를 비롯해 영화 세븐, 베틀로얄, 런어웨이 브라이드, 데블스 에드버킷, 에반게리온 등에 OST로 활용되었다. 이외에도 007, 베트맨, 어벤저스 등 영화의 액션 장면에서도 사용되어 역설법 또는 관객이 장면에 깊게 개입하지 못하도록하는 소격효과로 쓰이기도 했다. ◆ 토카타와 푸가(Toccata and Fugue in D Minor) 오르간은 악기의 제왕으로 불린다. 고대부터 발전해 온 오르간은 바로크시대 악기제작자 고트프리트 질버만(Gottfried Silbennann)에 의해 개량되어 정점에 다다랐다. 특히 교회음악에서 발군의 음악성을 드러낸 오르간은 인터스텔라나 오페라의 유령 등 현대 영화음악과 뮤지컬에서도 그 장중함을 잘 드러낸다. 교회의 칸토르(Kantor) 즉 예배지휘자였던 바흐는 오르간을 위한 여러 곡들을 작곡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아마도 토카타와 푸가(Toccata and Fugue in D Minor)일 것이다. 처음부터 뇌리를 때리는 강력한 선율은 이후 푸가형식으로 발전해나가 무한이 뻗어나가는 우주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토카타(Toccata)란 건반악기를 위한 즉흥성이 강한 형식으로 건반을 터치(TOUCH)하다라는 뜻 또한 갖고 있어서 화려한 기교를 보여준다. 푸가는 주제부를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형식인데 쉽게 말하자면 기악으로 하는 돌림노래라고 말할 수 있다. 자유로운 토카타를 시작으로 바로크를 상징하는 엄격한 푸가형식으로 이어지는 바흐의 토카다와 푸가는 이 두 가지 형식을 뛰어나게 접목해 탄생한 걸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 역시 강렬한 테마와 장중함을 갖고 있어 영화음악에 자주 활용되었다. 수많은 작품이 있겠으나 대표적으로 디카프리오 주연의 에비에이터, 음악 애니메이션 영화로 유명한 디즈니의 판타지아, 안소니 홉킨스의 샤도우랜드, 더스틴 호프만이 메가폰을 잡은 콰르텟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1931년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1934년작 블랙 캣, 1954년작 해저 이만리 등 바흐의 걸작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활용되었다. ☞ 음반추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음반은 많은 평론가들이 캐다나 피아니스트 글렌굴드(Glenn Gould)의 음반을 추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와 직접 라이브로 감상했던 머레이 페라이어(Murray Perahia)의 정갈한 연주를 좀더 선호한다. 프랑스의 합시코드 연주가 셀린 프리쉬(Celine Frisch)의 연주와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Dmitry Sitkovetsky)의 바이올린과 현악 합주로 편곡된 음반도 훌륭하다.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Jesu, Joy of Mans Desiring)의 멜로디가 나오는 칸타타 BWV 147은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의 연주가 아름답다. Concentus Musicus Wien와 함께 한 하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연주도 추천드린다. 관현악 모음곡집(Orchestral Suite)은 톤 쿠프만(Ton Koopman)과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연주, 그리고 지기스발트 쿠이켄(Sigiswald Kuijken)과 라 프티트 방드의 음반도 바로크적 감성을 느끼기 충분하다. 오르간 작품인 토카타와 푸가는 헬무트 발챠(Helmut Walcha), 사이몬 프레스톤 (Simon Preston)의 장중한 연주와 한스 오토(Hans Otto)의 개성 넘치는 연주 모두 좋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오케스트라 버전도 한번 들어보시길 권하겠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2024.04.09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 GTX, 새로운 교통혁명을 이끌다 이호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본부장 지난 3월 30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가 수서~동탄 34.9km 구간 운행을 시작했다. 도심 지하 4050m 깊이에서 최고속도 시속 180km로 운행되는 GTX는 도심에서 이용하던 도시철도와 속도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게 한다. 도시철도의 빠른 이동을 위해 역사의 일부만 정차하는 skip-stop 운행 방식과 다르게 GTX는 열차와 시설 모두 도심형 고속 서비스 제공을 위해 탄생했다. 2004년 고속철도가 개통됐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기존 일반철도 이용보다 2배 이상 빨라진 고속철도는 우리의 삶 속에 거리 지도가 아닌 시간 지도를 보여 주었다. 거리가 멀어서 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옛말이 됐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언제든 뛰어넘을 준비가 된 것이다. 철도 속도의 향상으로 인한 물리적 거리 타파는 이동하는 시간을 줄여 길에서 소비하던 시간을 고스란히 우리 삶 속에 돌려주었다.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지역 간 물리적 거리 단축으로 인적·물적 교류 확대를 통해 지역 간 경제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중·장거리 통행에서 보여 준 고속철도의 교통혁명이 지금 우리에게 단·중거리 통행에서 GTX를 통한 새로운 교통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GTX-A노선 개통 후 첫 평일인 1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역에서 이용객들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인적·물적 자원의 집결지인 서울의 대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수도권 외곽 신도시 개발을 통한 인구 집중 분산정책을 시행했다. 신도시 개발로 서울시 인구의 집중은 줄어들었고, 반대로 경기·인천 인구는 증가했다. 이러한 인구 분산정책은 대도시권의 주택, 교통 등 도시문제가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주거와 직장이 분리되는 직주분리 현상은 점점 광역화됐다. GTX, 낮은 요금에도 불구 SRT와 비슷한 고속 서비스 제공 2020년 기준 지난 10년간 광역 출퇴근 시간이 30분 이상인 곳은 5.4%P 증가했다. 전국의 평균 출퇴근 왕복 시간은 69분이지만 경기도는 이보다 긴 83분을 보인다. 직주분리 광역화에 따른 출퇴근 시간 증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맞이하지만, 출퇴근 시간 소모에 따른 스트레스는 우리 삶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GTX-A 일부 구간인 수서~동탄은 총 4개 역사가 있으며, 구성역을 뺀 나머지는 개통이 완료된 상태이다. 수서~동탄은 기존 대중교통 이용 시 약 80분 소요되지만, GTX는 시간이 75% 단축된 약 20분에 운행하고 있다. 