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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가을, 섬 곁 노을은 외롭지 않다

[김준의 섬섬옥수] 옹진군 덕적면 울도

2017.10.18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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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 여행을 할 때 잠잘 곳보다 큰 걱정은 끼니다. 캠핑이 목적이라면 모르지만, 게다가 그 섬의 맛을 보고 싶다면 더욱 그렇다. 넉살좋게 아무 집에나 불쑥 들어가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밥 좀 얻어먹을 수 있나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옛날에는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섬을 찾아다닐 때는 젊기도 했지만 주민들도 외지인을 경계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섬주민들이 그렇게 바뀐 것도 따지고 보면 순전히 ‘육지것’들 책임이 크다. 그래서 나도 섬에 갈 때면 그런 ‘육지것’ 중 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도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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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71㎞, 덕적도에서 23㎞ 남서쪽에 있는 섬이다. 서해5도를 제외하고 인천하면 뱃길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다. 하지만 태안군 만대항까지는 26㎞에 불과하다. 울도에 가려면 덕적도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야 하고, 백패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어 주말이나 연휴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배표도 구하기 힘들다.

당산 아래 큰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30여 가구에 한 때 200여 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4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당산 아래 큰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30여 가구에 한 때 200여 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4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갯벌이 발달해 썰물에는 선착장에 배를 접안할 수 없다. 마을에서 어른 걸음으로도 20여 분은 걸어야 배를 탈 수 있다.
갯벌이 발달해 썰물에는 선착장에 배를 접안할 수 없다. 마을에서 어른 걸음으로도 20여 분은 걸어야 배를 탈 수 있다.

파도막이섬, 울도

덕적도에서 문갑도, 굴업도, 백야도, 지도, 울도를 순항하는 배를 타야 한다. 덕적도는 말 그대로 ‘바다역’ 기능을 하는 셈이다. 배가 도착하자 트럭과 전동차와 오토바이가 마중을 나왔다. 파출소장도 자주 나와서 직접 여행객과 주민들을 마을까지 실어다 주기도 한다. 울도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가는 길은 줄잡아 몇 킬로미터는 될 것 같다. 갯벌이 발달한 탓에 썰물에도 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곳에 선착장을 만들다보니 그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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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남동에서 북서로 덕적도를 향해 활처럼 굽어 있다. 선착장 안쪽 만입 부분 ‘당산’ 아래 마을이 자리해 있다. 1960년에 37가구 206명이 살았다. 지금도 가구 수는 차이가 없지만 상시 거주인구는 40여 명에 미치지 못한다. 대부분 주민들은 큰마을에 거주하며, 몇 가구가 거주했던 작은마을은 비어 있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이며 산은 섬 북서쪽으로 발달해 있다.

선창에서 마을을 바다 보면 왼쪽으로 펼쳐진 숲과 산이 북망산이요, 오른쪽으로 이어진 산은 ‘180봉’이라 부른다. 마을 뒤 당산(220m) 정상에 등대가 있다. 마치 두 팔을 벌려 큰 섬 덕적도는 물론 크고 작은 섬들을 안고 있는 형국이다. 덕적도가 바다역이라면 울도는 ‘종착역’이다. 그래서 생긴 말일까. 울면서 들어왔다가 울고 나가는 섬이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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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사람들이 생선을 사려고 섬에 들어올 때 무서운 파도에 울고, 나갈 때는 섬사람들의 착하고 순박한 마음에 정들어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울었단다.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걱정이 되어 아내가 울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다른 유래로는 숲이 우거져 있는 섬이라 울(鬱)도(島)라고 했다고 한다. 또 섬이 울타리처럼 덕적군도로 들어오는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섬이라 울타리섬이 울도가 되었다는 말도 전해온다. 실제로 울도를 중심으로 백아도, 지도, 선갑도와 주변에 작은 섬들은 덕적도로 들어오는 파도를 막는 ‘파도막이섬’역할을 톡톡하게 하고 있다. 덕적도가 오롯이 섬살이를 할 수 있는 배후에는 이렇게 작은 섬들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울도에서 본 덕적군도
울도에서 본 덕적군도

덕적도에서 본 덕적군도.
덕적도에서 본 덕적군도.

울도 당산에서 본 덕적군도의 모습은 덕적도 비조봉에서 본 덕적군도 모습과 사뭇 다르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른 것은 그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울도는 덕적군도를 감싸는 파도막이 섬의 중심이고 덕적도는 그 덕에 편안하게 섬살이를 한다

덕적어민 먹고 살았던 바다, 울도어장

강할머 집에서 나오다 뒤뜰에 산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는 자연산 홍합을 발견했다. 지금은 홍합도 귀한 산물이지만 일제강점기에만 해도 민어 주산지였으니 보이기나 했을까.

