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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통계 vs 소의 통계

우기종 통계청장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뽑힌 바 있는 거짓말 심리 연구의 대가 폴 에크만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사소한 거짓말부터 거대한 속임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평균적으로 8분에 한번씩 하루에 200번이나 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다.

거짓말을 사실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소위 ‘사기꾼’들은 통계와 숫자를 자주 이용하다. 우리는 어떤 사실과 상황을 판단할 때 항상 증거에 목말라 한다. 내 판단이 틀리지는 않을까 불안해서이다. 이럴 때 정확한 숫자와 통계로 그 증거를 제시하면 대개 이를 맹목적으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숫자맹의 오류와 통계만능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말이 있다. 통계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경구다. 하지만 이 세가지가 나란히 놓일 수 있을까?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은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 나쁜 짓이다. 하지만 숫자와 통계 자체에는 의도와 감정이 실려 있지 않다. 통계를 악용하는 거짓말쟁이가 문제인 것이다. 같은 물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위의 경구를 제대로 다시 표현하자면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조작된 통계’로 해야 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통계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통계를 이용할 뿐이다.

국가가 통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등 악용을 하면 그 파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국내외의 불신이 가중되고 신용도가 떨어져 국가경제에 되돌릴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요 몇 년 사이에 국가의 통계조작과 관련해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지난 2007년 이후부터 “정부가 물가 통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지난 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정부의 소비자물가지수(CPI) 통계를 믿지 못하겠다는 경제학자들에게 일인당 12만 1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G20국가에서 민간의 입장 표명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가 세계적인 주목거리가 된 것은 물론이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기준에 맞게 통계를 생산할 것을 권고했고 미국 통계학회를 위시한 국제사회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아르헨티나 정부를 고발했다.

또 다른 사건 하나. 독일의 포쿠스지는 2010년 2월호 커버 스토리에서 그리스의 유명한 미술 작품인 미로의 비너스 상을 패러디하여 욕설을 뜻하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모습을 담고 ‘유로 가족의 사기꾼들’이라는 제목을 달아 그리스 사회당 정권의 국가 통계 조작 사실을 보도했다. 그리스인들은 분노했고, 변호사들이 자국의 법정에 포쿠스지의 기자들을 고소했으나 그리스 법원은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유로존 회원권을 얻으려고 통계당국이 나서 재정적자 규모를 줄였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EU 통계청에서 그리스를 회계자료 조작 혐의로 고발했다. 그 결과, 그리스 국채금리가 치솟았고 투자자들은 그리스에 투자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결국 그리스는 EU와 IMF에 1차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선진국들은 이런 통계의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해 통계의 전문성과 신뢰 확보를 위한 노력을 훨씬 전부터 진행해 왔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통계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하고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1843년 통계청을 설립했다. 수십 년 전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집권 후 통계기관을 정책의 집행부서에서 독립시키고 준 헌법기관으로 승격시켰다. 통계가 바야흐로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한 서비스’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가통계 작성의 전문성과 신뢰도는 세계가 인정할 만큼 짧은 시간에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인구주택총조사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개도국 통계청이 노하우를 전수해달라고 요청이 쇄도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OECD 통계위원회의 부의장국으로 선정되어 글로벌 통계 아젠다 세팅단계부터 적극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국가통계에 대한 오해와 이에 따른 불신이 여전한 것 같아 안타깝다.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인해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고용과 물가 통계에 대한 불신이 특히 그러하다. 성장과 개발시대와 달리 사회가 다양화되고 복지 등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시의성 있고 더욱 세분화된 통계를 신속하게 서비스해줄 것을 요청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서도 보조지표를 개발하고 삶의 질과 관련된 지표 등을 준비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런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통계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고 국가통계 관련 예산과 인력 증강이 뒤따라야 한다.

양날의 검처럼 유용하기도 하고 때론 위험하기도 한 통계와 숫자를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정책과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적극 활용해 풍요롭고 넉넉한 현재를 만들어나가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회가 선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통계의 정확성과 신뢰 수준을 높이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통계당국과 애정 어린 비판과 함께 통계의 한계와 유용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성숙한 통계 마인드를 갖춘 수요자의 존재가 통계선진국의 필요충분조건이다.

2012.05.31 우기종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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