요금은 기본요금과 거리추가 요금을 포함해 4,450원으로, 동일 구간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서고속철도(SRT)와 비교할 시 40% 저렴한 요금이다. 교통경제 관점에서 시간과 요금은 반비례 관계를 유지한다. 즉, 이동시간 단축을 위해서 그에 상응하는 비용 증가가 수반된다. 하지만 GTX는 낮은 요금에도 불구하고 SRT와 비슷한 고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 준 것이다. GTX-A 수서~동탄은 시작에 불과하다. 운정~동탄을 연결하는 GTX-A 전 구간은 2028년 개통을 준비하고 있다. 인천~마석을 연결하는 GTX-B는 2030년 개통 예정, 덕정을 출발해 안산과 수원을 연결하는 GTX-C는 2028년 개통 예정이다. 기종점 간 80km 이상 연결되는 GTX는 빠른 이동성과 합리적인 요금으로 여유로운 삶을 선사해 줄 것이다. 정부는 기존 GTX-A, B, C에 멈추지 않고 수도권 교통 사각지대 해결, GTX 서비스 권역 확대, 수도권과 충청·강원권의 초연결 광역경제생활권 구축을 위해 2기 GTX 사업을 발표했다. 기존 GTX-A, B, C 노선을 연장하는 사업과 신규노선인 GTX-D, E, F 사업이 포함됐다. 더욱더 촘촘한 도심형 고속 서비스 확대는 수도권 30분 출퇴근 시대를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 지난 1월 5일 오후 경기 화성시 동탄역에서 GTX-A 초도차량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GTX 효과 높이려면 빠르고 편리한 연계교통체계 확충 필요 GTX 성공을 위해서 몇 가지 정책 방안이 함께 고려됐으면 한다. 첫째, 빠르고 편리한 연계교통체계의 확충이다. GTX를 통해 통행시간이 단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출발지와 목적지가 역이 아니라면 출발지와 목적지에서 역까지 이동하는 접근시간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역 간 이동시간의 획기적인 단축이 있더라도 접근시간 증가는 GTX 효과를 감소시킬 것이다. GTX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지역에서 혜택을 보기 위해서 모세혈관과 같은 연계교통체계 확보는 꼭 필요하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GTX 주요 거점역사 환승센터는 GTX와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룰 수 있는 GTX역 중심의 역세권 개발이다. 역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역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경제활동은 역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의 경제활동 거점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역 주변에 대규모 주거단지 우선 개발 방향에서 벗어나는 상업·문화 공간을 통해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올해는 고속철도 개통 20주년, 도시철도 개통 50주년으로 철도에 있어서 매우 의미 깊은 한해이다. 이와 함께 첫발은 내딛은 GTX가 국민의 건강한 출퇴근과 여유로운 삶을 책임져,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2024.04.04 이호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본부장
- 스포츠의 ‘전쟁 기원설’에 대한 고찰 : 달리기 현대인에게 스포츠가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바쁜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체육관과 경기장을 찾아 스포츠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미래를 준비해 가는 건 삶의 또 다른 행복이자 원동력이 된다. 대개는 스포츠 하면 건강, 힐링, 즐거움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전쟁과 연결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스포츠의 유래를 설명할 때, 놀이나 사냥과 함께 전쟁 기원설도 함께 거론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전쟁의 관점에서 본 고대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의 기원과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짐작건대, 명칭도 유사한 고대의 스포츠가 현대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면, 적잖이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스포츠 영역에 남겨진 전쟁의 다양한 흔적을 발견하는 순간, 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달리기는 트랙(경주로)에서 정해진 거리를 달려 먼저 들어오는 순서대로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다. 고대 올림픽의 달리기 역시 정해진 경기장의 일정 거리를 달렸다는 점에서 현대 종목과 다를 게 없다. 다만, 고대 올림픽이 신에게 봉헌한 제의(祭儀)의 일부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도착한 승자가 신에게 바치는 공물(供物)에 불을 붙이는 종교적 의미가 강한 종목이기도 하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달리기는 모든 스포츠는 물론이고, 모든 유형의 전투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적과의 접촉을 위해, 적의 공격을 피하고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고 적을 추격하는 모든 상황에서 긴요하다. 전장에서 전사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적보다 빨리 달려야 한다. ◆ 달리기의기본 3종목 고대 올림픽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거리에 따라 스타디온(Stadion), 디아울로스(Diaulos), 돌리코스(Dolikos)라는 세 종목이 있었다. 가장 짧은 거리를 달리는 스타디온(오늘날 경기장을 뜻하는 스타디움은 여기서 유래됨)은 191.27m의 트랙을 1바퀴 달리는 경기로, 현대의 200m 달리기에 해당한다. 디아울로스는 경기장을 두 바퀴 달리는 경기로 382.54m를 달려, 현대의 400m 달리기와 유사하다. 가장 먼 거리를 달리는 돌리코스는 초기엔 경기장을 7바퀴 달렸으나, 후기로 갈수록 점점 늘어나 최대 24바퀴를 달리는 종목이 되었다. 짧게는 1,300m에서 최대 4,600m를 달렸으니, 현대의 5,000m 달리기로 보면 무난하다. 먼 거리를 달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당시 국가의 긴요한 연락을 담당한 전령(부대 간의 명령 전달을 담당하는 직책)의 장거리 이동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종목으로 공동체나 동맹국의 수가 많아지면서 달리는 거리도 늘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현대 육상종목의 분류체계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기원전부터 이미 단·중·장거리 개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23 서울달리기대회 참가자들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2023.10.8.