지금은 우럭과 놀래미도 감사하고 있다. 봄이면 인근 바다에 꽃게 잡는 배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거주할 만큼 어장이 좋았다. 당시 울도어장은 청진어장과 함께 일제가 지정한 어장으로 꼽혔다. 특히 젓새우가 많이 잡혀 파시가 형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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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모두 큰 마을에 살지만, 어장이 좋을 때는 작은 마을에도 사람이 살았고, 젓새우잡이 파시가 있던 때는 그곳에 술집도 있었다.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덕적팔경 하나로 울도어화가 꼽히는 것도 내력이 있는 것이다.

덕적근해 황금어장을 개척한 이도 울도주민이었다. 덕분에 이곳에서 새우를 잡아 백아, 장고, 지도 등지에서 말려 팔려나가기도 했다.

굴업도에 민어파시가 설 수 있었던 것도, 연평바다에 조기가 찾았던 것도 사실은 이곳에 새우어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래와 군도가 만들어낸 섬그늘과 새우 서식처가 사라지면서 조기도 민어도 사라지고 새우도 꽃게도 위기에 처해 있다. 그 덕에 말없는 갯바위를 지키던 홍합만 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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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를 잡는 어선과 그물, 울도어장은 청진어장과 함께 일제강점기 2대어장으로 꼽혔다. 덕적팔경에 울도어화는 그냥 생긴 경치가 아니다. 지금도 낚시꾼들이 손맛을 즐기기 위해 찾는다.
꽃게를 잡는 어선과 그물, 울도어장은 청진어장과 함께 일제강점기 2대어장으로 꼽혔다. 덕적팔경에 울도어화는 그냥 생긴 경치가 아니다. 지금도 낚시꾼들이 손맛을 즐기기 위해 찾는다.

보물선, 고승호의 비밀

일제시대 울도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보물선’ 고승호 이야기이다. 고승호는 영국국적의 상선으로 청이 군대를 조선으로 수송하기 위해 대여한 선박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일본과 청국은 군인을 파병한다. 이때 청국은 조선정부 지원요청으로 함대와 병력을 아산만에 주둔했다.

이를 눈치 챈 일본이 미리 아산만으로 들어오는 풍도 근처에 전함과 수뢰정을 배치해 기습 공격하여 청 함정을 침몰시켰다. 이어 2차 병력을 싣고 아산으로 향하던 고승호도 어뢰를 맞고 울도 근처 바다에 침몰했다. 이 전투가 ‘풍도해전’이며 ‘청일전쟁’의 시작이다. 고승호에 보물이 실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제시대에 몇 차례 인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최근까지 몇 차례 발굴을 시도했다. 그 결과 은괴, 중국에서 유통되던 멕시코 은화, 술잔, 무기류, 유골 등 발견되기도 했다. < 동아일보>1935년 2월 24일자 ‘해저에 든 3천만 원 은괴’ 관련 기사를 보자.

“이 병선은 ‘멕시코’ 은과 마제은을 합하여 5돈(현 시가 3천만원)과 병정과 무기를 만재하고 명치 27년 7월21일 중국을 떠나 동 23일 인천에 와 동 25일 드디어 인천항으로부터 서남 14마일 지점에 잇는 울도의 남방 동경 126도 북위 37도 지점에서 침몰되었다 한다.”

북망산, 살아서 걷다

5년 전 초여름이었다. 울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다. 배에서 내려 큰마을까지 칠게도 구경하고 야생화와 눈을 맞추고 멀리 작은 섬들도 살피며 걷다보니 한 시간도 부족했다. 밭에서 일하는 마음씨 곱게 보이는 할머니를 만났다. 아니 작업을 했다.

괜스레 다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나이가 몇인지, 나이에 비해 젊다는 등. 실제로 나이에 비해 젊으셨다. 잠은 재워 줄 수 있지만 밥은 어렵다는 할머니를 앞세우고 짐만 두고 섬을 둘러보겠다고 반승낙을 받았다. 할머니는 등대 길과 솔 숲길과 북망산 길까지 알려주셨다.

배에서 내린 사람은 혼자였고, 마을 안에 낯선 이도 나 뿐이었다. 이런 날 섬길을 걷는 일은 행복하다. 할머니가 알려주신 북망산 길로 향했다. 방향은 북쪽이 아니다. 왜 그곳을 북망산이라 했을까. 오솔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자 소나무는 차츰 소사나무로 바뀌었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소사나무 숲길은 싱그러웠다. 사람은 많이 다니지 않았지만 길은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었다. 길가에 간간이 밭이 보이고 하나 둘 작은 무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에서 멀어 질수록 봉분이 많아졌다. 자손들이 관리하지 않는 무덤까지 생각하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제야 알았다. 주민들이 이곳을 북망산이라 한 이유를. 살아서 가는 곳이 아니라 죽어서 걷는 길이었던 것이다.

