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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을 보고

2018.01.08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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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쯤에서 눈물을 훔쳤다. 지금은 없어진 미도파 백화점이 보이고 시위 군중을 향해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쏘아대는 장면이다. 나도 아내도 그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1987년 6월 10일이다. ‘6·10 민주항쟁’의 날이다.

아내는 그날 8개월 된 딸을 앞포대기에 안고 남대문시장에 갔다. 그러다 한 치 앞도 분간 안 되는 최루탄 연기와 양측이 쫓고 쫓기는 아비규환 속에 갇혀버렸다. 더듬더듬 지하상가 입구를 찾아가면서 몇 번이나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갓난아이는 손톱만한 작은 눈과 코에서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행여나 혼절할까봐, 품에서 떨어뜨릴까봐, 있는 힘을 다해 새끼를 부둥켜 안고 매캐한 최루탄 가스를 피할 곳을 찾아 헤매던 에미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그때 근처에 있었다. 시위대가 아니었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였다. 나도 최루탄을 엄청 먹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애꿎은 그 사람만 나무랬다. 분노가 치밀었다. 

그 갓난이는 이제 서른을 넘겨 사회인이 됐다. 독재와 폭력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신문사를 퇴직했다. 우리 부부만이 아닐 것이다. 누구는 이 영화를 보며 가슴이 뿌듯하거나, 울컥하거나, 명치 언저리가 저려오거나, 부끄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우리 모두의 집단기억 속에 묻혀있던 30년 전 그 날의 봉인을 해제시켰다.

▶영화 ‘1987’은 웰메이드 영화라고 평가받는다. 연희와 이한열의 러브라인만 빼고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줄거리를 이끄는 세 축인 검사와 경찰, 기자가 실제 이름으로 나오고 당시 상황도 알려진 대로, 보도된 대로 나온다. 이한열의 타이거 운동화 한 짝도 실제로 이한열 기념관에 있는 것이다.
영화는 샛길로 나가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정조준한다. 팩트를 훼손하지 않고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돋보이는 주연을 세우지 않고 등장인물들을 제 각각의 신념과 애국심, 인간적 고뇌를 지닌 비슷한 비중으로 그린다. 그래서 다른 시대극에 비해 정치적 논란이 덜한 편이다. 장준환 감독은 그 점에서 영악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유일하게 창작된 허구의 인물 ‘연희’라고들 말한다. 공감한다. 역사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 시절 우리 대다수는 연희였으니까.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그런 날은 안 와요”라는 연희의 대사는 우리가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보통사람들인 연희가 (절반의 승리라고 하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었고 그날은 왔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원제목은 ‘보통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오늘 연희 또래의 자녀를 데리고 온 50대 60대 중장년층 관객이 바로 그 보통사람들이다. 대학생이었거나, 넥타이부대였거나, 경적을 울린 택시운전사였거나, 시위대학생을 숨겨준 신발가게 아줌마였다. 그해 겨울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씨가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정권의 슬로건으로 내걸은 건 참으로 아이러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극 중 대공수사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씨,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씨, 문 대통령, 장준환 감독.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 6월 민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한 뒤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극 중 대공수사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씨,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씨, 문 대통령, 장준환 감독.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나는 영화에 등장한 실명의 기자들을 다 안다. 같은 시기, 같은 사회부 기자로서 동료이자 경쟁자였다. 박종철 군 사망을 처음으로 보도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의 특종 경위는 영화에 묘사된 그대로다. 본인이 여러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힌 바 있다. 다만 공안부장이 부하인 공안과장에게 기사를 언론에 흘리라고 한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게 정석이다.