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달리는 방법은 현대 종목과 다르지 않아, 경기 모습만으로도 분명하게 구분된다. 비교적 거리가 짧은 스타디온이나 디아울로스는 팔의 각도나 다리의 위치가 높이 올라가 있고, 상체를 앞으로 많이 숙여 전력으로 질주하는 주법을 택하고 있다. 반면,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돌리코스는 위의 방법으로 달릴 수 없기 때문에 팔이나 허벅지의 위치도 낮고 완만하며, 상체 역시 상대적으로 세운 채 최대한 체력을 안배하며 달리는 주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다음 그림 1은 고대 달리기 주법이 현대의 그것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다만, 경기복은 선수들이 온전히 경기에 전념하기 어려운 장애 요인이 분명하다. 고대 올림픽은 나체*로 진행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성인 남자가 발가벗은 채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노출된 성기가 상당한 걸림돌이 됐을 게 짐작이 된다. 짧은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리거나, 느린 속도로 장거리를 달리는 경우 모두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고안한 특단의 조치가 바로 키노데스메(Kynodesme)로 불리는 가죽끈이다.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성기를 이 끈으로 묶어 허리에 고정함으로써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물론 이 조치는 달리기 선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 무장 달리기 앞서 소개한 세 종목은 전사의 전장이동 능력 향상을 위한 종목은 맞지만, 실전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한다. 투구, 흉갑, 방패 등 방호장구와 칼이나 창 등 무기를 휴대하고, 지형이나 기상이 주는 마찰까지 극복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단순한 비무장 달리기만으로 전장이동 능력을 완성하기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에 의한 공격을 회피하거나 적진을 향해 돌격하고, 패주한 적을 추격하는 등의 전투 상황에 따라서는 무장을 착용한 채, 최고의 속도로 달려야만 했다. 이런 전장의 요구에 따라 탄생한 종목이 바로 호플리토드로모스(Hoplitodromos)다.이 종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무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중장보병은 우선 방호 장구로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Kranos)를 쓰고, 구리나 여러 겹의 천을 덧댄 흉갑(Thorax)을 착용했다. 왼손엔 가슴부터 무릎까지 커버할 수 있는 지름 1m 크기의 둥근 방패(Hoplon)를 들고, 무릎부터 발목까지는 정강이보호대 (Knemides)를 착용했다. 이렇게 무장하고 방패 뒤에 웅크리면 적이 공격할 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공격무기로 적을 향해 던지거나 찌르는 용도의 창(Dory)을 오른손에 들었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아래로는 단검(Xiphos 또는 Kopis)을 휴대했고, 발에는 가죽끈을 엮어 만든 샌들을 신었다. 이 무장들을 합친 무게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한데, 대략 32kg 정도였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완전무장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된 일이었을 텐데, 무장한 채 전장을 누비고 때로는 전속력으로 달려 적과 교전하는 데에 익숙해지려면 평시부터 수많은 반복 훈련이 필요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호플리토드로모스는 중장보병을 의미하는 호플리테스(Hoplites)와 달리기를 뜻하는 드로모스(Dromos)가 합쳐진 용어로, 풀이하면 그리스 중장보병의 달리는 경기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무장 달리기(Race in armor)이고, 군대 용어로 바꾸면, 군장 구보가 된다. 이 종목은 출전 선수들의 모습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앞서 지적한 나체 경기복의 예외다. 선수들은 저마다 전투에 출전하는 무장을 그대로 착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투 무장을 갖춘 채 달리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완전무장한 채 돌격이 가능한 거리를 고려해, 경기장을 두 바퀴(382.54m) 달리게 했다. 이 시점에 종목의 유래가 궁금해진다. 도시국가의 주력인 중장보병들은 늘 결정적인 국면에 투입됐기 때문에 이들의 전투결과는 곧 전쟁의 승패와 직결됐다. 따라서 처절한 전투를 마친 중장보병들은 무장을 해제할 겨를도 없이 사령관이나 원로원에 전황을 보고하기 위해 또다시 달려야만 했다. 그리스군의 전투 습관에서 유래한 100% 전투 스포츠(Combat-Oriented Sports)인 셈이다.경기방식의 진화는 흥미롭다. 초기에는 완전군장을 하고 달렸지만, 나중엔 무장을 대폭 줄여 방패만 들고 달리면서 전투행위를 병행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진화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완전무장으로 달리는 데에 방해되는 요소는 사전에 철저하게 제거했다. 거추장스러운 창은 칼로 대체되었고, 선수들의 긴 수염이나 머리카락 역시 경기 전에 말끔히 정리했다. 후기에 들어서면, 창은 물론 투구도 없이 아예 방패만 들고 달리는 경기방식으로 정착되었다. 그리스의 무장 달리기는 경기 복장이나 유래 외에도 아주 특별한 군사적 함의가 숨겨져 있다. 당시 지중해 도시국가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중장보병들의 강건함이 반드시 선결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 도시국가 대부분은 전시를 대비해 평시부터 스포츠를 적극 독려*해야만 했는데 육상 트랙종목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이 종목이다.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먼저 무엇보다도 특별한 출전 자격이나 그 어떤 제한사항도 두지 않아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민들에게 전쟁(준비)의 당위성을 심어 주고, 병역이나 동원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게 하며 가급적 많은 지원자를 모병하고, 신체 조건이나 기량이 우수한 자를 중장보병에 충원함으로써 군의 강건함을 꾀했다. 또한 전체 올림픽 진행 순서에서 가장 마지막 순간 즉, 제전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정점에 올랐을 때로 맞춰 경기를 거행함으로써 시민들의 이목을 유인한 사실도 주요 포인트다. 물론 현대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는 종목이다. 