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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히딩크’ 아닌 ‘제1의 슈틸리케’ 되려면

[김한석 기자의 스포츠공감] 슈틸리케 감독의 ‘약속 축구’

2014.10.17 김한석 스포츠Q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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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시대는 끝났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경기 운영하는 플랜도 없고 팀 전체가 목적도 없이 방황한다.” 

지난 14일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로2016 예선전에서 아이슬란드에 2-0으로 완패한 네덜란드 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퍼부어진 힐난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과 함께 4강을 달성한 로널드 데 부어가 스승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16년 만에 조국 사령탑으로 복귀한 히딩크는 취임 후 두 달 동안 1승3패로 추락하면서 퇴진압박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격세지감이다. 2002 한일월드컵서 이룩한 한국의 4강 신화를 위시해 지휘봉을 쥔 대표팀, 클럽팀마다 돌풍을 일으킨 ‘히딩크 매직’이 사라졌다. 그는 패배 뒤 “갑자기 선수들이 왜 이런 경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난 8월 부임하면서 “전임 판 할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3위)에 불어넣은 생존 본능을 지켜낼 것”이라며 “네덜란드 축구가 누리는 현재 상승세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자로서 마지막 무대가 될 유로 2016에서 우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둔 뒤 블린트, 판 니스텔로이 코치에게 명예롭게 바통을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 히딩크의 유산은 잊어라!…슈틸리케의 약속 

너무 안이하게 새출발했다. 히딩크로선 명예를 건 약속도 못지킬 위기를 맞고 있으니 그의 성공가도를 지켜보면서 응원해온 국내 팬들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히딩크의 4강 유산이 어제 내린 눈처럼 시나브로 사라져버린 한국 축구.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좌절을 딛고 히딩크의 성가에 견줄만한 재도약을 위해 독일 출신 사령탑 울리 슈틸리케 체제로 새출발했다.

지난 14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코스타리카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에서 후반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지난 14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코스타리카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에서 후반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히딩크가 퇴진 압박을 받은 그날. ‘슈틸리케호’는 2014 월드컵 8강 돌풍의 팀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실질적인 실험대에 올라 3-1로 패했다. 

지난 10일 파라과이와 데뷔전에서 2-0 쾌승을 거뒀던 슈틸리케 감독은 변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경기에서 졌다. 하지만 결코 패배자는 아니다. 오늘의 결과가 부정적이지만 우리 팀은 파워와 의지가 있다. 보다 더 노력할 수 있는 팀이다.” 

지난 7일 첫 훈련을 시작하면서 “매 경기 이길 것이라고 약속할 수 없다. 다만 열심히 하겠다는 것은 약속할 수 있다. 지금보다 한 단계씩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천명했던 그는 의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슈틸리케는 출범 8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실로 많은 변화를 끌어냈고 또 보여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약속이었다. 지향하는 목표나 해결해야할 미션을 제시하고 이를 지켜내려고 도전하는 ‘ 약속 축구’라 할만하다. 

지난달 취임 일성으로 “영혼을 울리는 축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그는 데뷔전 전날 “무실점 축구로 팬들의 가슴에 남는 축구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파라과이전서 그동안 벤치를 지키거나 부름을 받지 못한 비주류들을 파격적으로 선발 투입해 무실점 승리로 약속을 지켰다. 

비록 파라과이의 전력이 처진 면도 있었지만 그가 선언한 제로베이스 출발에 대해 선수들은 무한경쟁 투지와 창의적인 플레이로 화답했다. 

전술, 전략 면에서도 약속의 화두를 던졌다. 전술의 유연성과 수비안정, 압박, 점유율 등의 키워드를 강조했다.

◇ “공격을 잘하면 이기지만, 수비를 잘하면 우승한다” 

그의 지향점은 이기는 축구다. 전술은 “팀을 만들어 철학을 주입하는 행위”라고 규정한 뒤 “이기는 경기를 하기 위해 현대축구에서 중요한 전술의 유연성을 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그다. 

어떨 때는 짧은 패스 위주의 ‘티키타카’가 필요하고, 어떨 때는 문전에 롱볼을 올리는 ‘포스트플레이’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코스타리카전 막판에 23명 엔트리 중 유일하게 대기멤버로 남아 있던 김승대를 끝내 투입하지 않은 것도 이동국의 높이를 살려 헤딩에 의한 세컨볼 기회를 노리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은 게 그 사례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전술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 한국 축구의 실패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수비 안정부터 방점을 두었다.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얹지 않고 기초공사부터 한다. 수비 안정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은 무실점”라며 수비 조직력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공격을 잘 하면 승리하지만 수비를 잘 하면 우승까지 한다’는 미국프로농구 격언까지 인용하면서 그것을 실천하겠다고 공언했다. 