섬사정을 모르는 객이야 경치가 좋다고 걷겠지만 주민들에게 그 길은 결코 유쾌하지 않는 길이었다. 길이 잘 정돈 된 것도 자식들이 간간이 들어와 벌초를 하면서 오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돌아설 수 없지 않는가. 그렇게 또 한참 더 가니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우이도나 대청도 모래언덕 수준은 아니지만 훌륭했다. 게다가 찾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없으니. 정말 여름철이면 벗고 수영이라도 할 판이다.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달랑게나 엽낭게들이 화들짝 놀라 숨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부담스러운데 노인들에게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걷는 일은 고통스러운 길이다. 울도가 특히 그렇다. 게다가 다시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야 자식들이 사는 인천으로 나갈 수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부담스러운데 노인들에게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걷는 일은 고통스러운 길이다. 울도가 특히 그렇다. 게다가 다시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야 자식들이 사는 인천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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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망산으로 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만난 모래언덕과 해수욕장이 이채롭다. 북망산의 의미를 모르고 걷는 여행객에게는 숲길도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북망산으로 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만난 모래언덕과 해수욕장이 이채롭다. 북망산의 의미를 모르고 걷는 여행객에게는 숲길도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몰려드는 여행객, 반겨야 할까

추석연휴라서 그랬을까. 덕적도를 찾는 여행객은 말할 것도 없고, 백패킹을 하려는 사람들도 덕적도 진리 선착장에 가득했다. 여름피서기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여행객들이 섬을 방문하면 주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늘 버릇처럼 생각하게 된다. 펜션과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과 편의점 주인은 크게 반길 일이다.

그렇다면 식당도 펜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섬은 어떨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들어가는 백패킹족이다. 잠잘 곳은 물론 먹을거리도 모두 가지고 간다. 그러니까 현지에서 쓰는 돈은 뱃삯 외에는 없다. 뱃삯은 선사가 가져가고, 주민들은 고스란히 삶터만 내줘야 하는 꼴이다. 이것만 아니다. 먹었으면 십중팔구 싸야 한다.

한적하고 후미지며 전망이 좋은 곳만 찾는데 공중화장실이 있을 리 없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배설물과 먹고 자고 남기고 간 쓰레기가 넘쳐난다. 배설물은 최소한 파고 싸고 묻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공공시설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나 파고라에 텐트를 치고 독점하는 얌체족도 적잖다. 낭만도 좋고, 추억도 좋다.

배낭 하나에 수백만 원이며 텐트와 기본 장비를 마련하는데 목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명품 아웃도어와 캠핑장비가 인기 있는 점도 되새겨볼 일이다. 이들 중에 주민들에게서 마늘을 사고, 홍합을 사고, 산나물을 사서 들고 가는 이는 보기 드물다. 섬을 지키고 평생 살아온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며 드나들어야 한다.

울도등대
울도등대.

일망무제, 울도등대

다음날 이른 아침 덕적군도 사이로 오르는 해를 보기 목너머 솔숲으로 향했다. 어제 무리한 탓일까 등대까지 올라갈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급한 대로 일출시간에 맞췄다. 선창과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군도 사이로 오르는 해를 보았다. 어제 밤에는 맞은편 낭개부리가 내려다보이는 솔숲에서 해를 바라보았다. 그때 내려오면 별빛과 달빛에 숙성 중이던 우럭도 아침해를 맞고 있었다.

여명이 걸린 생선들, 가장 멋진 자태는 망둑어다. 작지만 균형 잡힌 몸매다. 쭉 빠진 서구 몸매를 자랑하는 장대 사이에 우럭이 걸렸다. 맛으로 치면 으뜸이지만 볼품은 셋 중에 가장 떨어진다.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인간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황태만 밤과 낮의 기온차를 이용해 숙성하는 줄 알았는데 우럭도 장대로 망둑어도 그렇게 익어가는 줄 몰랐다. 아니면 게으른 주인 탓일까. 강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등대로 향했다.

울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당산이라 부른다. 울도등대는 1964년 11월 29일 점등했다. 그 무렵 이곳 울도어장에 젓새우 파시가 섰을 무려비다. 울도항은 199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2004년과 2006년에 서쪽과 동쪽에 방파제 등대를 세웠다. 덕적도에서도 직선거리로는 짧지만 여객선을 타면 두 시간에서 약간 모자라는 시간을 할애해야 닿는 섬이다.

등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간간이 줄을 잡고 오르고 소사나무 숲길을 지나야 한다. 중간에 전망대에 쉬었다 오르면 30분, 40분이면 족하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 하얀 등대가 숲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덕적도 운주봉이나 비조봉에서 보는 배경 못지않게 맞은편 울도에서 펼쳐진 바다와 섬 경치도 훌륭하다. 일몰과 일출을 보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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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의 일출과 일몰
덕적도의 일출과 일몰.

울도의 다른 명소로 자갈마당을 권한다. 덕적도에만 자갈마당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즈넉하고 툭 터진 전망은 울도 자갈마당이 앞선다. 덕적도 낙타바위 못지않는 촛대바위와 낭개부리도 좋고, 문바위처럼 잘려진 바위 위에 자란 해국들이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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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빗어낸 솜씨가 신기할 따름이다.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바닷물이 몽돌을 감싸며 크기에 따라 다르게 울리는 파도소리 화음이 멋지다. 해안경관과 소리에 취하다 보면 멋진 노을이 펼쳐진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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