그러나 군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무거운 군장을 짊어진 채 신속하게 이동하는 기술은 동서고금의 군인들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평시에 반드시 반복 훈련을 통해 상대적 우위를 달성해야만 한다. 군인에게 완전군장이나 단독군장 차림으로 달리는 군장 구보는 본능 같은 것이다. 정리하면, 호플리토드로모스에는 신성한 병역의무를 강조하고 유능한 전사를 발굴해 충원하며, 나아가 핵심 전력인 중장보병에게 무한 신뢰와 격려를 보냄으로써 범그리스의 굳건한 전시 대비태세를 유지하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따라서 모든 도시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현대의 마라톤(Marathon)*과 마찬가지로 고대 올림픽의 꽃이 되었다. 비교도 되지 않는 적은 수의 전사들이 대제국의 군대를 상대로 지중해 패권을 온전히 지켜냈던 고대사 최대 사건인 페르시아 전쟁의 중심에 이 경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욱 공감하게 될 것이다.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400m 계주 결선에서 이재성 선수에게 배턴을 받아 힘차게 달리고 있는 고승환 선수. 2023.10.3.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횃불 들고 이어달리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횃불은 제사에서 어둠을 밝혀 주는 동시에 신에게 바치는 공물(供物)에 불을 붙이는 성화(聖火)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한편 전장에서도 칠흑같이 어두운 전쟁터에서 중장보병의 눈이 되어 주고, 말이 끄는 전차가 야간에 이동하거나 전차전을 벌이는 데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전투긴요물자인 동시에 훌륭한 장식이기도 했다. 고대 올림픽에는 횃불(Lampas)을 들고, 달리는 경기(Dromia)가 있었는데, 이를 람파데드로미아(Lampadedromia)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종목이 고대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열렸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번외경기였다. 정식종목의 대우는 받지 못했지만, 람파데드로미아가 근대 올림픽에 미친 영향은 그 어떤 종목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첫째, 람파데드로미아는 여러 선수가 참가해 횃불을 들고 이어 달리는 경기방식이었는데 이는 배턴(Baton)을 사용하는 현대 계주경기(Relay Race)와 다르지 않다. 계주경기는 여기서 유래했다. 둘째, 횃불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올림픽 개회식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와 관련이 있다. 독일의 스포츠 행정가 칼 디엠(Carl Diem)은 프로메테우스 신전으로부터 성화를 여러 명의 선택된 시민들에 의해 꺼뜨리지 않고 운반했다는 기록에서 성화 봉송(Torch Race)*을 착안했다. 마침내 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에 오른 그는 1936 베를린올림픽에서 성화 봉송을 처음 전 세계인에게 선보였다. 이후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와 같은 국제대회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도 스포츠 정신을 상기시키는 핵심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고 보니 횃불은 단순히 스포츠만이 아니라 종교와 전쟁을 모두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존재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58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4.04.03 윤동일 육군사관학교 초빙교수
- 매크로 암표 근절 위해 51년 만에 세운 방패 하박국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 대표 21세기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유행한 은어는 플미아닐까. 플미는 프리미엄의 줄임말로 명품, LP, 신발 등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제품을 웃돈 주고 구입하는 행태를 뜻한다. 그중에서도 플미가 가장 극성을 부리는 분야는 공연계다. 암표라는 형태로 오랫동안 존재했던 플미는 거리두기 해제 이후 공연을 보려는 이의 수요가 늘며 덩달아 늘고 있다. 공연 예매가 온라인으로 전환된 후 반복 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티켓을 대량 구입 하는 매크로 수법 또한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공급이 한정된 티켓을 프로그램을 이용해 매점매석한 후 폭리를 취하는 거다. 음반을 팔고 공연을 만드는 이로써 직접 음반과 공연을 만들지 않은 이가 프로그램을 돌려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게 마음이 편할리 없다. 무엇보다 화나는 건 음악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보려는 팬이 공연을 볼 수 없거나 제값보다 비싼 가격에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연은 마음의 비즈니스다. 음악가와 팬이 한 장소에 같은 시간에 모여 음악을 매개로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공연 기획자는 오직 이 한 순간을 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 공연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늘 고민하고 노력한다. 이를 누군가 클릭 몇 번으로 망치고 부당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비즈니스이기에 제지도 쉽지 않다. 팬 사이에서 수요를 없애기 위해 플미 티켓 불매 운동을 자발적으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웃돈을 주고서라도 좋아하는 음악가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 마음을 알기에 부정거래로 티켓을 구입한 팬을 마냥 제지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장범준은 계획된 콘서트를 취소하기도 했다. 팬클럽만을 대상으로 티켓을 판매하는 음악가도 있다. 어떤 방법도 음악가와 팬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며 암표를 완벽하게 막기 쉽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방법으로 법과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암표 불법 거래를 처벌하기 위한 법은 1973년에 제정된 경범죄 처벌법이 유일했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암표 매매에 2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다. 단서에서 알 수 있듯 오프라인 매표소에서 예매하던 시절의 법이다. 당연히 온라인으로 활동 구역을 옮긴 암표를 단속하고 처벌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다행히도 얼마 전 51년 만에 공연법이 개정됐다. 3월 22일부터 매크로를 이용해 구입한 티켓에 웃돈을 받고 판매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부과. 