1977~1985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스위퍼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4차례나 외국인선수상을 받으며 ‘베켄바워의 후계자’란 찬사까지 얻었던 전설의 수비수 출신답게 수비 훈련은 직접 지휘했다. 코스타리카전서 2번째 실점을 한 것을 놓고 집중력 부족에 대해 화를 내기도 하는 등 수비 안정에 대한 집념은 강했다.  

“공격은 관중을 부르지만 수비는 승리를 부른다”는 ‘농구황제’ 마이크 조던의 말처럼 이기는 축구를 위해 탄탄한 수비를 토대로 다양한 전술 활용을 도모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적어도 출범 초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수비의 얼개를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목표로 볼 수 있다. 

코스타리카전을 앞두고는 강한 압박을 통한 점유율 축구를 지향하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점유율 축구로 2010 월드컵을 제패한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 몰락한 ‘무적함대’ 스페인의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과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렇지만 슈틸리케는 스페인의 실패가 곧 점유율 축구의 몰락이 아닌 것으로 인식한다. 강한 상대와 맞설 때는 점유율이 경기를 지배하는데 중요한 하나의 운영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 따라 전술적인 대응은 유연하게 하겠다는 방침은 브라질 월드컵을 제패한 독일처럼 점유율과 탄탄한 수비조직, 빠른 역습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축구를 지향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슈틸리케는 온라인을 통한 팬 만남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나 격언을 묻는 질문에 ‘정직’이 들어간 말은 다 좋아한다고 했다. 

눈앞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팬들에게 어느 지도자도 선뜻 자신의 지향점이나 약속을 내놓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당당히 약속을 던지고 그 미션을 실천하기 위해 뚜벅뚜벅 전진하는 슈틸리케의 발걸음에서 정직한 노력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 한국 축구의 전체 수준을 높이는 ‘코디네이터’ 역할 기대 

이제 슈틸리케호는 출항했다. 평가전 성적으로는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슈틸리케는 한국 축구의 경쟁력 수준을 가감없이 체감했을 것이다.

11월 중동원정에서 진일보한 평가전 내용을 보여주고 내년 1월 호주 아시아컵, 내년 6월부터 시작되는 러시아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일신우일신 하는 항해를 해야 한다. 

그의 약속이 말의 성찬이 아니라 내일은 달라져야 한다는 용기 있는 자기 다짐으로 실천을 이어나갈 때 슈틸리케가 역대 6명의 외국인 감독들과는 다른 믿음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한국 축구의 열정에 반해서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슈틸리케다. 감독직 제안을 받았을 때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봤기에 A대표팀 뿐만 아니라 유소년, 여자축구 등에도 관심을 갖고 한국 축구가 한 방향으로 발전의 길을 모색하는데 기여하겠다고 한 약속의 실행이 중요하다. 

2000년대 초반 독일 청소년대표팀을 맡아 포돌스키, 슈바인슈타이거, 크루스, 괴체, 외칠 등 독일 축구의 황금세대를 육성해 24년 만에 월드컵을 제패하는데 초석을 다진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한다면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위한 탄탄한 세대교체도 이룰 수 있다.

A대표팀의 ‘헤드 코치’뿐만이 아니라 유,청소년 각급 연령대별 대표팀의 일원화된 발전 철학을 다지는데 실질적인 힘을 보태는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제대로 해내길 기대한다. 

슈틸리케는 “한국이 지도자로 맡는 마지막 팀이 될 것”이라고 독일 언론 빌트에 밝혔다. 

슈틸리케의 축구 철학과 배려, 열정을 높게 평가해 영입한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도자다. 그가 한국 국가대표 감독으로는 마지막 외국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슈틸리케가 변화의 노력과 함께 약속의 실천을 통해 한국 축구 전체의 균질화된 발전을 이끌어간다면 ‘제2의 히딩크’가 아니라 ‘제1의 슈틸리케’가 될 수 있다.

한 나라 톱팀의 성적만을 올리는 승부사가 아니라 한 나라 축구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는 혁신가로 지도자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인지, 시간을 갖고 기다려 볼 일이다.

김한석

◆ 김한석 스포츠기자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체육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스포츠Q 창간멤버로 스포츠저널 데스크를 맡고 있다. 전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이었으며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21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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