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군인들의 값진 생명으로 지켜낸 땅, 양구. 이곳은 수많은 전적비와 북한의 남침용 제4땅굴, 육안으로 금강산을 볼 수 있는 을지전망대, 전쟁기념관 등이 있어 안보관광지라는 인식이 강했다. ‘군인 반 민간인 반’이라는 말이 우스개 소리가 아닐 만큼 군부대도 많다. 그런 선입견 탓인지 양구를 생태여행의 목적지로 잡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양구만큼 생태여행에 좋은 장소도 없는데 말이다.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국토의 사방 네 끝점을 기준으로 그린 사각형의 중심이 바로 양구다. 울창한 산림으로 공해가 없고 양구 읍내를 제외하면 야간조명도 거의 없어 별을 관찰하기에 좋다. 굳이 국토정중앙천문대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맑은 날 밤이면 머리 위로 쏟아질 듯 흩뿌려진 별들을 질리도록 감상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한국전쟁 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덕에 생태계가 제대로 복원된 해발 1310미터의 ‘대암산’, 원시림과 계곡, 폭포가 어우러진 ‘광치 자연휴양림’, 163만 제곱미터 규모의 습지로 수질개선과 생태계 복원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파로호’, 그리고 람사습지로 등록된 ’용늪’까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다양한 생태여행지들이 산재해 있다. 이렇게 풍성한 생태여행지 중에서 ‘두타연’은 단연 백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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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타연 폭포 |
양구 사람들이 여름철 피서지로 즐겨 찾는 곳은 수입천이다. 휴전선 인근인 양구군 수입면 청송령에서 발원한 이 물은 흘러 흘러 파로호와 하나가 된다. 두타연은 이 수입천의 지류에 위치해 있다. 허가 없이는 민간인이 드나들 수 없는 통제구역 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그곳에 ‘절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자태로 자리해 있다. 두타연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2004년. 휴전 50여 년 만의 일이다. 지뢰매설 지역이라 두타연까지 가는 통행로와 두타연 주변의 생태탐방로를 제외하면 여전히 출입금지다. 사전에 출입허가를 받아야 하고, 하루 2번, 어느 정도의 인원이 모였을 때 문화해설사와 동행해 입장할 수 있다. 맘 먹으면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다른 관광지에 비해 절차상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이런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는 가치가 그곳엔 있었다.
두타연 관광의 시작점은 ‘두타연 갤러리’다. 백석전투기념비 앞, 예전 민간인 통제선이 시작되던 지점의 초소를 리모델링 해 2012년 5월, 문을 열었다. 이곳은 ‘소지섭길 51킬로미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배우 소지섭이 출연한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가 바로 양구였고, 그 인연으로 그는 비무장지대를 명소화 하는 사업의 일환인 포토 에세이집 <소지섭의 길>을 출간했다. 그리고 양구 DMZ 인근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트레일도 생겨났다. 한류스타와 지역 마케팅의 랑데부가 가져올 시너지에 지역의 기대감이 크다.
갤러리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차를 타고 두타연으로 향했다. 군부대 검문소를 지나 5분 가량 더 가야 두타연 앞 광장에 도착한다.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을 달리는 동안, 내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이 있었다. 우거진 숲 앞으로 쳐진 가시철망과 지뢰경고 표지판. 이것은 개발만이 능사라 생각하는 이들의 손길로부터 자연을 보호하는 가드레일 같이 느껴졌다.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 위에 탄생한 ‘DMZ’가 이제는 원형 그대로의 자연을 지키는 주역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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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슨 포탄과 깨어진 철모 등 전쟁의 상흔들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
“제가 원래 할머니인데요, 양구에 와서 이런 모습이에요.”
두타연을 소개하던 문화해설사의 한마디에 함께 여행하던 이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양구를 여행하는 내내 눈에 들어왔던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슬로건이 생각나서였다. 1990년대 초반, 양구로 시집을 오셨다는 그 문화해설사는 놀랍게도 일본인이었다. 체감 나이 50대 초반의 그분은 일본어 억양의 약간 어눌한 우리말로 두타연 곳곳을 소개해 주었다. ‘두타’의 뜻이 ‘삶의 걱정을 떨치고 욕심을 버린다’라는 것도… 말 뜻대로라면 두타연은 스트레스를 씻어내는 연못인 셈이다. 흥미로웠다. 두타연으로 오는 길에 ‘적에게 전율을 안기겠다’는 다짐을 적은 군부대 대문을 수 없이 지났다. 이곳이 365일 팽팽한 긴장상태가 유지되는 최전방 지역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풍경 속에서도 ‘스트레스가 없다면 뭐 딱히 늙을 일도 없겠네!’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들었었다. 세상 시름을 잊을 만큼, 양구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 중인 지역임을 모두 잊어버릴 만큼 이곳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병풍을 친 듯 펼쳐진 암벽 위에서 10미터 아래 연못으로 맑은 물이 힘차게 쏟아져 내린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폭포의 물줄기가 한반도 모양을 그린다고 한다. 가물어도 마르는 일이 없다는 폭포 아래 너른 연못은 그 깊이가 20미터나 된다. 오른쪽 암벽에는 천년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자그마한 동굴도 있다. 생태탐방로를 따라 두타연 폭포의 상류와 하류를 크게 한 바퀴 돌아보았다. 가시철망과 지뢰경고 표지판이 양쪽으로 도열한 탐방로는 열목어가 사는 냇가를 지나기도 하고, 울창한 숲을 끼고 돌기도 한다. 부서진 집터, 녹슨 포탄과 깨어진 철모, 묻힌 이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나무십자가 등 전쟁의 상흔들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끌어안은 푸르름만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 맑은 물과 푸르른 숲이 어우러진 이곳이 있음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분단의 상징에서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거듭난 이 땅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강원도는 DMZ 접경지역을 유네스코 지리공원(Geo Park)으로 조성하기 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을 잇는 거대한 DMZ는 원형에 가까운 생태계를 지닌 지역으로, 그 접경에 자리한 민간인 통제구역은 관광자원으로 활용가치가 높다. 유네스코 지리공원 조성은 민통선 내의 지형, 지질 유산과 연계해 생태, 역사, 문화적 유산을 연구, 교육, 보급하는 작업을 통해 이뤄진다. 또한, 관광 활성화를 통해 지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 그 소식이 반갑다. 다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공원화가 진행됐으면 하는 것이 노파심 같은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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