담당 기관인 문체부에서는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와 협조 체계를 강화해 상습, 반복적인 암표 판매 행위를 단속하고 위반 행위를 집중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공연법 개정에 발맞춰 각 예매 사이트에 신고하던 불편을 없애기 위해 통한 신고 웹사이트도 열렸다. 웹사이트에 적힌 암표는 사회적 악!이라는 문구가 꽤 비장해 보인다. 공연 성수기에는 암표 신고 장려 기간도 운영할 예정이다. 그 기간 암표 의심 사례를 신고할 경우 신고자에게 문화상품권과 같은 소정의 사례를 제공한다고 한다. 가장 반가운 부분은 암표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지속해서 열어 민관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공연 시장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세세한 내막을 알기 어렵다. 마음의 비즈니스인 만큼 섬세하게 다루어야 한다. 관에서 이를 잘 아는 현장의 말을 귀담아 듣겠다는 의지로 보여 무척 반갑다. 공연법 개정이 모든 암표를 근절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 겨우 방패 하나를 세웠을 뿐이다. 암표라는 이름의 창은 언제라도 허점을 찾아 은밀한 거래를 시도할 것이다. 지금도 매크로 의심을 피하고자 아옮(아이디 옮기기)를 하거나 댈티(대리 티케팅)같은 방법을 쓸 경우 적발이 쉽지 않다. 개정된 법의 초점이 부정거래에 맞춰있어 매크로 사용 자체를 처벌할 수 없다는 점도 아쉽다. 비단 티켓 예매 뿐 아니라 게임, 커뮤니티, SNS 등 온갖 곳에서 정당하지 못한 매크로 이용으로 다양한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업계의 노력에 제도가 힘을 실어준다면 더 빠르게 근절 가능하지 않을까. 모쪼록 음악과 공연을 좋아하는 많은 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고 제대로 보상받기를 바란다. 글쓴이/ 하박국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 (YOUNG,GIFTEDWACK Records) 대표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을 운영하며 패션지, 신문, 스트리밍 서비스 등 여러 매체에 음악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음악 유튜브 채널 하투리(How To Listen), 인터뷰 비디오 팟캐스트 음이온 라디오, 인디 음악가의 성장을 돕는 뉴스레터 윌슨레터 등 다양한 형태로 좋은 음악을 하는 음악가와 청자가 만나는 일을 돕고 있다. 2024.03.31 하박국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 대표
- 갯벌에 길을 묻다 웅도를 떠 올리면 소달구지가 떠 오른다. 갯길을 따라 소달구지를 타고 바지락을 캐러 가는 모습이다. 비슷한 모습을 경기만 갯벌에서도 보았다. 사진으로 말이다. 지금은 소 대신에 경운기가 오간다. 소는 볼 수 없지만 바지락은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어민들이 잘 관리한 탓이다. 아니 바닷물이 잘 들고 난 탓이다. 그 바다를 잘 관리하기 위해 웅도 랜드마크인 잠수교인 유두교를 완전한 다리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웅도에서 본 가로림만 갯벌과 갯골. 소금을 굽던 섬, 가로림만 웅도 웅도는 섬 모양새가 곰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에 곰섬(熊島里)이라 기록했다. 웅도는 1.58㎢ 면적에 해안선 길이 5㎞이다. 웅도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석기 유적으로 볼 때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머물렀던 것 같다. 한때 서산시 지곡면에 속했지만, 지금은 대산읍에 속하는 섬이다. 가로림만에서는 가장 큰 섬이며, 물이 빠지면 섬이 갯벌로 둘러싸인다. 섬 서쪽 갯골은 구도에서 인천으로 이어지는 뱃길이 있었다.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뭍으로 오갈 수 있었다. 웅도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머물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김자점(1588-1651)이 유배되면서다. 큰말에는 김해김씨 사당이 있다. 조선 후기 한경춘·한여현 부자가 서산 지역 지리, 문화, 민속, 인물 등을 기록한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에 웅도가 소금 생산지로 소개되었다. 가로림만은 수심이 낮고 조차가 크며 주변에 큰 산이 없어 담수유입이 많지 않다. 따라서 갯벌을 막아 일찍부터 염전을 조성했다. 최근까지 가로림만 서산연안에 대호염전, 해서염전, 통포염전, 금고염전, 기호염전 등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염전은 태양광이나 새우양식장으로 바뀌었고 해서염전만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웅도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큰말과 동편말 등이 모두 섬 남사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처음 만나는 마을이 동편마을이다. 그리고 폐교된 초등학교를 지나 웅도항에 이는 길에 만나는 마을이 큰말이다. 두 마을에 60여 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최근 잠수교 대신 해수가 밑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공사를 시작하면서 물때와 관계없이 섬을 드나들 수 있다. 2014년 개통한 웅도 랜드마크 유두교는 폭 3미터에 길이 300미터의 잠수교다. 조수간만의 차이로 다리가 잠기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통행이 제한되었다. 가로림만 해역이 조력발전 후보지에서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갯벌 복원을 위해 잠수교를 바닷물이 잘 통하는 다리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잠수교 이전에 물이 빠지면 사람이나 차들이 건너다녔다. 하지만 물때를 잘 알지 못하는 외지인들은 간혹 차가 잠기거나 파도에 휩쓸려 인명사고도 발생했다. 공사 중이지만 제방을 높게 쌓아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무시로 섬을 오갈 수 있다. 갯벌 복원과 해수 유통을 위해 잠수교를 교량으로 바꾸는 공사 중인 웅도. 바지락 캐고, 굴까서 먹고 살았지유 바닷물이 빠지면 섬 주변 연안은 온통 갯벌이다. 웅도 반송을 뒤로하고 둥둥바위를 지나자 갯벌 위로 길이 있다. 멀리 조도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바닷물이 빠질 때만 드러나는 길이다. 그 길이 자그마치 1.4킬로미터에 이른다. 서쪽으로는 우도, 소우도, 분점도가 있고, 동쪽으로는 오지리가 자리해 있다. 그 사이 오롯이 갯벌이다. 갯벌 위에 푸릇푸릇한 감태가 자란다. 가로림만은 감태 주산지로, 우리나라 채취량의 30% 정도에 이른다. 감태는 가시파래를 말한다. 이번 겨울에는 감태 들어오지 않았다. 날씨가 춥지 않고 비가 많이 온 탓이다. 늦겨울 봄을 앞두고 겨우 감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산은 일찍부터 감태김을 만들었다. 완도, 고흥, 무안 등 서남해 지역에서 감태 김치를 즐겨 먹었던 것과 다르다. 