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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힙합의 실질적 시작을 알리다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⑨] 드렁큰 타이거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2019.01.25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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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0년대 중후반,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가 연이어 해체한 후 상황은 묘하게 전개됐다.

김진표, 업타운, 지누션 등이 활약하긴 했지만 가요계의 상황은 기대보다 실망스러웠다. 노래 못하는 멤버가 어쩔 수 없이 랩을 담당하고, 랩이 댄스뮤직의 양념처럼 소비되는 상황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때 등장한 그룹이 있었으니, 바로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였다.

지난해 11월 정규 10집 <X : Rebirth of Tiger JK>를 발표한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가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해 11월 정규 10집 <X : Rebirth of Tiger JK>를 발표한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가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드렁큰 타이거의 등장은 곧 ‘진짜’의 등장이었다.

물론 그 전에 등장한 이들이 모두 가짜란 말은 아니다. 그러나 드렁큰 타이거는 앞서 등장한 이들을 모두 가짜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고, 동시에 드렁큰 타이거만이 진짜라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건 뭔가 다른데?”, “이게 바로 진짜 힙합인가?” 같은 느낌. 카테고리가 달라지는 느낌말이다.

‘드렁큰 타이거 진짜힙합 설’은 당시 몇 가지 맥락에 기원하고 있었다.

일단 그들은 미국에서 온 교포였다. 어릴 적 이민을 떠나 미국에서 살아온 그들은 사고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 면에서 아무래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다.

힙합의 도약과 부흥을 동시대에 미국에서 경험한 그들은 1999년 한국에 와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한국에 비로소 ‘진짜 힙합’이 상륙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진짜힙합이 무엇인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한국이 생각하는 진짜힙합이란 ‘본토힙합의 사운드를 최대한 똑같이 재현한 음악’이었다.

미국힙합 사운드와 얼마나 닮았는지가 관건이었다는 이야기다. 굳이 사운드에 국한한 이유는, 당시에는 사운드 외 힙합의 다른 면모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인지조차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미국힙합이었다. 완전한 미국힙합 사운드였다.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는 힙합그룹 업타운의 멤버 윤미래와 2007년에 결혼했다. 2012년 아동학대예방의 날 및 아동학대예방주간 기념행사에 참석한 타이거 JK 부부.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는 힙합그룹 업타운의 멤버 윤미래와 2007년에 결혼했다. 2012년 아동학대예방의 날 및 아동학대예방주간 기념행사에 참석한 타이거 JK 부부.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하지만 노래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가 미국인이 미국에서 발표한 노래였거나, 미국인이 한국에서 발표한 노래였거나, 한국인이 미국에서 발표한 노래였다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발표한 노래라는 사실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 관한 논의의 핵심이다. 미국에서 ‘오리지널’을 습득한 ‘한국인’이 ‘한국’에 돌아와 완벽한 ‘미국힙합’으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것이 바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가 완성한 신화다.

이런 상황이라면, ‘영어 랩’을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것 자체가 미덕이자 비교우위가 된다. 영어 랩의 분량이 많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니 드렁큰 타이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꼽는 것이 있다.

바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후반부에 등장하는 타이거 JK의 영어 랩이다. 당시 사람들은 게임 만렙 찍거나 운동종목 신기록 세우듯 영어 속사포 랩 부분을 따라하려고 애썼다. 물론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나는 영어 랩의 발음을 가사집에 한글로 써놓고 외웠다.

그들의 영어 랩은 센세이션 자체였다. 노래 안에서 영어 랩을 그렇게 많이 하는 한국 가수도 없었고, 영어 랩을 그렇게 잘하는 한국 가수도 없었다. 게다가 드렁큰 타이거는 데뷔 앨범 전체를 당시로서는 생경한 미국힙합으로 가득 채웠다.

어떠한 타협도 없었다. 오히려 한국어 벌스 몇 개가 없었다면 한국 가수의 앨범으로 보기도 어려운 작품이었다. 한국 대중에게는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곧 진짜힙합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2013년에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오른쪽)는 아내 윤미래(가운데), 래퍼 비지와 함께 힙합 그룹 MFBTY(My Fan Better Than Yours)를 결성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3년에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오른쪽)는 아내 윤미래(가운데), 래퍼 비지와 함께 힙합 그룹 MFBTY(My Fan Better Than Yours)를 결성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드렁큰 타이거의 호전적인 태도 역시 스스로의 신화에 기여했다. 따로 예를 들 필요없이 이 노래의 제목과 가사 자체가 증거다.

드렁큰 타이거는 한국의 ‘가짜들’에게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고 준엄하게 꾸짖었고 이 허장성세를 실력으로 증명해냈다. 실제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라는 제목은 상상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이는 그 후 등장한 각종 힙합 콘텐츠의 제목 상당수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였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힙합에 별 관심은 없지만 힙합 콘텐츠의 제목을 지어야 하는 입장에서, 또 사람들이 가장 친근하게 느낄 만한 제목을 지어야 하는 입장에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장 적절한 제목이었던 것이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드렁큰 타이거가 한국힙합에 던진 충격파이자 각성제였다. 1999년은 한국힙합으로서는 의미가 큰 해다. 한국힙합의 실질적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움직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드렁큰 타이거가 해냈다거나 관여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역사의 중심에 드렁큰 타이거가 존재했음은 분명하다.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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