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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도시 브르노를 찬양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체코/브르노(Brno)

2017.09.13 정태남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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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는 크게 서부의 보헤미아와 동부의 모라비아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코 제2의 도시이자 모라비아의 수도인 브르노(Brno)는 인구는 약 45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소박한 도시이다. 브르노는 체코가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하에 있을 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길목을 지키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소박한 브르노 시가지. 언덕 위에 세워진 슈필베르크 성은 브르노 시가지의 구심점을 이룬다.
소박한 브르노 시가지. 언덕 위에 세워진 슈필베르크 성은 브르노 시가지의 구심점을 이룬다.

브르노 역에서 시내 중심부로 가려면 번화가 마사리코바(Masarykova)를 통과하게 된다. 마사리코바는 ‘마사리크 거리’란 뜻이다. 체코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에서 벗어나 슬로바키아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라는 국명으로 1918년 10월28일에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는데 마사리크는 초대 대통령이었다.

마사리코바가 끝나는 곳에는 브르노의 심장 자유의 광장이 펼쳐진다. 길쭉한 부채꼴 모양의 이 광장에서 몇 블록 서쪽에는 숲이 우거진 푸른 언덕이 솟아있고 그 정상에 세워진 슈필베르크 성은 브르노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시가지를 내려보고 있다. 

야나체크의 동상. 그는 스메타나, 드보르작에 이어 체코의 음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렸다.
야나체크의 동상. 그는 스메타나, 드보르작에 이어 체코의 음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렸다.

또 자유의 광장에서 몇 블록 북쪽에는 야나체크 국립극장이 있다.

그 앞 광장 한쪽에는 레오슈 야나체크(1854~1928)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는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에 이어 체코의 음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 모라비아 출신 음악가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한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에 나와서 엄청난 인기를 끈 음악 <신포니에타> 작곡자가 바로 그이다.

신포니에타(Sinfonietta)는 이탈리아아어로 ‘작은 교향곡’이라는 뜻이다.

이 곡은 다섯 개의 짧은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주시간은 약 30분 정도이다. 제1악장 팡파르는 원래 1926년 6월 26일에 프라하에서 열린 체코슬로바키아 전국체전 개막식용으로 작곡된 것이다. 그후 야나체크는 네 개의 곡을 추가해 이에 <신포니에타>라는 제목을 붙였다. 추가된 4개의 악장은 모두 다음과 같이 브르노의 명소가 제목이 된다.

<2악장: 성(城)>, <3악장: 왕비의 수도원>, <4악장: 성(城)으로 올라가는 길>, <5악장: 시청사> 그렇다면 <신포니에타>를 테마로 브르노 여행코스를 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 제2악장과 4악장에서 말하는 성은 다름 아닌 슈필베르크 성이다.

이 성이 처음 세워진 것은 13세기 전반. 그 후 이 성은 30년 전쟁 중이던 1645년에 신교도 스웨덴 군이 브르노를 3개월 동안 포위했을 때 브르노를 방어하는데 진가를 발휘했다. 스웨덴 군이 물러간 다음 이 성은 신교도 신자들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고 특히 1829년부터 한동안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으로 손꼽혔다. 현재는 브르노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토마스 수도원. 야나체크는 이곳에서 소년성가대원으로 있었다.
성 토마스 수도원. 야나체크는 이곳에서 소년성가대원으로 있었다.

제3악장의 제목은 우리말로 ‘여왕의 수도원’으로 번역하기 쉽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왕비의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을 처음 세웠던 왕비는 폴란드 출신으로 체코 이름은 엘리슈카-레이츠카(1288~1335)이고 이 수도원의 현재 이름은 성 토마스 수도원이다. 이 곳은 브르노에서 한때 종교 뿐 아니라 지식세계의 중심이었다. 

‘유전법칙의 아버지’ 게오르크 멘델(1822~1884)이 활동했던 곳도 바로 이 수도원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사제로 있으면서 29세 때 2년간 특별허가를 받아 빈 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돌아온 다음 1856년에 완두의 유전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7년에 걸쳐 정확한 실험을 통해 유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발견하게 됐다. 

그런가하면 야나체크도 바로 이 수도원에서 음악적으로 성장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어릴 때 바로 이곳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있으면서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했던 것이다.  

골목에서 본 브르노 구시청사의 탑. 입구문 장식의 끝 부분이 구부러져 있다.
골목에서 본 브르노 구시청사의 탑. 입구문 장식의 끝 부분이 구부러져 있다.
제5악장의 주제가 된 구시청사는 원래 13세기에 세워졌으나 스웨덴 군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다가 복원됐다.

그런데 시청사탑 입구 위 장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이상하다. 끝부분이 구부러져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것을 만든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안톤 필그람(1460~1516)이 시당국으로부터 돈을 제 때 받지 못하자 화가 나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야나체크는 말년에 <신포니에타>에 대해 브르노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다.

‘1918년 10월 28일, 이 도시 위에 자유의 빛, 재탄생의 빛이 마치 마술처럼 나타났다. 승리를 알리는 요란한 트럼펫소리, 수도원의 성스러운 고요함, 푸른 언덕의 밤 그림자와 숨소리, 나의 도시 브르노의 발전과 위대함의 비전이 나의 <신포니에타>에서 자라났다.’ 

그러니까 <신포니에타>는 그가 평생을 살았던 도시 브르노에 대한 찬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찬가 뒤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나이 60이 넘어서야 비로소 유명해지기 시작했던 야나체크는 38살 연하의 결혼한 젊은 여인에게 반해 1928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에게 700통이 넘는 편지를 일방적으로 보냈다.

그녀는 이 노음악가에게 창작 욕구를 강하게 자극해 노년의 마지막 순간까지 뛰어난 작품을 쓰도록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뮤즈였던 것이다. <신포니에타>는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다.

정태남

◆ 정태남 건축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BAUM architects)의 파트너이다.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 미술, 언어, 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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