웅도갯벌 겨울 감태. 지금은 김보다 감태가 몇 곱이 비싸다. 굴까는 일과 함께 감태를 매는 일은 웅도 어민의 겨우살이이다. 마을 길을 걷다 보면 어리굴젓을 판매한다는 표지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 굴은 굴 날개가 검은색을 띠는 깜장굴이란다. 어민들이 붙인 서산과 태안의 굴 이름이다. 굴로 조차가 큰 서산과 태안 갯벌 바위에 붙어 자라는 작고 날개가 까만 굴이다. 향이 좋아 동치미 국물에 물회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어리굴젓을 담기도 했다. 늦게라도 감태가 들어와 고맙다며 감태 몇 망을 채취해 나오는 길에 만났다. 또 봄이면 소라 껍데기를 이용해 주꾸미를 잡고, 그물로 간재미를 잡는다. 가을이면 꽃게와 전어가 함께 올라온다. 모두 가로림만이 품고 갯벌이 내준 것들이다. 감태를 채취해 운반하는 어민. 어리굴젓, 조개젓, 박속낙지, 망둑어찜, 감태김 모두 무엇보다 건강한 갯벌 덕분이다.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가로림만 갯벌에서 확인된 생물종은 159종이다. 여기에 한 종을 더해야 할 것 같다. 맨손어업을 하는 어민이다. 그래서 가로림만 갯벌에서 160종 생물이 서식한다. 가로림만 지킴이, 점박이물범 가로림만은 항아리형 내만이다. 내만 밖은 섬이 없어 파도와 조류가 거침없이 만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입구는 좁고 만 안쪽은 너른 바다와 갯벌로 이루어져 조류 흐름이 거세다. 이를 이용한 조력발전소가 검토되기도 했다. 이를 백지화한 것은 외양으로는 점박이물범, 붉은발말똥게, 흰발농게 등 해양보호생물의 서식지 보전관리였다. 그 결과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해양생물보호구역은 해양 보호 구역 중 하나로 국가 또는 지자체에서 해양생태계 및 해양경관 등을 특별히 보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지정·관리한다. 가로림만은 흰발농게, 거머리말, 점박이물범 등 해양 생물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구역으로 판단했다. 여기에 정치·정책적 판단이 더해졌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개발 대신에검토하고 있는 것이 국가해양정원이다. 그 중심에 있는 섬이 웅도다. 웅도항이나 마을어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어김없이 해양생물보호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 표지판에는 가로림만 해역의 점박이물범 등 해양보호생물의 서식지·산란지 보호 및 수산생물·저서생물의 주요 서식지에 대한 체계적인 보전·관리가 지정 목적이라고 밝혔다. 국가해양정원 청사진에는 웅도에 해양문화예술섬과 예술창작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웅도를 걷다 웅도 속살을 보고 싶다면 걸어야 한다. 때로는 갯길을, 때로는 섬길을, 그리고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다 같이 돌자! 웅도 한 바퀴를 걸어야 한다. 모두 4개 코스로 나누어져 있지만, 모두 합해도 4㎞ 정도에 불과하다. 체험마을 입구가 출발점이다. 그곳에는 웅도 안내판이 있고, 주차장도 갖춰져 있다. 어촌체험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안내받을 수 있다. 2코스는 동편말에서 큰말을 지나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1.7㎞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데크길이다. 바닷물이 빠졌을 때는 가로림만 갯벌과 갯골을 볼 수 있는 길이다. 3코스는 선착장에서 웅도반송에 이르는 1.6㎞ 길이다. 이 길은 주민들이 이용했던 생활로로 아름답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봄이면 매화꽃은 물론 키 작은 봄까치꽃을 볼 수 있고,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벼를 비롯해 논과 밭 풍경과 갯벌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안에 만들어진 데크길과 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해안. 웅도반송은 두 마을 사이에 있는 교회에서 둥둥바위로 가는 길 중간 지점에 있다. 그 길과 만나는 산자락은 개간하고 해안과 만나는 곳은 제방을 쌓아 논과 밭을 일궜다. 웅도에서 가장 너른 논과 밭이 있는 곳이다. 좌우에 산골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벼농사를 짓고 있다. 웅도반송은 밑에서부터 여러 갈래 가지가 나와 400여년쯤 자란 모습이 쟁반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소원을 빌면 들어 준다고 한다. 4코스는 웅도반송에서 둥둥바위에 이르는 600m 정도 짧은 길이다. 둥둥바위는 바닷물이 드는 아침이면 물안개 오르고 구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웅도 앞 갯벌에 물이 들면 호수 같은 바다로 바뀐다. 하룻밤 머물며 노을을 감상하며 해안길을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둥둥바위.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30여년 동안 섬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문화 관련 정책연구를 한 후, 지금은 전남대학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어촌공동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바다인문학, 바닷마을인문학,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2024.03.31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 청춘과 사랑을 품고 있는 힙합 영화 힙합은 음악이지만 동시에 문화이고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리고 힙합의 이러한 면모를 이해하기에는 영상 콘텐츠가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이미 지난 세월 동안 많은 영화 및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 작품들은 힙합의 뿌리와 맞닿은 흑인역사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고 힙합에 잠재된 코드와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힙합 영화와 힙합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마치 교과서 같았다. 이번에는 한결 편안하고 부드럽게 볼 수 있는 작품을 골라봤다. 꼭 힙합과 연결 짓지 않더라도 청춘영화나 로맨스영화 그 자체로 감상할 수 있는 몇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 브라운슈가(Brown Sugar, 2002) 브라운슈가 포스터 (사진=기고자 제공) 영화 브라운슈가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련된 영상미, 깔끔한 전개, 하나같이 레전드 뿐인 힙합 아티스트들의 출연, 그리고 지금도 엘피로 소장하며 무척이나 아끼는 사운드트랙 등 너무나 할 이야기가 많다. 힙합을 향한 애정이나 힙합의 변모 과정을 남녀 관계와 절묘하게 겹쳐내며 표현한 것도, 힙합이 사람이나 생물인 마냥 대하고 감사해 하는 주인공들의 태도도 빼놓을 수 없다. 