영화에서 가장 눈물샘을 자극하는 부분은 박종철 군의 아버지가 임진강에서 아들의 뼛가루를 뿌리면서 허공을 향해 독백하는 장면이다.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유명한 이 대사는 지어낸 게 아니다. 박 군이 숨진 3일 후인 1월 17일 동아일보 사회면의 기자 현장 코너인 ‘창’에 그대로 나온다. 현장에 따라간 황열헌 기자가(영화에는 윤상삼 기자로 그려진다) 쓴 기사다. 이 기사는 당시 자식 가진 대한민국 어버이들의 심금을 뒤흔들었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김중배 논설위원의 그 유명한 칼럼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를 게재했는데, 나는 이 칼럼과 반응이 영화에 묘사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죽음을 응시해 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끝내 지켜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아주기 바란다”로 시작하는 그 칼럼은 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장엄한 ‘조사’이자, 폭압적 공포정치에 숨죽인 국민의 양심을 깨운 시대의 ‘격문’이었다. 그날 동아일보 편집국에는 울분을 토하며 언론의 용기를 격려하는 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작년에 천만 관객을 넘긴 ‘택시운전사’가 오버랩됐다. 두 영화 모두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개봉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두 영화는 7년의 시차를 둔 언론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두환 정권의 서막 격인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택시운전사’에서 국내 언론은 실제로 무력하고 굴종적이었다. 광주에 잠입한 외신기자가 그 역할을 ‘대신’ 해주었을 뿐이다. 그 정권의 말기인 ‘1987’에서의 언론은 좀 달랐다. 정권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펜을 든 언론들이 있었다.

하지만 1987년의 언론이 다 용기가 있던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첫 보도가 나간 후에도 권력이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판세가 뒤집힐 때까지 보도지침 사이에서 눈치를 본 언론이 더 많았다. 특히 방송은 정부가 관련자를 사법처리할 때까지 단신으로 처리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고 정부의 발표만을 전했다.

4개월이 지난 그해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 은폐 조작됐다며 다른 고문 경관 이름을 적시해 발표했을 때도 신문은 1~2단으로밖에 보도하지 않았거나 아예 취급하지 않았다.

정부가 그걸 시인하고, 권력 핵심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하고, 6월에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고 민주항쟁이 전국적으로 불이 붙으면서 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민심의 편에 선 듯했다. 권력의 힘이 기울었을 때에야 비로소 권력을 물어뜯었다. 영화 ‘1987’은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의 특종(첫 보도는 사회면 2단에 불과했다)과, 고문치사 가능성을 제기하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만을 부각했다.

윤 기자는 1982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99년 도쿄특파원을 마치고 돌아와 42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떴다. 기자가 사건취재를 위해 무리한 업무와 과음을 계속하다 간암으로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행정법원의 판결을 후배기자들에게 ‘선물’로 남겨주고 떠났다.

▶포털의 영화평에 이런 말들이 써있는 걸 봤다. “그때 기자들은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그렇게 애썼는데, 지금 기레기들은 왜 이 모양이냐.”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가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당했을 때 “기레기는 맞아도 싸다”라는 적잖은 누리꾼의 반응과 비슷한 정서다.
언론에 대한 여전한 불신의 벽을 실감한다. ‘박종철’과 그로부터 정확히 30년 후의 ‘최순실’은 전개과정이 흡사하다. 언론이 폭로하고 광장이 들끓어대면 정권은 국민의 열망을 수용하거나(6·29선언) 교체됐다. 다만 후자는 모든 언론이 자유롭고 치열하게 취재 경쟁을 벌이며(물론 몇 개 언론사가 더 돋보이긴 했지만) 국정농단을 하나씩 밝혀냈다는 점에서 전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언론은 흔히 개에 비유된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개띠 해다. 7년간의 전두환 독재정권 마지막 해인 1987년 민주항쟁 이전 언론은 감히 말하건대 ‘파블로프의 개’였고, 정권의 ‘랩독’(lap dog, 애완견)이었고, 짖지 않는 ‘슬리핑독’(sleeping dog)이었다.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언론자유가 보장된 지금의 언론은 어떤 개에 비유될 수 있을까. 권력을 감시하는 ‘워치독’(watchdog)이긴 하지만, 자기 집과 자기 진영만 지키려는 ‘가드독’(guard dog, 경비견)이 뒤섞인 얼굴이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 언론과 기자는 대체로 권력과 재벌과 시청률의 노예처럼 묘사됐다. 늘 욕을 먹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1987’이 반갑긴 했다. 극장을 나서면서 딸이 말했다. “평생 기자를 한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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