힙합을 자기 삶의 중요한 존재로 품고 있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너도 나처럼 참 할 말이 많지? 하면서. 주인공 시드니의 직업은 개인적으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시드니는 영화에서 XXL의 편집장으로 나온다. XXL은 실제로 존재하는 힙합 매거진이다. The Source와 함께 지난 수 십 년 간 힙합과 함께 해온 양대 잡지다. 시드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내 모습을 떠올렸다. 힙합저널리스트라는 직함을 스스로 만들어 활동해온 지난날이 나도 모르게 되감겨졌다.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일단 힙합 팬들에게는 당연히 마음 편히 권할 수 있다. 하지만 힙합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따스하고 유쾌한 로맨틱코미디 작품으로서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 그런 영화다. ◆ 도프(Dope, 2015) 2002년에 개봉했던 영화 브라운슈가는 여전히 많은 힙합 팬의 가슴에 남아 있는 작품이다. 힙합을 매개로 남녀 간의 우정과 사랑, 나아가 삶을 유쾌하고 따스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5년 여름에 개봉한 도프는 브라운슈가의 감독 릭파무이와(Rick Famuyiwa)의 새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가질 가치가 있다. 결론적으로 도프는 최근 몇 년 간 쏟아진 힙합/흑인음악 관련 모든 작품을 통틀어 청춘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젊은 힙합 세대를 위한 성장/코미디 영화인 도프는 마약상과 갱스터가 우글대는 잉글우드의 게토에서 험난한 유년기를 보내는 중이지만 하버드 대학 입학의 꿈을 지닌 괴짜 말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체적으로 젊고 재치 있으며, 올드스쿨에 대한 존중도 잊지 않는다. 퍼렐(Pharrell) 등이 제작에 참여했고 에이셉록키(A$AP Rocky)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선댄스 영화제 수상작이기도 하다. 도프(왼쪽)와 러브존스 포스터 (사진=기고자 제공) ◆ 러브존스(Love Jones, 1997) 러브존스는 테오도르위처(Theodore Witcher) 감독의 1997년 작품이다. 재즈클럽에서 시를 읽어주는 남자 다리우스는 어느 날 우연히 사진가 니나를 만나게 되고, 다리우스는 니나를 위한 시를 선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상처가 많은 둘은 이내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둘은 만남과 이별의 과정 속에서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점점 얻어간다. 이 영화는 힙합이나 알앤비를 모르는 이라도 로맨스 장르를 좋아한다면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흑인음악을 좋아한다면 더 깊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그 자체로서 1990년대 힙합/알앤비의 명작이다. 맥스웰(Maxwell), 그루브띠오리(Groove Theory) 등 당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또한 이 영화는 스포큰워드(spoken word)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포큰워드란 미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하나의 발화방식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시 낭독과 랩핑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형태다. 그리고 영화의 남녀 주인공이 스포큰워드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시 작품 역시 당대의 미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2024.03.30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 자기파괴를 일삼는 인더스트리얼 록의 생존자이자 구원자 차갑고 폭력적인 기계 노이즈로 산업화가 불러온 음울한 회색의 풍경을 구현해낸 음악을 소위 인더스트리얼 뮤직이라 칭했다. 카바레 볼테르, 아인스튀어첸데 노이바우텐 등의 위대한 선구자들은 온갖 기계음을 음악화해내는 데에 성공했고 고독하면서 파괴적인 소리들로 앨범을 채웠다. 이후 미니스트리, KMFDM을 포함한 몇몇 밴드들이 인더스트리얼에 록/메탈의 요소를 결합시키면서 인더스트리얼 록이 완성된다. 이는 보다 거칠고 타협이 없으며 격렬한 색깔을 지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메탈 팬들이 대거 유입됐다. 그리고 이 지하에 음습하게 자리잡고 있던 장르는 나인 인치 네일스로 인해 주류로 대대적으로 급부상한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트렌트 레즈너가 중심에 있는 나인 인치 네일스는 혼돈과 파괴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한편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선율 또한 섞어내면서 어디에도 없는 소리들의 조합으로 각광받았다. 나인 인치 네일스가 활동을 시작했던 80년대 후반의 경우 보통 기계나 신시사이저에 의해 프로그램 된 소리는 딱딱하고 감정이 없는 듯 여겨졌지만 트렌트 레즈너가 손을 대는 순간 그 기계소리들은 압도적인 생동감을 얻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들은 밴드의 리더 트렌트 레즈너의 다양한 감정과 직결되어 있고 이는 청취자의 심장에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다. 2018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출연한 나인 인치 네일스. (사진=인천펜타포트 음악축제 누리집) 두 번에 걸친 빌보드 앨범차트 정상, 멀티 플래티넘 앨범 3개를 갖춘 나인 인치 네일스는 어둡고 친밀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종말론적인 비전을 그려내며 두터운 팬 층을 쌓아갔다. 미니스트리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디페쉬 모드, 게리 뉴먼과 같은 뉴 웨이브의 영향이 다분했던 나인 인치 네일스는 1989년 데뷔 앨범 Pretty Hate Machine으로 첫 등장한다. 참신하고 정밀한 사운드를 지닌 앨범은 단기간에 폭발적인 판매고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약 2년에 걸쳐 빌보드 차트에 머물면서 결과적으로는 1백만장이 넘는 세일즈를 기록했다. 이후 대형 페스티벌과 건즈 앤 로지즈의 투어에 함께 하면서 서서히 그 규모를 키워갔다. 1992년 내놓은 Broken EP는 흔들리지 않는 음향 공세를 바탕으로 듣는 이들을 위협했다. 특히 Wish 같은 곡의 경우 마치 컴퓨터가 모터헤드의 Ace of Spades를 연주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평가를 얻었고 결국 곡은 1993년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메탈 노래 부문을 수상하게 된다. 이후에는 Broken의 리믹스 앨범 Fixed를 공개하기도 했는데 후에 정규 앨범 바로 다음에 리믹스 앨범을 내는 것이 나인 인치 네일스의 어떤 전통이 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4년 3월, 인더스트리얼 록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걸작 The Downward Spiral로 인해 완벽하게 정의됐다. 이전 작 Broken이 외부로 향한 공격성이 두드러졌다면 The Downward Spiral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공격성을 작품으로 승화시켜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불길한 기계음과 위압적인 비트, 신경질적인 전자음과 디스토션 걸린 기타 사이 트렌트 레즈너는 목이 부서지기 직전까지 고통스러운 절규와 온화한 체념을 섞어냈다. 겉으로는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양극단의 요소가 서로 엉켜져 하나의 비범한 유기체로써 완성됐다. 특히 후에 조니 캐쉬가 커버해서 다시금 인기를 얻은 Hurt의 경우 트렌트 레즈너의 작곡가로서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가 이 곡에서 표현해낸 가혹함과 아름다움 사이의 훌륭한 균형은 나인 인치 네일스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방향이기도 하다. 2CD 분량의 야심을 보여줬던 The Fragile, 보다 밀도 있는 악몽을 선사하고 있는 With Teeth, 그리고 여전히 음산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Year Zero와 Ghosts 연작 시리즈 등을 꾸준히 공개했다. Ghosts IV 중 34의 경우 릴 나스 엑스의 히트곡 Old Town Road에 샘플링되면서 뒤늦게 화제를 모았다. 2007년도에는 첫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공연 도중 화면 뒤에 블루스크린 오류가 뜬 것이 화제가 되어 사진이 돌기도 했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2009년 2월 공식 홈페이지에서 잡혀 있는 투어 일정을 마지막으로 밴드의 활동을 종료할 것을 발표했다. 투어 이후에는 그간 사용해온 수백개의 장비들을 모두 경매 사이트에서 판매하면서 팬들을 아쉽게 했다. 하지만 4년 후인 2013년 나인 인치 네일스의 활동이 재개되고 5년 만의 새 앨범 Hesitation Marks를 공개하면서 돌아오게 된다. 트렌트 레즈너는 영화음악 작업 또한 성공적으로 진행해왔다. 90년대 스테디 셀러 사운드트랙이었던 올리버 스톤의 킬러와 로스트 하이웨이를 작업했던 그는 2000년대 이후부터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아티쿠스 로스와 좀 더 본격적으로 영화음악 작업에 돌입한다. 특히 데이빗 핀처 감독과의 작업이 많은 편인데, 세븐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Closer가 딱 한 소절 삽입된 이후 소셜 네트워크와 나를 찾아줘, 맹크, 킬러 등을 다뤄왔다. 결국 소셜 네트워크와 애니메이션 소울을 통해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하면서 트렌트 레즈너의 영화음악 작업들이 본격적으로 인정받는다. 트렌트 레즈너는 파괴적인 음악과는 달리 영리한 행보를 이어 나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앨범에 닥터 드레부터 애드리언 벨류, 피노 팔라디노 등을 참여시킨 것을 보면 확실히 어떤 감각 같은 것이 감지된다. 실제로 디지털 음원 시장의 미래를 일찌감치 내다봤던 그는 비츠 뮤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비츠가 애플에 인수되면서 졸지에 애플의 경영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회사를 그만 두면서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다. 트렌트 레즈너, 그리고 그의 나인 인치 네일스는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매회 진취적인 실험을 통해 구축해낸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인 음악적 성과를 완수해냈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디스코그라피 역사는 신시사이저와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전과 크게 무관하지 않다. 80년대 후반 일부 부유한 이들이나 기술자들 만이 점유하고 있던 컴퓨터는 시간이 흘러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 널리 보급되어갔고 나인 인치 네일스의 기계음들 또한 자연스럽게 친숙한 것이 됐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인더스트리얼 록이라는 장르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런 용어의 틀 자체가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국 그런 업적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면서 202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다. 작업물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나인 인치 네일스는 너바나와는 다른 의미로 90년대 병을 앓고 있는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적인 기계음, 희망이 없고 적의와 고통으로 가득 찬 어둠의 소리로 구성된 그의 앨범들이 대량으로 팔려 나가는 것은 정말로 그 시대가 그랬던 것이라 거나 혹은 트렌트 레즈너가 그만큼 정교하게 두루 작동하는 결과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끔 한다. 구조를 쌓아 올려내며 구축하는 미학과 철저히 파괴하는 미학을 동시에 양립시킨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에는 가끔씩 너무도 인간적인 갈망 같은 것이 엿보이곤 한다. 이처럼 모순으로 점철된 이 음악들은 기이한 방식으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연약한 인간문명의 표피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댄다. ☞ 추천 음반 ◆ The Downward Spiral (1994 / Nothing, Interscope) 90년대 미국 음악 씬 전반을 대표하는 걸작. 빌보드 앨범 차트 첫 등장 2위에 랭크 됐고 이 앨범의 후폭풍으로 인해 1997년 타임지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의 미국인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그가 근근이 버텨내고 있던 정신의 무게, 그리고 엄청난 에너지를 동시에 체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수록 곡들은 만들어진 어둠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어둠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었다. ◆ Broken (1992 / Nothing, TVT, Interscope) 나인 인치 네일스의 긴 경력 중 가장 격렬함이 드러나는 작품으로 디지털과 메탈 사운드의 가장 이상적인 균형을 보여준다. CD를 플레이어에 넣으면 트랙이 99번까지 잡히는데, 98번과 99번 트랙에는 각각 아담 앤더 앤츠와 피그페이스의 커버 곡이 보너스로 수록되어 있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2024.03.29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